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진로를 탐색하다

[우먼컨슈머 편집부] 아래 원고는 동아시아재단에서 제공한  '차기 정부를 위한 정책논쟁' 주제의 글이다.  대선을 앞두고 차기정부의 노동문제와 개혁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내용으로, 우먼컨슈머는 이 글을 독자를 위해 전제한다<편집자주>.

▲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글/ 이장원(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책수단이 서로 충돌하는 노동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대로 고착되어 있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경제 각 분야의 개혁이 동반되어야 가능하지 단지 통화나 재정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당연히 노동 분야도 개혁 대상이다. 우선 풍부한 인적자원의 동원으로 유지되던 경쟁력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내년부터는 고령화가 아닌 고령사회로 돌입하고 10년도 안되어서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이런 고령 사회에선 일할 사람이 부족하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 인력이 비경제활동에 머물고 있고 청년들은 실업 내지 잠재적 실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2016년 기준 청년 실업률은 9.8%이고 체감 실업률은 22%에 달한다. 결국 유휴 인력을 노동 시장에 진입시키기 위한 다각적 제도 개혁이 있어야 하지만 반대로 한정된 인력만으로 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한 장시간 근로 관행도 같이 개선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인력들을 적극적으로 유인하려는 동기를 자극하기 어렵다.

일자리의 질에 대해서도 경고등이 켜져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부문이 시간제 일자리이다. 주 36시간 미만을 일하는 근로자가 402만 명으로 최근 대폭 증가추세인데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낮은 임금과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저임금 일자리가 여전히 OECD 기준으로 하위권 수준으로 많은 반면에 그나마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임금체불이 만연되어 2016년 임금체불액이 1조4천억 원에 이른다.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도 전체의 14%에 달한다.

결국 노동시장에서 일자리의 양과 질, 양 측면의 과제들을 동시에 안고 있는 상황인데 이 둘은 본질적으로는 반드시 상충되는 목표는 아니지만 정책 수단에 있어서는 현실적으로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상충 요소들이 많다. 즉 일자리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단지 비정규직 일자리나 저임금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지만 고학력 인력들이 더 이상 질이 떨어지는 일자리를 찾아가지 않는 현상들이 관찰되고 있다. 수많은 청년들이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되려고 몇 년씩 취업 재수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 아울러 기존의 저임금 일자리들을 좋은 일자리로 질적 개선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는 단지 고용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중 노동시장을 만들어온 많은 경제, 산업 정책상의 문제들을 먼저 개선해야 하거나 이른바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장년층과 고임금층이 양보와 협력을 전제로 해야 하는 문제라 쉽게 정책을 집행하거나 효과를 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한국 노동시장과 정책의 현 좌표: 강점, 약점, 기회, 위협요인

OECD 국가중 한국은 저임금 근로자의 비중이 높은 나라에 들어간다. 특히 최저임금 수준이 근로자들의 평균임금에 40%에 미달하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그런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300만명에 달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 저임금 근로자들을 보호하고 임금 수준을 향상시켜줄 필요가 있지만 상당수에 달하는 이들의 사용자들이 좋은 직장에서 밀려난 영세한 자영업자이거나 하청단가 인하 압박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이라 노동 정책 강화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산업의 구조조정과 사회 안전망의 확대가 반드시 선행되거나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시장 개선과 산업 구조조정 그리고 사회 안전망 확대가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산업 구조조정은 인력의 유지 및 재고용 관점보다는 과다한 설비투자의 통폐합과 현장에서 노동절약적인 자동화와 디지털화로 경도되고 있고 사회안전망의 확대는 일자리 희소성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기본소득 보장 내지 보편적 복지로 확장되고 있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노력이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그나마 최근 두루누리 사업이라는 영세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사회보험 가입을 지원하고 근로장려세제(EITC)를 확대하는 움직임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고 고용이 안정된 1차 노동시장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상황은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안정된 성장과 보호를 받아온 이 집단에서도 상대적인 저성장과 정부 재정여건 악화속에서 방만함과 비합리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인사정책의 도입이 중요해졌다. 내부노동시장을 받쳐주던 중요한 기둥인 연공서열형 임금인상을 혁신해서 직무, 능력, 성과 기준에 따른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고 단순한 생산성 제고를 넘어서 창의적인 역할 증대를 위해선 보다 유연한 근무제도를 확산할 필요가 높아졌다.

