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8)] 2백여년 전 올드코스가 파산됐다면
  • 이인세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9.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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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니스트] 19세기중엽,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인근의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여러군데의 전통있는 골프장이 자취를 감추었다. 한때 왕들과 귀족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왕실 전용의 리스(LEITH)를 비롯해 글래스고우(GLASGOW),킹스반(KINGSBARN)등 유서깊은 골프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터스틀(THIRSTLE)이 파산했고, 스캇스크레이그(SCOTSCRAIG)는 1834년 이미 밀가루 밭으로 변해버렸다. 심지어 잉글랜드 최초의 골프장이었던 수백 년 역사의 로얄 블랙히스(THE ROYAL BLACK HEATH)마저 파산을 준비 중이었다.

올드 코스 오픈 갤러리
올드 코스 오픈 갤러리

산업혁명 초기에만 1천여 개에 달하던 골프동우회가 1830년에는 스코틀랜드에 14개, 잉글랜드에 2개, 인도 캘커타에 1개 등 고작 17개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봐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발생한 국가적인 악성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잡초투성이의 골프장들은 예전의 영광만을 간직한 채 황량하게 변해가면서, 개발화의 명분으로 밀가루 농장이나 옥수수 밭으로 개간되는 운명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백 년 전 리스골프장의 흔적이라도 되살릴 수 있는 곳이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수백 년 후인 2015년 7월 필자가 방문한 리스항. 애석하게도 예전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이 주변은  황폐화 되었고, 타운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슬럼가의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저소득층의 중국계들이 입주한 허름한 건물들에는 수많은 한문 간판들만 즐비했다. 바닷가에 인접한 예전의 항구는 못쓰는 폐선들만 남은채, 인근 주변은 쓰레기 하치장 같이 방치되어 있었다.

올드 코스 오픈 갤러리
올드 코스 오픈 갤러리

그나마 정돈 된 곳으로는 바다를 이용해 여러 도시를 운항하는 개인요트항만 눈에 띄었다. 인근에는 에딘버러에서 허락해 준 작은 규모의 카지노장도 한 군데 있어, 그나마 외부인들이 이따금씩 이 곳을 왕래하는 정도였다. 영국으로서는 왕실 골프장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리스골프장의 폐쇄는 훗날 뼈아픈 상처로 남게 됐다.

2백여년 전 스코틀랜드의 골프장들이 줄도산을 하는 통에, 하마터면 21세기엔 골프장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현재의 골퍼들은 골프가 무엇인지 조차 알수도 없을 뻔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1797년 파산 신청을 한 세인트 앤드루스 시정부는 재정이 없어 시가 관리하는 올드코스의 경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헐값에 부지를 구입한 찰스와 캐스카트라는 두 명의 농장주들은 골프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골프장에 토끼 수백 마리를 방목해 놓았다. 그 귀한 코스 여기저기 페어웨이와 그린에는 토끼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골퍼들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토끼들이 보일때 마다 욕을 해대며 죽이거나 쫒아 버렸다. 토끼 방목을 못마땅히 여긴 주민들도 가세했다. 골프장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애써 지어 놓은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었다.

올드 코스 오픈 갤러리
올드 코스 오픈 갤러리

280 에이커의 방대한 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개간업자는 불과 10에이커도 안되는 그깟 골프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업자들은 에딘버러 법정으로 사건을 끌고 갔다. 업자들에 대항해 주민들도 맞고소를 했다. 주민들과 토끼 사육사들 가운데 이른바 ‘토끼전쟁(RABBIT WARS)이라고 불린 싸움이 시작됐다. 6년 간 계속된 법정 싸움 끝에 1805년 에딘버러 법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농사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토끼들을 임의대로 죽이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라는 판결이었다. 주민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쨋던 올드코스는 폐쇄될 위기를 면했다.

