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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서울신탁은행, IMF 파고 넘지 못하고 하나은행에 합병(2)
  • 박문 기자
  • 승인 2020.07.02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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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서울은행과 한국신탁은행 은행장들은 1976년 4월17일 합병계약서 조인식을 가졌다. 5월13일 양 은행 정기주주총회에서 합병계약서는 원안대로 승인됐다.

강정호 서울은행장 (사진출처= 2000년 12월 월간 금융계)
강정호 서울은행장 (사진출처= 2000년 12월 월간 금융계)

이날 합병은행의 경영진이 구성됐는데 서울은행은 이사 및 감사 11명중 이사 6명이 사표를 제출하여 수리되었고 새로이 윤승두 한일은행장이 은행장으로 선임됐다. 상무이사에 최병식, 전유상, 이사에 신영철, 이중호, 상임감사에 장석원 등이 잔류하게 됐다.

한국신탁은행 또한 이사 및 감사 10명 중 이사 4명과 감사가 사표를 제출하여 수리되었고 전무이사 장명섭, 상무이사 박용일, 이상규, 한정균, 상임감사에 권경수 등이 잔류하여 경영진을 구성하게 됐다.

합병계약서의 효력이 발생함에 따라 합병계약이행으로서의 내부조직의 재편성 및 합병사업의 적극적인 추진이 이루어졌다.

합병기일인 1976년 8월2일 서울은행의 윤승두 은행장과 한국신탁은행의 장명섭 대표이사 간에 합병계약서에 근거한 종합인계인수서의 서명이 이루어졌다.

이날 한국신탁은행의 1976년 7월31일 현재의 자산부채의 권리의무 일체를 비롯한 영업점 48개점, 대리점 34개점 및 종업원 2천328명이 동시에 인계인수됐다.

이어 합병보고주주총회가 개최되었으며 이 자리에서 한국신탁은행의 이사 및 감사 5명 전원이 서울신탁은행의 이사로 새로이 선임됐다.

이날 합병에 관한 각종 내인가 사항에 관한 본인가 또한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서 내려졌다. 신탁업법에 의한 재무장관의 합병인가도 같은 날 결정됐다. 합병은행인 서울신탁은행으로서의 영업개시를 위한 법적인 절차가 모두 갖추게 됐다. 

마지막으로 각종 등기도 합병개점일인 1976년 8월 5일자로 완료됨으로써 서울신탁은행은 자본금 281억5천만원, 점포 수 국내 118개·해외 2개소. 종업원 5천500명의 국내제일의 대형은행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다.

아울러 취급업무도 은행업무, 외국환업무외에 신탁업무를 겸영하는 이점을 안고서 재출범하게 됐다.

합병으로 재출범한 서울신탁은행은 점포정리, 규정 및 장표조정 등 영업권재편성과 사무처리절차의 합리적 조정문제 등 과제를 안게 되었다.

점포정리문제는 합병 전 이미 지점이름이 중복되는 점포의 명칭변경, 소형점포의 모점조정, 점세권 중복점포의 위치조정 등 여러 문제에 관하여 원칙적인 조정이 이루어졌다.

즉 41개 점포에 대하여 명징과 모점(법을 어기면서 남의 재산을 차지)이 조정되어 1976년 6월30일자 은행감독원장의 인가에 따라 그해 8월2일 외 합병기일부터 적용하게 됐고 전세권 중복점포는 일정한 선정기준 하에 모두 13개점을 이전 대상으로 선정하여 1976년 6월30일자로 당국과 협의하여 확정했다.

규정 및 장표문제에 있어서는 합병 전 잠정적으로 신탁업무관계는 한국신탁은행의 규정 및 장표를 사용하고 여타부문은 서울은행의 규정 및 장표를 사용하여 제도와 사무취급절차의 변경으로 인한 경우에만 제정 또는 폐지토록 했다.

따라서 규정 및 장표관계에 있어서도 원활한 사무처리를 위하여 종합적인 검토조정이 시급히 요청됐다.

특히 1977년 3월17일 이러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하여 정리부를 신설했다.

정리부는 발족 후 점포조정문제에 있어 13개 대상점포에 대하여 조정을 완료하거나 이전내인가신청을 끝냄으로써 합병잔무를 대부분 완료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절차를 통해 서울신탁은행은 합병작업을 모두 마무리 짓고 완전한 합체를 이루어 이후 20여년 간 한국경제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비로소 우리나라에 5개 시중은행 즉 조흥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신탁은행 체제가 경쟁과 협력을 통해 한국경제발전에 토대가 된다.

우리나라 5개 시중은행은 한 은행에서 부실이 발생하게 되며 5개 시중은행이 부실채권을 나눠 해결하는 관치금융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이렇게 5개시중은행이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갔지만 마침내 1997년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고 한국은행들은 생존의 태풍이라는 격랑 속에 빠졌다.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라는 믿음이 사라지면서 수많은 은행들이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됐다.

서울신탁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신탁은행은 알서 1995년 금융국제화와 개방화에 부응하기 위해 은행명을 서울은행으로 바꾸고 신CI를 도입하는 등 제2창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IMF로 인해 점포 및 인원축소 등의 구조조정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1999년 9월18일 정부로부터 3조3천2백억원의 출자를 받아 납입자본금 3조4천7백억원, 국내외 2백95개 점포, 4천7백명여명의 임직원을 갖춘 은행이 되었다.

당시 서울은행은 IMF 사태로 위기 극복을 위해 해외매각이 추진되었지만 끝내 결렬되어 영업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정부는 서울은행 진로에 대해 해외위탁경영을 추진했으나 이루어지 않았고 2002년 12월 하나은행에 합병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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