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준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요즘 세간에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챗GPT’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기술혁신은 우리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해 주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운전의 피로를 덜어주며, 식당의 배달 로봇은 시간과 노동력을 덜어주고 있다. 내연기관차에 비해 전기차들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문제는 기술혁신의 이면에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과소비의 그림자가 어려 있다는 것이다. LED 전구는 일반 전구보다 효율이 70%이상 높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이전에 한 개 설치하던 전구를 장식용으로 더 많이 설치하는 소비행태가 보고되기도 한다. 

자율주행으로 운전이 편해지니 필요 이상으로 운행이 늘어나기도 한다. 이럴 경우 더 많이 타이어가 소모될 것이고 탄소배출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전기자동차가 내연자동차보다 탄소배출을 적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전기자동차를 이전보다 많이 운행한다면 친환경자동차라는 본래의 의미는 퇴색하고 만다.  

도시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컴팩트 시티나 첨단기술 기반의 스마트시티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술혁신을 기반으로 각종 인프라를 연계함으로써 효율 높은 도시활동이 가능케 하는 컴팩트 시티나 스마트 시티가 소비 욕망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편리한 공간이 과소비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탄소중립도시라는 명분 하에 사우디아리비아의 사막 위에 길이 170km에 육박하는 '선형 도시'로 건설될 네옴(NEOM)시티 구상에서 친환경 도시로서의 이미지보다는 거대한 쇼핑천국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사막 위의 도박도시 라스베이거스처럼 말이다.    

지속가능발전을 위해서는 낭비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고, 낭비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들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혁신이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과 더불어서 기존의 것들을 더 오래 사용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최근에 유럽연합(EU)에서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하는 법안에 대한 투표가 연기되고, 전기차 전환의 과도기적 대안으로 독일에서 탄소배출 없는 친환경 합성연료 사용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있다. 전기차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기존 내연기관 차량생산 일자리의 감소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대안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생산시설을 무조건 폐기하고 새로운 생산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에 따른 부작용도 고려한 대안이다. 기존의 생산물을 최대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술혁신이 기여하는 것도 탄소중립과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한 일이 개인적으로 반드시 만족도가 높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기술혁신을 통해 건물과 기기를 더 오래 사용하면 좋지만, 우리 인간의 소비욕망이 문제이다. 결국 관건은 기술혁신과 건전한 소비문화가 결합해야 건물과 기기를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버려진 폐기물을 재활용해서 멋진 가방을 만드는 스위스의 프라이탁(FREITAG)은 친환경 업사이클링과 디자인이 결합해서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인기를 끄는 SNS기반의 중고물품 거래 앱도 물건을 오래 쓰는 소비문화 만들기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가 더 확산되도록 기술혁신이 역할을 해야한다. 기술혁신으로 100세 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가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을 통해 오래 사용하는 소비문화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이상준(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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