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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50] 인천은행으로 출발한 경기은행
  • 박문 기자
  • 승인 2020.12.04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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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경기은행은 인천시만을 영업구역으로 하는 (주)인천은행으로 1969년 11월28일 설립됐다가 1972년 6월1일 경기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경기은행 본점 (사진=한국금융30년사(78년 재무부 발행))
경기은행 본점 (사진=한국금융30년사(78년 재무부 발행))

경기은행은 1969년 12월8일 납입자본금 1억5천만원으로 개업했으며 그해 서울연락사무소를 설치했다. 1972년 3월30일, 발행주식 15만주를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10월1일 을류외국환업무취급을 개시했다. 1974년 10월25일에는 최우수저축기관으로 재무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1975년에 최우수저축기관으로 선정, 2연속 재무장관상을 수상했다. 

1976년 7월1일, 갑류외국환업무 취급, 1976년 12월20일에는 자본금을 35억원으로 증자했다.

경기은행은 1969년 12월 창립당시 3부1실로 출범해 초창기 10여년 간 11차례의 조직개편을 거쳐, 1977년말 6부3실16과의 본점기구와 예금취급소를 포함한 26개의 점포망을 확보했다. 지원수도 창업당시 61명에서 1977년말 800명으로 대폭 증원됐다. 

제1기말인 1970년 3월말 8억원에 불과하던 예수금은 제17기말인 1977년말 607억원으로 급신장했고 여신면에 있어서도 제1기말 5억원이던 대출금은 1977년말 424억원으로 증가했다. 지역기업과 지역민의 대출수요가 커졌다. 

창업 초 1억5천만원에 불과했던 자본금은 5차에 걸친 증자로 1977년말에는 자본금 35억원으로 늘었으며 자산총액 또한 1천억원대에 달하게 됐다. 

경기은행은 초기 인천시 일원으로 국한된 영업구역으로 출발하며 개업초기 어려움이 많았으나 1972년 6월1일 금융당국의 인가를 얻어 상호를 ‘주식회사 경기은행’으로 변경하면서 영업구역을 경기도 전역으로 확장해 지방은행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1974년 8월1일에는 서울지점을 개점, 서울과 지역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게 됐다. 해외 코레스망도 1977년말 297개에 달하면서 외국환업무가 늘어났다. 

초창기 경기은행의 경영수지와 주식배당을 보면 대고객 거래단위의 영세성과 경영기반의 취약성으로 경영원가의 압박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단한 수지개선에 노력한 결과, 창립 1년 남짓한 제3영업기말(1971년 3월말)부터 주식배당을 실시하게 됐다.

경영자본의 조달에 있어서는 예수금 자원이 대종을 이루고 있으나 해가 거듭될수록 차입금 및 외화자금의 조달폭이 확대됐으며 자금의 운용에 있어서도 다양화돼 취급물량의 양적확대에 기인했다. 

경기은행 또한 신경기상호신용금고, 경인리스금융, 경은경제연구소 등을 자회사로 두며 성장을 거듭했으나 부실채권이 누적되며 경영상 어려움을 겪게됐다.

결국 경기은행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1998년 6월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한미은행에 합병됐다. 이후 2004년 4월 한미은행은 씨티그룹에 인수됐고 11월 한미은행은 한국씨티은행으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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