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4)] 산업혁명의 시절, 골프를 치면 맞아 죽었다
  • 이인세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8.30 13: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니스트]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골프는 무슨…” 한 노동자의 입에서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련의 노동자들이 라운딩을 마치고 올드코스를 벗어나려는 윌리엄 클리치 상공회의소 의장 일행의 마차 앞을 가로막았다. 노동자들의 손에는 낫과 쟁기 등이 들려있었다.

“이봐요 들.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클리치 회장이 손을 저으며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골프장을 모두 뒤집어서 땅콩과 밀가루를 재배해야 되요. 토끼사육장도 잘 안되는 형편인데 차라리 옥수수 개간사업이라도 해버리면 좋지. 골프장은 무슨…”

블랙히스
블랙히스

무리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마차를 부술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다. 이들에게 골프는 눈의 가시였다.  골프를 치러다니는 귀족들과 부호들은 그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클리치 회장은 얼마 전 회원들이 골프를 치다가 농민들의 습격을 받아 그 중 한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지라 그렇지 않아도 몸을 사리던 중이었다. 가로막은 자들의 행색으로 보아 온전히 돌아 가기가 쉽지 않아보였다. 클리치 회장은 대범하고 침착하게 대처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말씀 드리자면 저희들은 오늘 골프를 쳤다기 보다….,.여기 상공회의소 회원들이 모임을 가졌소. 올드코스가 팔려 밀가루 밭이 되니 주민들에게 식량이 지급될거요. 시에서 농민들과 노동자들에게 지급할 구호품에 대해 회의를 해 그렇게 결정지었소.”

무리들은 그제서야 험상궂은 얼굴들을 풀면서 들고 있던 곡괭이 자루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클리치 회장은 계속 그들을 설득했다. 노동자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클리치 회장의 말에 어느 정도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그렇게 4명의 골퍼들은 구사일생으로 봉변을 면할 수 있었다.

선량했던 노동자들이 폭도로 변한 원인은 18세기 초 영국의 산업혁명과 1789년 7월 14일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 때문이었다. 혁명은 구시대의 유물인 봉건 귀족을 없앴지만, 농노의 몰락을 가져오면서 대신 사회의 새로운 계층인 자본가와 농민, 노동자 계층을 만들었다. 사회 혁명은 긍정과 부정을 함께 양산했고, 도시로 밀려난 농민, 노동자들을 더욱 빈곤층으로 전락시켰다. 그들은 언제라도 다시 폭동이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사회 불만세력이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영국 전체에 쌓여가는 부의 편중은 부르조아로 불리는 자본가를 양산 하면서 반대쪽 농민과 노동자는 더 빈곤해지는 부익부 빈익빈의 결과를 초래했다. 영국정부는 혹시 자국의 농민들도 프랑스처럼 폭동을 주도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면서 나라 구석구석 어느 곳이든 농민들이 움직임만 보이면 무섭게 이를 사전에 저지하고 강력하게 진압했다.

빈곤층들은 부유층들이 골프를 치는 것을 곱게 바라보지 않았다. 사회 불만의 불씨가 엉뚱 하게 골프로 퍼진 것이었다. 폭동의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도 했고, 상류층들은 골프채를 숨겨두고 슬금슬금 집안에 칩거하게 되는 분위기가 돼버렸다. 19세기 초반까지 전국민을 매료 시키던 골프는 바로 산업혁명의 폐단으로 인해 죽음과 직결되는 살벌한 사회 분위기를 맞이 하게 된 것이었다.

산업혁명이 스코틀랜드에 부와 번영을 가져다 주었던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대신 지배계층이 기존의 영주 대신 신흥 부호세력으로 바뀌고, 그 중심에 있던 상인 재벌들에게 특권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고품격화 해주기를 원했다. 서민들과 모든 면에서 차별화되고 싶어했음은 물론이었다.

그들이 겨냥한 부의 표시가 바로 골프였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상인부호들은 골프를 치기 시작했고 고가의 장비 를 구입했다. 비싼 골프채가 신분을 표시하는 사회분위기였다. 한 세트는 보통 우드 5자루와 아이언 1자루였으며, 이 6자루의 클럽을 어린 캐디가 옆구리에 낀 채 따라 가는 모습이 당시 최고 부호들이 보여주는 가장 일반적인 부의 표현이었다. 

반면 수 백년 간 나름대로 골프를 즐기던 서민들은 산업혁명의 뒤안길에서 노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들에게 더 이상 골프는 사치스런 놀이가 돼버렸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었다. 서민들의 비참한 삶은 기계화의 뒤안길에 늘 존재해 있었다. 노동자, 농민들 의 삶 속에 골프는 배부른 소리였다. 그들에게는 식량이 최우선이었다.

 

 

 

 

▲ FRANCIS GRANT가 1874년 그린 JOHN WHYTE MELVILLE의 초상화. 존은 67년간 왕실협회 멤버로서 2번씩 의장으로 선출된 골퍼이다

 

이런 와중에서 산업혁명의 여파로 주목할 만한, 골프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생겨났다. 신흥 부호들에 의한 골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와중에, 또 하나의 신흥 계급층이 자연 스럽게 만들어졌다.

캐디, 볼을 만드는 장인, 클럽 제작자, 프로골퍼 등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골프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 나갈, 골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발전하게 된다.

산업혁명은 왕족이나 귀족, 신흥 부호들의 전유물 이었던 골프가 새로운 계층을 잉태하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영국 공방
영국 공방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