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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1929년 설립된 제일은행
  • 박문 기자
  • 승인 2020.06.09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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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현재 SC제일은행(한국스탠다드차타드)의 전신인 제일은행은 1929년 7월1일 ‘조선저축은행령’에 근거하여 설립된 조선저축은행이 효시다.

(1978년 당시 제일은행 본점/출처=한국금융30년사) 
(1978년 당시 제일은행 본점/출처=한국금융30년사) 

조선저축은행은 1928년 12월24일자 조선총독부령 제7호로 공포된 ‘조선저축은행’과 1930년 6월에 실시된 시행규칙에 의거하여 특수금융기관으로 그 첫발을 내딛게 된다.

소매금융 강자로 출범했던 제일은행의 역사는 기구하다. 1929년 조선저축은행으로 출범하여 1950년 한국저축은행을 거쳐 1958년 제일은행으로 이름을 변경한다.

그 후 1998년 IMF위기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후 1999년 미국의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과 합작 계약 체결한다.

2005년에는 뉴브리지캐피탈이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에 제일은행의 주식을 매각하면서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의 이니셜을 사용한 SC제일은행으로 변경된다.

이어 2016년 4월에 법인명을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유지하고 행명만 SC제일은행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다.

1978년에 재무부가 발간한 한국금융30년사에 따르면, 조선저축은행은 1929년 7월1일 5백만원의 납입자본금으로 영세서민층의 저축장려 및 금융조달을 목적으로 출범했다.

창립초기에는 경성부 남대문통 2정목 140번지의 1에 소재한 조선식산은행 본점에 터전을 마련했다.

이어 식산은행의 국내지점과 파출소(派出所) 등 57개 점포와 대리점 계약을 체결했다. 동시에 일본저축은행 조례에 의거하여 1919년 5월1일부터 식산은행이 취급해오던 저축예금업무를 1929년 6월말부로 승계 받아 업무를 개시했다.

1933년 12월에는 그동안 식산은행본점의 일부를 차용하여 영업해오던 본점을 서울 중심지인 충무로 1가에 대지 652평 총건평 2,014평의 현대식 석조 5층의 신건물로 이전했다.

제일은행은 일제 식민지치하와 6.25 동란으로 은행경영에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당시 미군정청의 명에 의하여 1945년 9월25일 현재 전금융기관의 일본인지배주가 군정으로 귀속되었고 뒤에 다시 우리 정부로 이전됨에 따라 조선저축은행 총주식의 37.2%에 해당하는 139만여원이 정부소유로 되었다.

이와중에 국토분단으로 인하여 북한소재 10개 점포를 상실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1945년 10월31일에는 제33회 통상주주총회를 개최하여 두취(은행장)에 장홍식을 선임하여 일본인 지배하에 있던 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하게 된다.

이어 1946년 4월1일을 기하여 미군정청 재무부장의 명에 의해 본래의 저축은행 업무외에 일반은행업무를 취급하게 되어 특수은행에서 일반은행으로 전환을 보게 된다.

1948년 8월15일 정부가 수립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함에 따라 앞서 말한 봐와 같이조선저축은행도 1950년 5월20일을 기하여 상호를 한국저축은행으로 변경했다.

6.25 동란중에는 정부의 부산천도에 따라 1950년 8월20일에 부산지점안에 임시본부를 설치하여 1958년 8월9일 서울로 복귀할때까지 전란으로 인하여 분산된 은행업무의 수급에 주력했다.

한편, 1952년 11월15일에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한국식산으로부터 제1차로 11개 점포와 193인의 직원을 승계했고, 1954년 1월18일에는 그해 4월1일 한국식산은행이 한국산업은행으로 발족하게 됨을 계기로 제2차로 10개 점포와 290명의 직원을 승계 받았다.

이에 따라 종래의 본지점 16개점과 함께 총 37개점에 달하는 점포망을 보유한 은행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은행법의 실시를 계기로 1954년부터 정부귀속주의 일반매각이 추진되었는데 7차에 걸친 유찰 끝에 1957년 12월에 낙찰됨으로써 해방 후 처음으로 민영화가 이루어진다.

1958년 1월27일에는 6.25동란으로 본점건물을 파괴당한 한국은행에 임시로 대여하여 왔던 본점건물을 귀속하게 되어 업무의 신장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또한 같은해 12월1일자로 은행명을 제일은행으로 변경하게 된다.

1962년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 되면서 은행의 업무도 확대되는 등 은행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 이 기간중 제일은행은 사무의 과학화∙기계화를 통한 경영합리화에도 역점을 두게 된다. 

특히 신종업무를 창안하여 실시했는데 대표적인 ‘화일링 시스템(Filing System)을 금융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입했다.

1962년 4월2일부터는 재무부의 인가를 얻어 을류외국환업무를 개시하여 수출지원의 일익을 담당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앞서 2월28일에는 갑류외국환업무의 취급인가를 받게 된다.

1962년 9월10일에는 재무부로부터 신탁업무의 겸영인가를 받고 10월30일에는 금통위에서도 인가를 받아 11월1일부터 신탁업무를 개시한다.

이후 1969년 12월2일 한국신탁은행이 설립될 때까지 업무를 취급하게 된다.

국제화에도 심혈을 기울여 1968년 10월30일에는 일본 대판 시에 대판사무소를 설치하여 경제, 산업, 금융의 제반사항에 관한 조사업무를 담당하게 되며 이후 잇따라 해외점포도 개설하게 된다.

1970년 11월9일에는 업무관리부에 사무개선과 및 전자계산과를 신설함으로써 사무의 개선 및 기계화를 통한 경영의 합리화에도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70년대 제일은행은 도약기를 맞게 된다. 업무의 국제화와 사무자동화를 취급하는 등 발전의 기틀 마련하게 되며 당시 조흥, 상업, 한일, 외환은행과 함께 한국경제 성장을 이루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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