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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성장금융정책 필요로 50~70년대 특수은행 8개 설립
  • 박문 기자
  • 승인 2020.04.28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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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우리나라 특수은행제도는 1954년 4월, 한국산업은행 설립부터 시작된다. 이전에도 1918년 설립된 조선식산은행(해방후 한국식산은행 개칭)이 장기산업금융을 담당했지만 6.25동란후 전쟁피해복구와 물자 생산의 증강을 위한 장기산업자금의 정비, 원조물자와 재정자금의 효율적 공급 및 관리, 산업금융체계의 정비 등을 위해 새로운 장기산업금융 전담은행의 설립이 필요하게 됐다.

설립초기 수출입은행 본점이 들어섰던 대우빌딩 전경/사진=한국금융30년사(78년)
설립초기 수출입은행 본점이 들어섰던 대우빌딩 전경 (사진=한국금융30년사(78년))

이러한 배경 아래 1953년 12월 한국산업은행법이 제정됐고 1954년 4월1일자로 정부의 출자와 한국식산은행의 자산부채 승계에 의해 한국산업은행이 발족됐다. 

한국산업은행은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못하고 민간전담기관을 통한 장기개발금융의 모개기능이 부진했던 당시의 여건 하에 원조자금과 재정자금을 바탕으로 개발금융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정부의 경제개발계획 수행을 위해 타금융기관이 지원하기 어려운 중요산업분야의 개발에 필요한 중장기자금의 공급관리에 큰 역할을 했다. 여타 특수은행들은 1961년 5.16혁명 이후 성장금융정책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됐다. 

1961년 6월 정부는 시중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한데 이어 그해 8월 한국농업은행과 농업협동조합으로 이원화 됐던 농업금융업무와 그 밖의 협동조합 사업부문을 통합해 새로운 농업협동조합체제를 발족시키는 동시에 중소기업금융의 전담기구로서 중소기업은행을 설립했다.

한국금융 30년사에 따르면, 원래 농업은행은 1956년 5월은행법에 의한 일반은행으로서 잠정 설립됐다가 이듬해 1957년 2월, 한국산업은행법과 농업협동조합법의 제정에 따라 신용산업을 전담하는 특수은행으로서의 한국농업은행과 경제사업을 전담하는 농업협동조합의 2원적 구조를 취하게 됐다. 

이후 5.16혁명이후 양기구의 통합에 의해 새로운 농업협동조합이 발족된 것이다.

한편, 중소기업자에 대한 자금지원은 1950년까지 일반금융부문의 중소기업자금대출과 대충자금(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서 다른 나라에 물자를 무상원조할 때, 물자에 상당한 자국 통화액을 그 나라의 중앙은행에 예치하고 예금 환출 시 미국 승인을 얻도록 규정한 돈)등 재정자금 대출이 주종을 이루었으나 취급은행이 일반은행, 한국산업은행, 농업은행 등으로 다원화함에 따라 제한된 재원에 의한 효율적 지원이 어려웠다.

이에 정부는 중소기업금융체계를 정비하여 동금융의 효율적 관리를 위하여 구농업은행 도시점포를 모체로 하여 중소기업은행을 설립했다.

1962년 4월에 정부는 수산업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우리나라 수산금융은 해방직후에 설립된 조선수산협회의 금융부에서 일시적으로 취급하다가 1953년 대한수산금융중앙히의 발족과 함께 1955년 국고보조에 의한 공제사업도 실시했으나 사회적 여건의 불비, 경제력 취약 및 조합운영의 미숙으로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정부는 기존 수산금융중앙회 조직을 중심으로 농업협동조합과 한국산업은행에서도 부분적으로 취급해왔던 수산금융을 통합하여 수산업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됐다. 

이듬해인 1963년 2월 정부는 서민금융의 전담기구로서 국민은행을 신설했다. 혁명이전 우리나라의 영세서민금융을 무진업이 담당했으나 그 신용기반의 취약 및 금리계산의 불확실성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1962년 2월 정부는 무진회사를 개편하여 서민금융전담기구로 한국국민은행을 설립한 것이다.

60년대초에 4개 특수은행 설립으로 금융제도 개혁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6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2차 경제개발계획 추진과 외환거래 증대 등 국제화에 부응하기 위해 이를 담당할 새로운 은행이 필요로 했다.

이에 정부는 1967년 1월에 한국외환은행을 설립했는데 동행은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외국환은행이라는 점에서 외국환관리법에 의하여 인가된 다른 외국환은행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1967년 7월 주택금융전담기구로 한국주택금고가 설립됐다. 우리나라의 주택금융은 6.25동란이후 파괴된 건물의 재건을 위해 외국 원조자금을 재원으로 한국산업은행을 통해 방출된 재건자금의 지원이 그 효시다.

이후 주택자금의 공급확대 및 민간자금의 적극적인 유치를 위하여 독립된 주택금융전담기구 설립의 필요성에 따라 동 금고는 1969년 1월에 한국주택은행으로 개칭됐다.

1976년 7월에는 중장기연불수출금융지원을 목적으로 한 한국수출입은행이 설립됐다.196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수출구조의 고도화를 위해 소비재 등 경공업제품 중심에서 기계류, 선박, 플랜트 등 자본재 중심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장기연불수출을 지원하기위해 제도적 지원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1969년 7월에 ‘한국수출입은행법’이 제정 공포됐으며 일시적으로 한국외환은행이 동 은행의 업무를 대행해 오다 1976년 7월 한국수출입은행이 독립 발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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