반면에 한국 노동시장이 가진 상대적인 장점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서 많은 고학력 실업자들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반대로 고급 인력 비중이 높은 한국은 4차 산업혁명에서 노동력이 적응하고 살아남기 유리한 노동시장이기도 하다. 고졸 출신의 단순 생산직이나 하위 사무직 일자리를 중심으로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현상으로 일자리 파괴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고학력 기반의 노동시장이라 일자리 파괴가 적게 일어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노동시장 정책에서 고용보험과 직업훈련 정책은 국제적으로도 양질의 정책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1997년에 촉발된 경제위기와 실업대란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제도 개선과 정책개발을 해온 덕분이다. 취약한 사회안전망 수준에도 불구하고 고용안정과 취업촉진 정책의 상대적인 강점이 급격한 고용불안을 줄이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임금격차의 확대는 근로자들간의 불공정성 갈등을 낳고 나아가 중소기업에 취업하려는 청년들의 취업의지를 저해하는 장해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협력업체나 하청업체 근로자들과의 임금의 연대성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는 전체 노동시장이 직무급 중심으로 바뀌어 중소기업으로부터 대기업으로의 자유로운 이동을 촉진하고 기업 규모간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기존 연공적 임금체계의 개편은 전반적으로 집단적 임금 인상 기반을 잃을 것이 두려운 직원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또 노동시장의 생산성을 제고하고 창의적인 고학력 노동의 장점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유연근무제의 과감한 시도는 노동력에 대한 통제와 지휘권을 놓지 않으려는 경영자들의 관성으로 인해 별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하다.

최근 임금체계 개편의 조급함에 기존 연공적 임금 인상의 베이스를 개혁하지 않고 여기에 성과차등제만 적용하려던 이른바 성과연봉제는 난항에 부딪혔다. 직무중심의 임금 베이스를 만들고 여기에 이차적으로 성과별 차등을 두는 수순을 밟는 것이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공공부문에서 제도 개혁을 이루려는 단기 성과주의에 치우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연공급 제도가 결여된 ‘동일가치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준칙을 적용하고 공정한 임금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선 직무급에 대한 노조의 열린 자세가 필요한데 이 또한 진전이 더디기만 하다.

10% 안팎의 높은 청년 실업률을 보이고 있지만 인구구조에 따르면 2020년 정도가 되면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층이 대거 줄어들면서 일자리의 수급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울러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절반 수준인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은 향후 사회복지, 공공행정 서비스, 직업군인 확충 등을 통한 추가적인 일자리 창출 여력이 있는 만큼 일자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지난 20년 동안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의 임금수준이 대폭 올라가고 단순 임가공 형태의 해외 제조업 투자가 한계에 봉착했기에 해외로만 나가던 공장들이 국내로 되돌아오거나 국내에서 신규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어 새로운 일자리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노동제도 개혁을 위한 세 가지 쟁점

우리 노동시장과 이를 둘러싼 외피이자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되는 노사관계 상의 개혁과제는 복잡하고도 다양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저성장 시대의 제도적 마찰과 긴장들을 중심으로 개혁과제의 쟁점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일자리를 만드는데 있어서 근로시간 단축의 방법과 그 비용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의 문제이다. 우리가 연 2100시간을 넘는 근로시간을 가진 나라이고 선진국들보다 연 300에서 500시간을 더 일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은 나라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당장 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초과근로를 줄여야 한다는데 동의하면서도 문제는 그 방법이다. 기본급의 비중이 높은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초과근로에 의존해서 낮은 기본급으로 충당하기 어려운 임금소득을 맞출 필요가 있지만 저임금 근로층의 초과근로가 줄어들 때의 임금감소분을 어떻게 보전할 수 있을지는 아직 해결방안이 없다. 또한 중소기업의 초과근로를 줄여서 추가적인 인력을 채용하려고 해도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둘째, 저임금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이다. 대부분은 구조조정을 얘기하지만 구조조정은 추가적인 실업을 부르고 대부분은 설비와 자동화 투자로 진행됨으로써 살아남은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이지만 없어지는 일자리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득 창출이 가능한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대신 저임금 근로자들에 대한 소득지원 방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책이 나온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생활임금을 도입하고 근로장려세제를 확대하고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방안들이다.

