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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한때 업적 이뤘던 충청은행
  • 박문 기자
  • 승인 2020.11.13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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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지역산업 발전을 위해 1967년 4월 29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부터 설립내인가를 얻어 9명으로 구성된 발기인단은 충청은행 설립을 추진했다.

대전에 위치한 충청은행 본점 (사진= 한국금융30년사(78년 재무부))

그러나 지방은행에 대한 지역민의 인식부족, 경제기반의 취약으로 인한 주식공모의 어려움, 설립 후 경영에 대한 의구심으로 인한 지역민의 참여도 취약 등으로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설립내인가를 받은지 10개월 후인 1968년 2월 20일 창립총회가 열렸으며 4월 22일 충청은행이 설립됐다. 

설립 당시 충청은행의 자본금은 1억5천만원. 총 95명의 주주가 15만주 전액을 인수했다. 지역적 주식의 분포도는 대전지방이 7150만원, 충북이 1500만원, 재경실업인이 6350만원 상당의 주식을 각각 소유하고 있고 충청도 전역에 뿌리를 거뒀다. 

충청은행의 본부 기구는 설립 초창기에 1실2부에서 1977년말에는 5부로 확대됐다. 점포망도 당초 3개점에서 22개점으로 크게 성장했다.

점포망확장에 있어서는 소형점포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본점 소재지인 대전시에 위치하고 있는 영업점이 영업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당초에 예금취금소로 출발했다. 이후 업적신장으로 모두 지점 승격했으며 이는 변두리의 구석까지 침투해 영세가계자금을 흡수하는데 역점을 두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충청은행의 수신액은 1기말에는 5억2300만원에 불과했으나 1977년말에는 405억원으로 늘어나면서 10여년 동안 78배의 업적신장을 보였다.

당시 충청도내 타금융기관과 비교하면 동기간 중 특수은행과 시중은행은 각각 평균 16%와 13%의 수신신장율을 보인데 반해 충청은행은 26%의 높은 매기평균신장율을 기록했다. 점유율에 있어서도 1977년말 현재 전금융기관 중 24%, 일반은행 중 46%의 비중을 차지했다. 

본점 소재지인 대전시의 경우 특수은행과 시중은행의 매기당평균수신증가율이 19%와 14%인데 반해 충청은행은 24%로 훨씬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점유율 또한 전금융기관의 30%, 일반은행의 46%를 보였다. 괄목할만한 업적신장으로 '지방의 가계영세자금을 모아 산업금융화한다'는 지방은행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여신액 또한 1기말에는 3억5700만원에 불과했으나 1977년말에 이르러서는 260억원으로 약 73배의 비약적인 업적신장을 기록했다.

이는 매기평균 26%의 신장율을 보인 것으로 도내의 특수은행과 시중은행이 같은 기간 중 매기평균 각각 16%와 14%의 여신신장을 보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편이었다. 

점유율 또한 대전시내 소재 금융기관의 여신신장의 경우 특수은행과 일반은행은 이 기간중 23%, 15%의 매기평균증가를 보였으나 충청은행은 25%의 신장율을 기록했고 여신점유율도 전금융기관의 18%, 일반은행의 49%를 차지했다. 자금의 조달면에서는 예수금이 80% 이상, 운용면에서는 대출금이 50% 이상을 점유했다. 

이에 따라 충청은행은 1972년 상장에 이른다. 3년 뒤인 1975년 서울지점 개점, 1984년부터 온라인 업무를 시작하는 등 성장을 거듭했다. 

한때 충청은행은 서울과 충청도에 50개 지점과 25개 출장소, 종업원 1800여명, 총 자산 4조 9000억원, 자본금 1천200억원에 이르는 은행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97년 IMF 위기 때 부실은행으로 지목됐고 은행구조조정차원에서 1998년 하나은행에 인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1997년 IMF위기때 부실은행으로 지목됐고 은행구조조정차원에서 1998년 하나은행에 인수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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