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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1972년 대통령 긴급재정명령 ‘8.3 조치’
  • 박문 기자
  • 승인 2020.05.20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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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서 경제가 성장함과 동시에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장 제약 요인이 나타났다.

정부는 1972년 8월2일 당시 헌법 제73조에 의한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이 발동됐다.

다름 아닌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을 공포해 다음날인 3일부터 시행토록 한 이른바 ‘8.3긴급경제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8.3긴급경제조치’의 핵심은 기업이 과중하게 안고 있던 채무의 원리금상한부담을 경감하여 그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안정적 성장기반을 구축하자는데 목적이 있다고 당시 경제부처는 밝혔다.

1991년에 발행한 지금의 하나은행 전신인 한국투자금융 20년사에 따르면, 긴급명령 주요조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모든 사채권자와 채무기업은 1972년 8월2일 현재의 기업사채를 3일부터 8월9일까지 관할세무서나 금융기관에 신고토록 함과 동시에 긴급명령의 시행일로부터 이에 규정하는 바에 따르지 아니하는 사채의 변제가 금지됐다.

신고된 사채는 긴급명령시행일로부터 3년간 거치한 후 약 5년에 걸쳐 6개월마다 균등액을 변제하는 채권채무관계로 조정하고 이자는 월1.35%(연16.2%)로 하여 매월지급토록 했다.

다만 이 조치의 근본취지를 크게 저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소액사채권자의 사채동결은 해제했다.

이러한 사채동결에 따라 당시 신고된 사채금액은 채권자의 신고가 21만906건에 3천571억 원, 채무기업의 신고가 4만677건에 3천456억 원에 달했다.

다음으로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경영의 안정화를 뒷받침해 주 기 위한 특별금융 조치로 정부는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2천억원의 특별금융채권을 발행하도록 했다.

이를 한국은행이 인수케 함으로써 조달한 자금을 1972년 6월말 기준으로 금융기관이 기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단기대출금 채권액의 30% 해당액을 연리 8%, 3년 거치 5년간 분활생활 조건의 장기저리 대출금으로 대환하는데 충당하도록 했다.

이러한 특별금융조치에 따라 1972년 8월20일 마감된 일반대환실적은 1만8천438건으로 1천463억 원에 달했다.

(사진= 한국투자금융20년사)
(사진= 한국투자금융20년사)

또한 1972년 11월부터 1973년 7월에 걸쳐 세 차례 실시된 특별대환도 523억 원의 실적을 보였다.

따라서 금융조치에 의한 총대환실적은 1천985억 원에 이르러 당시 대환목표인 2천억 원에 거의 육박했다.

또한 정부는 중소기업 신용보증기금과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에 각각 10억 원씩 출연하는 한편 각 금융기관도 신용보증기금을 새로 설치하여 앞으로 5년간 대출금 전액의 0.5% 이내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년 이 기금에 출연토록 했다.

이렇게 조성된 기금의 10배 한도 내에서 신용보증을 할 수 있게 하여 담보능력이 약한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을 늘렸다.

여기에다 국무총리 직속의 산업합리화심의회를 설치하여 합리화산업 및 기준을 정하고 해당기업체에 대해서는 한국산업은행에 의해 설치 운용되는 장기저리의 산업합리화자금을 지원했다.

아울러 지정산업의 고정자산에 대한 기업의 특별감가상각률을 종전의 30%에서 40~80%로 인상하고 법인세 및 소득세법상의 투자공제율을 상향조정하는 등 세제상 혜택을 부여하여 산업합리화를 추진하고 기업의 투자 촉진을 유도했다.

마지막으로 재정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하여 내국세 총액의 일정 비율로 고정되어 있던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 재정교부금 및 도로정비 사업비의 법정교부율 방식을 폐지하고 매년 경제동향과 예산사정에 따라 적절히 변경 조절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탄력적인 재정운용을 기했다.

한편, ‘8.3 긴급명령’과 함께 부수조치로 5개항의 당면경제시책도 실시했다.

다름 아닌 “금융기관의 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환율을 미화 1달러 당 400원 선에서 안정시키며, 공공요금의 인상을 억제하고 물가상승을 연율 3% 내외로 안정시키며 1973년도 예산규모의 증대를 최대한 억제 한다는 것”이 주 골자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정부의 금리인하 방침에 의해 1972년 8월3일자로 일반은행의 여수신 최고이율과 한국은행여신이율을 인하했다.

아울러 특수은행의 여신금리와 재정자금의 대출금리도 하향 조정했다.

당시의 금리인하는 1965년 9월 금리현실화 조치 이후 여섯 번째의 조치로 가장 큰 폭으로 금리가 인하됐다.

특히 대출금리에 비해 예금금리가 큰 폭으로 인하 조정됨으로써 공금리 수준이 1965년 ‘9.30금리현실화조치’ 이전의 저금리 수준으로 환원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한국은행은 상업어음재할인에 있어서 우대적격업체 관련어음에 대하여는 한도배정에서 뿐만 아니라 금리면에서도 차등을 두어 우대적격업체에 대한 금리 혜택을 부여했다.

이밖에도 담보위주 대출에서 신용대출로 전환을 유도함과 아울러 새로운 기업신용평가제도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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