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컨슈머= 신항식] 1920년 1월 19일부터 14년 동안 발효, 시행되었던 미국 수정헌법 18조, 금주법이 있었다. 술을 제조, 유통, 판매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반면 개인이 술을 마시거나 소유하는 것은 허용했다. 종교의식이나 의료처방으로 쓰는 술은 제외했다. 앞에서는 하지 말라하고 뒤에서는 해도 좋다는 법이었다. 전통적으로 물이나 차보다 맥주가 저렴했던 미국이었던 만큼, 시민들은 현실성이 없음에도 국가가 그렇게 법을 밀어 붙이니 이상하다 생각했다. 게다가 돈도 많이 썼다. 법을 집행하는데 세금 3억 달러를 썼고 미연방 정부에 100억 달러 이상 세수의 손해를 안겼다. 뉴욕 주 같은 경우는 세금의 75%가 주류세였는데 손해를 어찌 감당하려고 이런 법을 통과시켰는지 아직도 의문에 쌓여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진보정당과 KKK단이 손을 맞잡고 통과시킨 좌우 합작법이라는 것이다. 
 
금주법은 여성들이 좋아했다. 공장지대가 많은 동부의 매사추세츠나 메인 주 등지에서는 이미 제한된 금주법이 있었고 여성들은 이 법이 전국화 되기를 바랬다. 저녁이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남편들의 버릇을 고쳐보려 했다. 번 돈을 하루하루 술로 소비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꼴을 볼 수 없었던 여성단체와 포드 자동차가 함께 이 법안을 지지하기도 했다.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손을 맞잡고 여성들도 합세했으며 국가도 세금을 가득 써가면서 통과시킨 이른 바 ‘도덕적인’ 금주법이었다. 그러나 도덕은 산산조각이 났고 법은 1933년 폐지되어 버렸다.
 
당시 미국의 중산 노동계층 여성들은 법이 시행되면 남자들이 일찍 퇴근해서 집에 올 것이라 믿었지만, 남자들은 동네 양조장의 노하우를 익혀 밀주를 만들었다. 집이 아니라 비밀 회합 장소에서 불법도박을 하듯이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금주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계산하고 매출신장을 기대했던 의류, 가정용품, 극장, 츄잉껌과 주스, 사탕회사의 꿈도 일장춘몽으로 변했다. 남성들이 술 한 잔 못하는 나들이나 쇼핑을 나가지도 않았고 그런 나들이에 돈을 쓰지도 않았다. 각 주정부마다 주류에 연관한 수천의 일자리가 사라져 구매력도 떨어졌다. 가계가 빈곤해져 갔다. 
 
병원이나 약국의 처방 약품으로서 위스키를 허용하다 보니 금주법 시행 기간 동안 약국이 갑자기 3배나 증가했다. 약품을 팔면서 위스키를 주로 팔았다. 이 때 미국의 약국이 밑으로부터 위선과 부패에 찌들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돈이 된다면 어떤 약이든 만들고, 파는 전통이다. 종교예식 목적의 와인은 허용했으니 미국전역에 갑자기 가톨릭 신부들과 유태 랩비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법을 제출한 국회의원 앤드류 볼스티드 자신도 술을 마셨으며 법안을 통과시킨 의회는 술 창고를 운영했다. 당시 의원으로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워렌 하딩 대통령도 백악관에 변함없이 술 창고를 가지고 있었다. 한 해 평균 천 명의 미국인들이 밀주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사회 전체가 위선의 늪에 빠져 버렸다. 위선이 확산되어 미국인의 정신문화를 파괴시킨 결과만큼이나 심각한 사실은 또 있다. 
 
적당한 사업거리를 찾던 조폭에게 주류밀수의 거대 사업을 최소한 13년이나 만들어 주었다. 밀수금은 미국 내 조폭의 경제, 정치적 토대를 닦는 자금원이 되어 원통형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조폭을 등장시켰고, 담배 정도나 팔고 댄스클럽에서 기도나 보던 이들로 하여금 무기와 마약, 건설과 부동산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하도록 유도했다. 경찰과 의회에도 조폭이 들어갔다. 미국의 조폭전문 역사가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사실이 이것이기도 하다. 금주법은 오늘날의 기업형 갱단의 출발점이 된 동시에, 전후에는 유태, 이탈리아, 아일랜드, 텍사스 조폭으로 하여금 미국 행정부와 CIA, 군산복합 기업, 석유유관 기업에 깊숙하게 관여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역할을 맡도록 했다. 
 
금주법 사후 부작용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알코올도수 0.5% 이하의 음료만 시판토록 허락하는 바람에 알코올제로와 같은 유사맥주, 독주에 각종 소다를 타는  칵테일 문화가 미국 전역을 물들였다. 술을 마시거나 살 능력도 되지 않는 이들, 술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술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캐나다 드라이 같은 소다수 사업체가 갑작스런 호황을 맞았다. 연간 170 만병 정도 팔리던 드라이가 법 시행 6년 만에 5000 만병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전체 판매액은 법 시행 이후 200%를 넘나들었으며 이런 성장세는 1929년 대공황까지 이어졌다. 1923년 코카콜라의 사장 로버트 우드러프는 밀주문화를 이미지 마케팅으로 활용하여 코카콜라의 제조공법을 숨기는 신비전략을 썼다. 목에 칼칼하게 넘어가는 소다수 콜라가 술의 대용품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청소년들의 기호품으로 등장했다.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된 이후 주류회사가 공식적인 기세를 펴고 성장했지만 소다수 판매량에는 변화가 없었다. 술을 마시다가 간에 알코올 기운이 들어가면 이내 콜라를 찾기도 했다. 술과 소다수는 더 이상 경쟁 제품이 아니었다. 
 
이처럼 겉으로 도덕적인 양 행세하면서, 함부로 법적 규제에 뛰어들어 시민의 삶에 영향을 끼치려는 행동은 사회에 커다란 부작용을 낼 뿐만 아니라 사회의 악의를 확장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일이 허다하다. 담배, 술, 마약 등은 시민 개인에게는 선호, 불호의 대상일지 몰라도 기업이나 조폭과 같은 특정 단체에게는 마케팅 대상에 불과하다. 시민들이 이들 마저 통제할 능력이 있다면 담배, 술, 마약에 법을 들이대도 좋다. 그렇지 않다면 부작용을 잘 고려해야 한다. 도덕은 강제되는 것이 아니며 법은 앞뒤 모든 부작용을 잰 다음에나 생각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하지 말라하고 뒤에서는 해도 좋다는 법 하나가 지금 입법을 시도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의 의약용 마약 허가법이 그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손을 맞잡고 여성들도 합세했으며 국가도 세금을 가득 써가면서 통과시킨 이른 바 ‘도덕적인’ 법안들이 몇 가지 있다. 아직은 폐지되지 않아서 무슨 말은 못하겠지만 사후 부작용이 이미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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