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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건국 시책 일환으로 설립된 한국은행 
  • 박문 기자
  • 승인 2020.02.04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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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마침내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맡게 됐고 건국시책으로 중앙은행 설립을 추진하게 된다. 한국은행 설립에 대해 1955년에 발행한 ‘한국은행 5년사’를 근거로 당시에 게재된 내용을 통해 당시 상황을 전한다. 

6.25전쟁 전에 본점으로 사용한 한국은행 당시 모습 (사진= 한국은행 5년사)
6.25전쟁 전 본점으로 사용한 한국은행 (사진= 한국은행 5년사)

‘한국은행 5년사’의 한국은행의 설립의 경위에 따르면, 8.15해방을 계기로 신중앙은행법과 은행신용제도 전반에 대한 법률제정의 필요성은 건국시책의 일환이었다.

앞서 조선은행은 1947년 4월에 ‘중앙은행설립대강’이라는 제목 아래 중앙은행 설립에 관한 견해를 구체적으로 연구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에서는 공식으로 중앙은행법안의 기초에 착수하게 됐고 1948년 3월, 과도정부 재무부내에 금융법규조사위원회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이곳은 소위 ‘금융법규대강초안’이 작성되었을 뿐이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수립과 동시에 금융법규조사위원회는 자연적으로 폐지됐다.

그러나 조선은행은 이 문제에 대한 연구조사를 지속하기 위해 행 내에 특명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특명조사위원회로 하여금 각국 중앙은행 제도의 연구, 기타 기초적인 조사와 더불어 중앙은행 법안기초에 착수하게 했다. 1948년 말 그 성안을 정부, 국회, ECA 기타관계 각 방면에 건의하게 된다.

한편, 정부는 재무부내에 재정금융위원회를 설치해 금융분과위원회에서 견해를 밝힌 조선은행의 건의안을 심의 검토하게 하고 그 안을 토대로 정부안 작성에 착수해 1949년 초 재무부로서의 최종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법안의 중요성과 국제성에 비추어 입법절차에 옮기기 전에 외국 권위자의 최종적인 심의와 기술면에서 조력을 얻고자 1949년 6월 미국의 중앙은행 기구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이론과 실무에 능한 전문가 파견을 요청한다.

이에 따라 금융이론의 권위자이면서 당시 뉴욕연방준비은행 국제수지조사국장인 ‘부름필드’ 박사와 은행실무가로서 능숙한 은행감사국 차장인 ‘젠슨’씨는 그해 9월 초에 한국에 온다.

두 사람은 한국에 와서 약 5개월간 재무부, 조선은행 및 ECA 당국의 조력을 얻어 우리나라 금융제도의 연혁과 경제상태를 조사한 정부안과 조선은행안을 참고로 해 정부당국, 금융계 대표 및 ECA당국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기본 구상을 마련했다. 

1950년 2월4일 한국은행 법안을 기초로 주한ECA사절단장과의 연명으로 정부당국에 건의했다.

법안은 재무부내의 재정금융위원회와 금융분과위원회에서 수정 통과되고 다시 재무부, 법제처, 조선은행 3자의 특명위원회에서 재수정된 후 그해 3월14일 국무회의의 의결을 얻었고 3월18일 국회에 회부됐다.

국회에서는 3월20일 법안을 국회재정경제위원회에 회부했는데 이는 다시 전문위원회, 소위원회, 전체위원회에서 각각 수정 통과되어 4월18일 국회본회의에 상정됐다.

이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은 4월18일과 4월21일 양일에 걸쳐 진솔한 토의 끝에 통과되었고, 다시 국회사법법제위원회에 회부되어 자구수정을 받은 후 정부에 송부되어 대통령의 최종결재를 맡고 5월5일자로 공포됐다.

5월11일에는 한국은행법 제113조에 의하여 대통령 제350호 ‘한국은행설립에 관한건’이 제정발표됐다. 그날로 설립위원회위원이 임명되고 설립위원회사무국이 설치됐다.

5월13일에는 대통령 제359호 ‘한국은행법률시행령’이 발포되었고 5월27일에는 대법원규칙제1호 ‘한국은행등기취급규칙’이 제정됐다.

이 같은 법규의 제정과 더불어 설립위원회는 그간 4차에 걸쳐 회의를 개최하고 설립에 필요한 제반사무를 추진한 결과 6월5일에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성립되고 총재가 임명되었다.

6월5일 개최된 제1차금융통화위원회는 정관을 결정했고 그에 따라 6월6일 정부로부터 자본금의 출자와 적립금의 지급이 완결되면서 한국은행 설립의 요건이 완전히 구비됐다.

그 후 6월7일과 9일의 양일에 걸쳐 제2차, 제3차 금융통화위원회가 개최되고 업무개시에 필요한 제반절차와 규정이 결정되어 6월12일에는 한국은행 업무를 개시하게 된다.

마침내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창립됐다. 이날 한국은행은 조선은행의 은행권 소액은행권 사불수형(仕拂手形)의 발행부채와 기타 재무부장관과 조선은행총재 간에 합의를 본 일정한 부채를 인수하는 동시에 조선은행의 자산을 양수하고 중앙은행의 면모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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