셋째, 연공급 임금체계의 개선이 필요한데 어떤 방법이 가장 공정하고 효과가 있는가의 문제이다. 기업들이 고용을 쉽게 늘릴 수 있으려면 해고를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수량적 유연화는 최근 들어 현실적으로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근거들 앞에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 대신 기업들에게 고령화되는 인력들을 유지하기 위해선 나이가 들수록 올라가기만 하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개혁하고 장기간 고용책임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이른바 임금유연성의 필요성은 중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안적인 임금체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중이다. 기업들은 추가적인 인사관리 부담이 적은 연공급하에서 성과차별에 의한 보상격차를 늘려야 한다는 데 관심이 많지만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차별, 무기계약직의 증가, 기업내 고령자 대비 청년층의 임금불만족 등을 모두 감안하면 결국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원칙이야말로 가장 공정한 기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방법론은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차기 정부를 위한 정책 제언

첫째, 근로시간 단축이다. 우선적으로 화이트칼라의 장시간 근로는 이른바 포괄임금제에 의해 일부만 초과근로를 보전해 주면서 자유롭게 초과근로를 명령할 수 있는 현재의 관행을 법으로 다시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생산직의 경우에는 결국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한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임금손실분을 어떻게 보전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대기업 생산직도 줄어든 초과근로 수당만큼 기본급으로 반영해 달라는 요구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은 노사가 교섭을 통해 이를 풀어야 한다. 몇 년 전, 상여금도 고정적이고 정기적이면 통상임금에 합산해야 한다는 통상임금 파동이 있었을 때 대기업 노사가 일부 보여준 사례처럼 기본급을 늘리면서 임금인상률을 하향 조정하는 타협이 전반적으로 필요하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초과근로를 줄이기 위해선 우선 줄어든 초과근로 수당만큼의 생활비 압박 요인을 해결해야 한다. 일단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적용하는 법 시행일에 유예기간을 두어서 기본급을 올리고 초과근로를 줄이도록 준비할 시간을 주면서 사회보험료 감면과 EITC 확대로 지원하고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추가적인 인력 채용에 대해선 한시적인 고용지원금을 줄 필요가 있다.

둘째, 저임금 일자리의 축소 내지는 해소 대책이다. 일부에서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강조하지만 최저임금은 저임금 일자리를 축소하기 위한 완결적인 처방책이 아니다. 저임금 일자리에 있는 근로자들의 생활가능한 임금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다각적 정책들이 필요하다. 저임금 일자리 전반을 축소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대책은 역시 (영세한) 사용자들의 지불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산업 및 공정거래상의 정책개입과 더불어 근로자들에게는 생산성을 올려서 저임금으로부터 고임금으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능력개발, 재훈련, 일터의 혁신을 통해 저임금을 탈피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지원과 컨설팅이 필요하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달리는 만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현업에서 여유 인력을 빼내서 생산성 훈련을 시키기 위해선 추가적인 일시적 고용지원금을 동시에 지원하고 생산성이 궤도에 올라가면 지원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임금체계의 개혁이다. 임금체계의 개혁은 결국 공정한 임금을 구현하는 것이다. 공정성의 기준은 남보다 일을 더 한 사람의 성과에 대한 보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과 같이 일하는데 보상이 적은 차별의 문제를 먼저 해소해야 하는 것이다. 일의 가치에 대한 보상이란 원칙이 확실히 공감대를 이루어야 일의 성과에 따른 추가 보상의 공정성이 담보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과연봉제‘라 이름 붙여 공공부문에서 무리한 적용을 가하려던 시도는 많은 저항과 마찰을 불러 왔다는 점을 상기해서 ”직무성과제“로 다시 재정립되어야 한다. 직무의 기본값에 성과의 추가값을 더하는 방식이다. 직무는 단지 회사내의 업무(task)나 직위(job title)는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특히 노사정이 동의하는 일의 종류(job category)와 그 카테고리 안에서 능력 내지 숙련 등급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노사정위원회나 사회적인 논의를 필요로 한다. 그것을 생략하면 다시 성과연봉제가 부딪힌 한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구체적인 제언들과 더불어 마지막으로 차기 정부가 노동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필요한 중장기적 전략을 제시한다면 4차 산업혁명의 전개에 따른 노사협력적인 혁신을 들 수 있다. 기술진보는 매우 빠르게 확산되겠지만 노동시장에 줄 수 있는 혁명적 영향을 긍정적 성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조정 능력은 2016년 말 독일의 노사가 마련한 Industry 4.0 백서에 나타난 바와 같은 노사협력적인 혁신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필자 소개

이장원(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장원은 1994년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산업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이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20년동안 연구위원 및 선임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임금직무센터 소장,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 소장, 노사관계연구본부장, 연구관리본부장을 역임했고 대외적으로는 고용노사관계학회 부회장,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초빙교수를 지냈고 현재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연구는 사회적 책임과 노사관계, 임금직무체계혁신, 4차 산업혁명과 일터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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