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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53] 지방은행 중 마지막으로 설립된 충북은행
  • 박문 기자
  • 승인 2021.01.09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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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1967년 발표된 대통령 연두교서를 계기로 10월 이후 각 시도에서는 '1道1行주의' 방침에 따라 지방은행을 설립했으나 충청북도에서는 이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1977년 충북은행 본점 신축 조감도 (사진= 78년 한국금융30년사)
1977년 충북은행 본점 신축 조감도 (사진= 78년 한국금융30년사)

협소한 내륙지로서 지역적인 여건이 불리해 경제적으로 낙후된 충북지방의 산업을 육성하고, 지역사회 개발을 위해서는 도내 은행 설립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특히 도내의 저축원을 발굴 동원하여 이를 지역산업에 환원공급할 독자적인 지방은행 설립이 요구됐다. 

이에 충북 출신의 재경인사 및 뜻있는 도내 상공인들이 주축이 돼 지방은행 중 제일 늦게나마 충북은행 설립이 추진됐다. 

1978년 발행한 한국금융30년사에 따르면, 충북은행 창립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1970년 11월17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당시의 정해식 충북지사가 충북은행 설립 준비위원회 회장의 자격으로 제1차 발기인회를 개최, 발기인회를 구성함으로써 첫 발을 딛게 됐다. 

발기인회에서는 충북출신의 재일본실업인 박승국을 발기인 대표로 선임하고 김우현 청주시 상공회의소 회장을 부회장으로 지명했다.

발기인 15명 중 출석발기인 11인에 의해 정관안이 심의를 통과하고 전발기인의 추인을 받아 정관이 확정됐다. 자본금 규모는 수권자본금 5억원, 납입자본금 2억5천만원으로 결정됐다.

1971년 2월 4일자로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부터 충북은행 신설의 내인가를 받아 4월 12일 주식회사 충북은행의 창립총회가 개최됐다.

창립총회에서 이사에 김재원, 정원택, 성낙겸, 이순배. 이근묵, 김우현, 이도영의 7인이 선임됐고, 감사에 주석범, 권태성 양인이 선임됐다.

이사회 결최 결과 초대은행장에는 김재원, 상무이사에는 정원택, 성낙겸이 각각 선임되었고, 상임감사에는 주석범이 결정됐다.

4월 20일에 은행신설 내인가, 21일에 임원선임 승인을 받고 22일에 설립등기를 마침으로써 은행 설립에 필요한 모든 법적절차를 마치고 4월2 4일 청주시 북문로 1가 9번지의 3에, 지방은행으로서는 10번째로 충북은행이 문을 열게 됐다.

창립 당시 납입자본금은 2억5천만원, 점포는 본점영업부 1개소에 총 직원수  61명, 첫 영업기말의 예수금은 5억6천400만원에 불과했다. 1977년말 자본금은 20억원, 총예수금은 250억원으로 신장했으며, 19개 점포에 332명의 직원을 보유할 정도로 성장했다.

충북은행 창립당시의 기구는 총무부, 업무부와 본점 영업부가 있었으나 1977년까지 4차에 걸쳐 본부기구를 개편, 1977년말 현재 4부 2실 2과로 정비되었으며, 영업점포도 본점영업부를 포함하여 13개 지점과 6개의 간이예금취급소 총 19개로 늘어났다.

충북은행에는 집행당시 결정기관으로서 이사회와 이를 정점으로 하여 은행을 대표하고 이사회 결의에 따라 업무전반을 총괄 집행하는 은행장과 각 업무를 분장하는 상무이사, 이사가 있으며, 회계감독기관으로 상임감사가 있었다.

충북은행은 1974년 3월에 기업을 공개했고 1976년 2월에는 외국부가 신설되었다. 초창기 영업실적 신장을 보이게 된 것은 1976년 1월 20일 서울지점 개점과 외국환업무 취급이 큰 힘이 되었다. 

당시 충북은행의 외국환업무는 지역적 여건으로 대부분 서울지점을 통하여 취급했다.

충북은행은 성장을 거듭했으나 IMF 파고를 넘지 못하고 1999년 4월 30일 조흥은행에 합병돼 지역본부로 남았다. 조흥은행 또한 신한은행에 흡수되면서 충북은행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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