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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특수은행으로 새롭게 출범한 농업은행(2)
  • 박문 기자
  • 승인 2020.08.28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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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농업금융 위축으로 1953년 이후 고리사채가 성행하자 한국경제에 커다란 문제로 부각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1955년 농업신용제도 개편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농업금융에 대한 제도적인 정비와 함께 정책적인 검토가 요청되면서 미국의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이 두 번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다.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본점 (사진= 한국금융30년사(1978년))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본점 (사진= 한국금융30년사(1978년))

소위 ‘존슨안’과 ‘쿠퍼안’으로 된 2개의 건의안이 제출됐는데 이를 계기로 농업은행법과 신용조합법 등 각종 관계입법조치가 논의됐으며 정부는 금융조합과 동연합회는 해산한다는 기본방침을 결정했다. 

1978년에 발행된 한국금융30년사에 따르면, 당시 각계의 허다한 법안이 제시되면서 입법에 어려움이 있었다. 

정부는 우선 농업은행법을 제정하기로 합의를 보았으나 재무부와 농림부의 의견불일치로 법제화는 연기됐다. 영농기가 닥쳐오자 과도기적 조치로 주식회사 농업은행 설립에 이른다. 
주식회사 농업은행은 1956년 4월에 일반은행법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 특별법에 의한 농업은행이 발족되기까지의 과도적인 조치였다. 금융조합과 동연합회의 발전적인 개편에 의해 자산과 조직을 그대로 인수했다.

농업은행 설립에 따라 여러 곳에서 취급하던 농업금융이 일원화될 수 있는 소지가 마련됐다.

당시 재무부는 정부자금의 도입안에 의해 장기저리자금을 취급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다며 농업금융제도상 현저한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계도 지적됐다. 농업은행은 실제에 있어 자원부족으로 영세 분산적인 융자를 면치 못했고 산업은행으로부터 수리자금을 인수할 수 없게 됐다. 일반 시중은행에서 취급한 특수농림산물의 모집 및 생산자금도 완전인수가 되지 않아 농업자금의 일원화 취급을 기하지 못했다.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특수법에 의한 농업은행의 설립이 절실히 요청됐다. 이에 정부는 특수농업은행의 설립을 촉진하여 재무부에서는 ‘쿠퍼안’을 토대로 농업은행법초안을 작성하고 이를 국회재경위안으로 국회에 상정했다. 

이와 별도로 국회농림위에서는 농업협동조합법안을 작성했으며 2개 법안이 동시에 상정됐다. 

재경위안은 농협의 신용사업취급이 시기상조이므로 별개의 농업금융기관이 설치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농림위안은 농협을 신용사업을 겸영하는 종합농협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국회는 심의결과 원칙적으로 재경위안을 채택하되 농협은행의 시군지점에 융자위원회를 두고 농은의 융자는 원칙적으로 농협에 대해서만 실시한다는 등의 수정을 가하여 1957년 2월1일 농업협동법이, 그해 2월2일에는 특수농업은행법이 각각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동법은 시행상의 몇 가지 문제로 유보돼 오다가 1958년 2월17일 국회에서 정부출자조항의 삭제, 융자위원회조항의 삭제, 농은의 융자는 농협에만 국한시키던 것을 농민, 농협 및 그 중앙회와 농업단체에 까지 할 수 있도록 확대하는 등을 내용으로 법개정안이 의결됐다. 

농업은행개정법은 법률 제473호로 공포되고 동시행령은 그해 3월20일에 공포됐다. 이에 근거 4월1일을 기해 특수농업은행이 발족됐다. 

이후 농업은행은 1961년 8월에 농업협동조합과 통합해 종합농협이 됐고 일부는 중소기업은행으로 분리됐다.

특수은행으로 설립된 농업은행은 농업신용제도를 확립함으로써 농업협동조합의 발전과 농촌경제의 부흥 및 농민의 경제적 지위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에 주식회사 농업은행의 재산과 업무를 승계하고 자본금은 300억환으로 규정하며 농은에의 출자는 농민, 농협 및 중앙회와 기타 농업단체에서 하도록 했다.

따라서 농업은행은 다른 한편으로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기능도 지니는 양면성을 갖고 있었다. 

특수농업은행이 발족되면서 농업금융은 농은으로부터 금융자금차입이 원활해지고 정부로부터 재정자금의 적극적인 대하조치가 이루어졌다. 융자금 확대와 중장기농업자금을 공급하게 됐다. 

또 산업은행으로부터 수리자금이 이관됨으로서 농업금융의 일원화를 기하였다.

1959년에는 농어촌의 고리채정리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농업금융채권의 발행이 추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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