19세기 초 스코틀랜드의 경제 상황은 시정부가 파산을 할 정도로 심각했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도시로 밀려나 빈곤층으로 전락하던 시절이었다. 에딘버러 인근의 전통있는 골프장들은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한때 왕들과 귀족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왕실 전용의 리스(LEITH)를 비롯해 글래스고우(GLASGOW), 킹스반(KINGSBARN)등 유서깊은 골프장들이 문을 닫았다. 터스틀(THIRSTLE)이 파산했고, 스캇스크레이그(SCOTSCRAIG)는 1834년 이미 밀가루 밭으로 변해버렸다. 심지어 남쪽 잉글랜드 최초의 골프장이었던 수백 년 역사의 로얄 블랙히스(THE ROYAL BLACK HEATH)마저 파산을 준비 중이었다.

산업혁명 초기에만 1천여 개에 달하던 골프동우회가 1830년에는 스코틀랜드에 14개, 잉글랜드에 2개, 인도 캘커타에 1개 등 고작 17개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봐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발생한 국가적인 악성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잡초 투성이의 골프장들은 예전의 영광만을 간직한 채 황량하게 변해가면서, 개발화의 명분으로 밀농장이나 옥수수 밭으로 개간되는 운명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서 패소한 올드코스 개발업자들은 틈만 있으면 코스를 토끼사육장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러던 차에 1821년 구원자가 나타났다. 실버컵 골프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던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협회의 캡틴이었던 제임스 치프는 “올드코스를 구입함으로써 법정 싸움이 종식되기를 희망한다”면서 돈을 지불하고 올드코스를 넘겨받아 일단 골프장을 살려냈다. 16년간 지속됐던 토끼전쟁은 막을 내렸고, 올드코스는 또 한번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개인 돈으로 광활한 사유 재산 지역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올드코스는 다시 재정난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두번째 난관에 부딫힌 올드코스를 회생시키기 위해 이번엔 골퍼들이 합심했다. 에딘버러 골프회원들은 1824년 은행에서 두차례에 걸쳐 700파운드를 융자했으나 이자가 너무 높아 더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동안 인근 여러 곳의 골프장은 우후죽순으로 도산을 해버리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올드코스도 폐쇄의 기로에 서 있었다. 1841년 4월,영국의 자존심이자 마지막 남은 골프의 메카를 지키자며 이번에는 젠틀맨스 클럽 멤버들이 모였다. 올드코스는 다시 한번 법정에 서게됐다. 지난 세기에 골프의 체계화에 공헌한 프리메이슨들이 주축이 되었다. 젠틀맨스 클럽 위원회 22명 모두가 메이슨 단원이었다. 이번에도 에딘버러 법정은 올드코스 편이었다. 개간업자들이 보란듯이 페어웨이를 갈아서 밀밭으로 만들어 놓기 며칠 전, 법정은 극적으로 올드코스의 손을 다시 들어주었다.

그렇게 마지막 골프장은 살아남았다. 이후 10여 년 뒤 골프는 갑작스런 부흥기를 맞으면서 미국으로 건너갔고, 21세기의 현재로 발전할 수 있었다. 올드코스가 19세기에 옥수수 밭으로 개간 되었다면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뇌리에서 골프는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미국으로 대륙이동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21세기는 골프가 뭔지도 모른채 크리켓이나 테니스 정도에 만족하며 사는 끔찍한 시대가 됐을 것이다.

수백 년 전 5홀 짜리 왕실전용 골프장이었던  리스골프장의 흔적이라도 될만 한 단서라도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2015년 7월 필자는 에딘버러 항구를 방문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예전 골프장의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주변은 황폐화 되었고, 타운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슬럼가의 분위기가 풍기면서 저소득층의 중국계들이 입주한 허름한 건물들에 한문 간판들만 즐비했다. 바닷가에 인접한 예전의 항구는 폐쇄된 어선들만 남은채, 인근 주변은 쓰레기 하치장 같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나마 깨끗한 지역이라고는 개인 요트를 정박시키는 시설과 작은 카지노 뿐이었다. 왕실 골프장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리스골프장의 폐쇄는 영국의 입장에서는 뼈아픈 상처 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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