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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한국금융사 효시 ‘한성은행’ 설립...민족상인 금융지원
  • 박문 기자
  • 승인 2020.05.27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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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1876년 2월26일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계 은행들이 대거 우리나라에 진출해 개항지 상권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한국 조야에서 속히 근대적 금융기관을 설립하고 민족상인들의 금융을 지원해 우리 상권을 보호해야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시대적 기운과 민족적 흥망에 부응해 1897년 2월19일 서울 재계의 부호인 김종한, 민영찬 등이 발기로 탁지부대신의 인가를 받아 한성은행이 창립, 경성 중서 광토방에 있는 전교환소에서 영업을 개시했다.

조직과 규모는 작아도 한국금융사 1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우리나라 은행의 효시라 볼 수 있다. 

한성은행 창립은 구한말 근대화과정의 여명기에 순수한 민족자본에 의한, 같은 민족의 생업발전을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기관이다. 

1977년 조흥은행 80주년 되는 해에 찍은 사진/사진=한국금융30년사(1978년))
1977년 조흥은행 80주년 되는 해에 찍은 사진 (한국금융30년사(1978년) 제공)

조흥은행의 역사는 2년 후인 1899년에 창업한 지금의 우리은행 전신인 상업은행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일반금융사의 주요근간이 되어 왔다. 한국금융을 이끌던 조흥은행은 2006년 4월 신한은행에 합병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78년에 발간된 한국금융30년사에 따르면, 한성은행은 창립청원서와 함께 지금 정관과 내규에 해당하는 ‘은행규칙’과 ‘지소규칙’을 제정하여 1897년 2월19일 동시에 탁지부대신의 인가를 받았다.

은행규칙을 보면, 은행설립을 공립으로 한다(2조), 주권의 매매는 조선인에게 한다(8조), 제반이식출납과 殖利방법은 은행에서 임시의정한다(19조)고 규정해 창립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외세에 대항한 민족은행의 성격을 표현한 것이다.

순수한 민족자본과 동족의 생업보호라는 이념으로 창립했지만 공칭자본금 20만원의 왜소한 자본력과 당시 재정의 문란, 정세의 혼란 그리고 근대적 금융기관에 대한 일반대중의 인식부족 등으로 한성은행은 곧 영업부진의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한성은행은 1903년 자본금을 늘려 합자회사 공립한성은행으로 규모를 늘리고 조직을 변경했다. 은행장에 완순군(完順君) 이재완(李載完), 총무에 한상용이 취임했다.

1905년 9월1일에는 자본금 15만원의 주식회사 공립한성은행으로 개편하고 서양의 은행 부기를 최초로 도입하여 업무체계를 확립했고 영업기(회계기)도 제정했다. 이때 한성은행 제1기가 시작됐다. 1906년 5월12일에는 은행조례의 발포로 주식회사 한성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업무가 확장됨에 따라 3차에 걸친 증자로 1920년대에는 공칭자본금은 6백만원에 이르렀다. 점포도 14개점으로 늘어났다.

특히 일반은행으로서는 처음으로 동경과 대판에 지점이 설치됐다.

그러나 1923년 일본관동대지진으로 동경과 대판지점의 막대한 대출금이 회수불능상태에 들어갔으며 뒤이은 경제공황과 운영의 실책으로 근본적으로 정리를 단행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1928년 3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자본금과 법정적립금을 다같이 반감(半減)하고 일본에 개설된 두 개 지점을 폐쇄하는 한편 25년간 한성은행을 주재했던 한상용 두치가 인책퇴진하고 일본인 중역이 실권을 장악하게 됐다.

1931년 상반기부터는 주주배당을 부활하고 1938년 1월29일에는 주식회사 해동은행을 매수했다.

1941년 10월 1일에는 당국의 종용으로 자금난에 빠졌던 주식회사 경상합동은행을 흡수 합병해 총자본금은 525만원으로 증가했다.

1906년 8월 8일 자본금 15만원으로 창립된 주식회사 한일은행은 1931년 1월 21일 호서은행을 흡수합병하고 은행명을 주식회사 동일은행으로 변경했다.

1933년 7월 21일 동래은행을 합병해 발전해 온 호남은행을 1942년 5월 1일자로 흡수합병함으로써 종국에는 한성은행과 합병, 조흥은행을 낳게 된 2대 지주가 됐다.

국내 민족계 은행은 결국 한성은행과 동일은행만 남게 됐다. 한성은행은 이미 운영면은 물론 자본면에서도 일본세력이 침투하고 있었고 동일은행은 운영면에만 일본인 세력이 일부 간여하고 있었다.

태평양전쟁 확대로 일본 정부는 기업체의 정비통합을 강행했고 1943년 10월 1일 위 두 은행을 강제합병하여 총자본금 925만원의 주식회사 조흥은행을 설립했다.

이른바 한성은행계 5개은행(한성, 구포, 대구, 주일, 해동은행)과 동일은행계 4개은행(한일, 호서, 동래, 호남) 등 총 9개 민족은행의 합병과정에 종지부가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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