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항식 (전 홍익대 교수)
신항식 (전 홍익대 교수)

[우먼컨슈머= 신항식] 14세기 초 프랑스의 필립 4세는 가톨릭의 자산에 세금을 부쳐 돈 좀 벌어 보려다 교황과 충돌했고 결국 아비뇽으로 교황청이 옮겨 가는 역사를 만들었다. 그는 금은보화를 가졌다는 성전기사단을 공격했지만 털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화가 나 기사단을 해체하고 교회의 종교재판권을 빼앗아 국가에 귀속시켰다. 유대인들을 사탄으로 몰아 푼돈을 챙겼다. 돈 욕심이 세상을 이리 바꾸었다.

그는 금화를 얇게 찍어 돌림으로써 화폐 위조범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화폐 인플레이션에 분노한 백성을 달랜답시고 금을 두껍게 찍자 이제는 화폐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라 집세를 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백성들은 디플레이션에 더욱더 분노했다. 사라진 금의 버블 가치를 메꾸고자 바스코다가마는 금을 찾아 떠나갔다. 역사는 권력의 사기행각을 잘 기록하지 않지만, 돈 좀 더 벌자고 금의 순도를 속인 일은 다반사였다. 골드러시 시절, 미국의 조폐공장은 광산에서 캔 금을 금화로 찍으면서 중량을 속였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1933년 국민들이 보유한 금을 온스 당 20.67달러에 일괄 매입하여 35달러에 시장에 다시 내어놓았다. 중량도 속였다. 가격도 올리고 금의 중량도 낮추는 이중사기를 쳤다. 미국인들은 40% 정도 국가에 빼앗긴 화폐 가치를 노동으로 메꿔야 했다. 사기꾼 왕이나 국가와 기업에 뺏긴 만큼 일을 더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기의 수준이 100% 혹은 200% 혹은 1000%, 2000%이라면 이는 대대손손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수작이 된다.

앨런 그린스펀은 미국 중앙은행장(1987-2006)이 되기 전, “금본위가 없으면 인플레이션을 이용한 착취를 벗어날 길이 없다. 가치를 담을 그릇이 없는 것이다.”라 했다. 그는 가치를 담을 그릇이 없는 달러를 디지털 숫자로 바꾸어 국가, 기업, 개인 통장에 무한대로 찍었다. 무가치한 달러 밑에서 세계의 산업이 굴러갔다. 공공부채와 민간부채가 쌓여만 갔으니 달러의 가치는 이제 금도 아니고 석유도 아니고 무가치도 아닌, 빚 그 자체가 달러의 가치가 되었다. 빚을 졌기 때문에 달러가 존재하는 것이다. 빚이 화폐의 보증이라면 디지털 결재만으로도 충분히 세계의 산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현금과 카드에 바이러스가 붙는다고 설레발이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 한다. 집에 있으라 한다. 온라인 주문이 터져 나가고 있다. IT전문 미디어는 디지털 화폐 이슈가 떠 오른다고 전하고 있다. 방역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 없이 디지털 결재를 위한 생활 조건이 코로나-19에 의해 전 지구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온라인 생산과 디지털 결재의 포부를 지닌 중국 일대일로 지역에서 코로나-19가 창궐했다는 점이다. 우한부터 출발하여 동아시아로는 가장 디지털화된 한국, 일대일로의 중간 기착지 이란, 최종목적지 이탈리아가 코로나 확산지역으로 두드러졌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되는데, 어디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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