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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1897년 ‘최초의 민족은행’인 한성은행 설립
  • 박문 기자
  • 승인 2019.12.31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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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일본 제일은행 부산지점이 개설된 후 제18은행, 제58은행 등 일본계 금융기관이 속속 우리나라에 진출했다.

1912년부터 1963년까지 한성은행 본점전경
1912년부터 1963년까지 한성은행 본점전경

일본계은행의 우리나라 진출은 한일 간의 외환거래를 통하여 양국의 교역증대와 상거래의 원활화를 기하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졌다. 내막은 일본의 대륙침략을 위한 수단으로서 금융자본을 진출시킨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우리상공업자의 권익보호를 위하여 민족자본에 의한 근대적 금융기관의 설립을 추진하게 된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조선은행, 조흥은행, 제국은행 등이 설립됐으나 자본력의 미약으로 1년도 못되어 모두 폐점했다.

다만 1897년 한성은행, 1899년 대한천일은행과 1906년 한일은행 만이 본격적인 민족금융기관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120여년 전인 1897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은행인 한성은행(漢城銀行) 설립은 의미가 크다.

1897년 2월19일 독립협회 발기인이었던 김종한을 중심으로 민영찬, 조재명, 한치조,이승업, 김영모, 이규정, 김태진, 권석영 등 민족 선각자 9인은 국민경제를 육성해야 한다는 우리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순수 민족자본으로 한성은행을 설립하게 된다.

한성은행은 광통교 북천변 현 영풍빌딩 자리에 첫 영업소를 두고 영업을 시작했다.

이 무렵 독립신문에 한달간(1897년 3월25일~4월24일) 한성은행의 창립을 알리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한성은행 창립 규칙에는 탁지부로부터 테환은행권 발행을 위한 인가를 받고자 하는 내용도있어 한성은행이 민간은행으로 출발했지만 국가의 재정업무를 수행하는 등 특수한 은행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성은행은 은행규칙에 조선인이 아니면 주권(株券)을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여 민족은행으로서의 정통성을 지켜 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한성은행의 창업규칙은 우리나라 초창기 회사의 정관형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사료적 가치도 뛰어나다.

한성은행 창립 후 안정적인 영업을 영위해 나갈 수 있기까지는 자본의 부족, 은행에 대한 낮은 인식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903년 2월10일 자본금을 2백만 元(불입자본금 35,000원)으로 늘려 합자회사체인 공립한성은행으로 1906년 5월12일 정관을 변경하여, 주식회사 한성은행으로 개칭하고 탁지부로부터 영업계속의 인가(5월19일)를 받았다.

이후 1910년 일제에 국권을 상실한 이후 긴 세월 동안 우리민족과 고난을 함께 한다.

한일합병과 ‘은행령’의 공포에 따른 일반은행의 설립 등 금융경제의 대변혁 가운데도 한성은행은 1912년 다시 자본금을 대폭 증대시켜 영업기반을 확대시켜 나가는 한편 계속적인 영업망의 확장으로 국내 최대은행으로 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경영침투로 인해 1920년에는 ‘주주는 한국인에 속한다’는 종래의 제한 규정을 완전히 철폐하여 완전공개하기에 이른다. 일본자본 비중이 높아져 오랜 기간 그들에 의해 은행경영이 좌우되는 시련기를 맞기도 했다.

1906년 한성은행 최초의 지점인 수원지점이 개점이후 1911년 9월 평양지점을 설치한 이후 전국에 지점망을 확장하고 조직도 정비하여 점차 터전을 굳혔다.

특히 1918년 최초의 해외지점인 동경지점을 개점했고, 1922년에는 오사카 지점을 개설하기에 이른다.

1930년대 이후 한성은행은 성장을 거듭했고, 1938년 이후에는 매년 40~60%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한성은행은 그간 민족상권을 뿌리 내리는데 크게 기여해온 전국 주요 지역의 9개 민족은행들과 합병과정을 거쳐 1943년 10월1일 ‘조선을 일으켜 세운다’는 뜻이 담긴 조흥은행(朝興銀行)으로 새출발하게 된다.

순수 민족은행으로 새롭게 출발한 조흥은행은 1945년 국토분단과 6.25동란으로 인해 북한에 소재하는 평양, 함흥, 원산 등 14개 점포를 상실하는 등 커다란 시련을 겪었다.  

이후 조흥은행은 국내 최고의 은행으로 성장하다가 IMF때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 들어섰고 마침내 2006년 4월 신한은행에 합병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5년 11월 한국기네스협회로부터 ‘국내 최고(最古)은행 최고(最古)법인기업’기록 인정서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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