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가 바랠수록 추억은 빛이 난다'는 팔순을 맞이한 원로학자 신광순 박사가 자신의 인생역정을 반추하면서 후대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한편, 우리나라 식품위생 제도와 정책의 발전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정리한 회고록이다.

저자의 전작인 '과거를 보고 미래를 연다: 우리나라 식품위생 정책의 역사'가 공직에 있을 때인 1960~70년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초창기 식품위생 관련 제도와 정책,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사건과 그 배경 등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 초년병일 때 겪은 일화를 비롯해 본업인 교수 시절에 이룬 교육·연구·봉사의 성과들, 정년퇴임 후의 생활,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저자의 모든 과거를 가감 없이 소개한다. 한 개인이 자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기록한 회고록이지만, 후학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내용과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 자료들도 많이 수록돼 있다.

1933년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독립운동가(해관 海觀 신현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민족해방의 기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모두 겪은 저자는 당시의 시대상을 담담하면서도 매우 현실감 있게 기록하고 있다. 반세기도 훨씬 전인 우리 민족의 격랑기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어떻게 이다지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공직에 몸을 담고 봉사하던 청년기와 학문에 뜻을 품고 우리나라 식품위생 정책의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으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중장년기의 기록 역시 정확하고 객관적이긴 마찬가지다. 단순히 한 개인의 인생역정을 기록한 글이라기보다는 올곧은 사가가 세세히 기록한 역사책이라고 할 만하다. 글을 읽노라면 마치 빛바랜 기록영화를 보는 듯하다.

군 식품검사관을 시작으로 국방부 보건의무관, 국립의료원 영양과장, 국립보건연구원 식품기준연구담당관에 이르기까지 공직에 몸담고 있는 동안 저자는 우리나라 식품위생 관련 제도와 정책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이후 대학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으로 한국수의공중보건학회,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 한국HACCP연구회 등을 설립해 식품위생 정책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일에 매진했다. 이 밖에도 보건복지부 식품위생심의위원회 위원장, 농림부 축산발전심의위원회 위원, 환경부 분쟁조정심의위원회 위원, 대한보건협회 부회장과 감사, 대한수의사회 부회장, 한국식품위생연구원 및 한국식품공업협회 자문위원, 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기술자문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설립위원장 및 이사, 한국식품안전협회 회장으로 재임하며 수의공중보건과 식품위생 정책과 제도 발전에 기여했다. 한 마디로 저자는 우리나라 수의공중보건과 식품위생 역사의 산 증인인 셈이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여 필자가 속했던 6학년 2반 학생 60~70명 중 1/3인 2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일본식으로 성을 바꿀 정도였다. 당시 창씨를 거부할 경우 중학교, 특히 경기중학 등 공립학교에 입학할 때 문제가 됐으며, 또 취직할 때 온갖 불이익을 당했다고 한다. 물론 필자는 아버님의 의지로 창씨를 하지 않고 버티다가 해방을 맞으니 어린 마음에도 떳떳했으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우쭐댈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일 같지만, 당시 창씨를 한 경우와 하지 않은 경우의 차이는 바로 일본에 얼마나 저항했느냐, 순응하고 협조했느냐를 판가름하는 척도로 봐도 크게 하자가 없을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조상 전래의 고유한 성씨를 바꾼다는 것은 바로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뽑아내는 격이니 어찌 가벼이 넘길 수 있었겠는가?" ('국민학교 시절, 일제 말기 어수선했던 일들을 회고하다' 중)

"당시 국가 전시비상체제하에서 군 장병 확보가 필수적인 만큼, 정부는 군 의무입대 연령을 18세로 정해 시행하고 있었다. 그때 필자 나이 꼭 18세로 아직 어린 중학생이었으나 군대에 가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자 도리라 생각했다. 이런 취지에 부합하듯 국방 당국은 국민방위군을 창설했고, 필자도 1951년 1월 말경 경남 삼천포 지역 국민방위대에 자진 입대했다. 그곳은 군에서 필요한 인력인 18세에서 45세까지의 청장년을 미리 확보하기 위한 곳으로, 필자는 삼천포중학교 교사를 빌려 책상을 치운 교실에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모포를 덮고 자야 하는 일종의 대기 수용소에서 머물러야 했다. 기껏해야 운동장에서 목총으로 제식훈련을 받는 것이 전부였으며, 그 이상 훈련을 시킬 만한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군복과 군화 지급은 물론 소총 사격훈련도 받을 수 없었으니, 군대가 아니라 마치 장병 수용소 같았다." ('우리는 피 끓는 장교다!, 국민방위군 사관생도 시절을 회고하다' 중)

"잠시 심신을 가다듬고 곰곰이 생각하니 결국 필자의 본분인 중학생으로 돌아가 공부하여 앞날을 기약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마침 그 무렵 휴전회담을 진행하는 등 전쟁도 막바지 국면의 소강상태였다. 또한 병역 의무도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면 졸업할 때까지 보류되는 등 국가적인 위급 상황이 많이 완화되고 있었다. 때마침 양정중학교 대구 본교에 이어 피란분교가 부산 초량동 산비탈에 천막 2개를 치고 문을 연 상태였다. 그러나 비교적 학생 수가 많은 저학년 위주로 수업을 겨우 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대학 입학을 앞둔 우리 졸업반에 대해서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가르칠 만한 선생님도, 수업을 받을 학생들도 별로 없었으니 각자 알아서 할 수밖에. 어찌할 수 없는 일, 불과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학입시를 뒤늦게 독학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6·25 전쟁 중 부산에서 대학에 입학하다' 중)

"경성제국대학 등 일제강점기 대학들을 계승한 문리과대학, 의과대학을 비롯해 법과대학, 상과대학, 공과대학, 사범대학 등은 소위 명성과 역사가 있고 학생 수도 많았다. 그러한 주류 대학과 약학대학, 치과대학, 수의과대학, 농과대학, 음악대학, 미술대학 등 단과형이며 학생 수도 적은 비주류 대학 간 견해가 달랐던 것이다. 여기에 전통성, 역사성, 우월감의 차이는 그 거리감을 더 크게 했으며,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각 단과대학별로 각기 다른 고유한 배지를 갖고 있었다. 결국 종합대학인 서울대학교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로고는 없고, 각자의 특성만 내세운 로고만 있었다. ‘University(종합대학)’가 ‘College(단과대학)’로 전락한 셈이며, 이는 해방 직후 1946년의 국립대학안(국대안) 반대 운동 여파가 그대로 남아 있는 구태의연하고 한심한 작태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수의과대학 학생대표인 박중수 회장은 비주류 학부를 결속시키는 한편, 주류 학부를 설득하는 데 역량을 발휘했다. 그 결과 1955년 12개 단과대학 대표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서울대학교 교표 통일안’을 발의했으며, 표결 결과 다수의 찬성으로 현재 서울대 로고를 하나로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학도호국단(학생회) 활동, 참여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다' 중)

이런 식으로 출생에서 성장기까지, 6·25 전쟁과 혼란기의 대학생활, 사회 초년기, 운명을 바꾼 장년기,
수의과대학 시절의 발자취, 제도 개선 관련 연구, 국제회의 참석 일지, 정년퇴임 후 활동 등을 8개 장에 걸쳐 술회했다.

현탁(賢度) 신광순 박사는 1956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석사, 건국대학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5년 일본 국립공중위생원에서 환경위생기술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의료원 영양과장, 보건사회부 식품위생과장, 국립보건원 위생부 식품기준연구담당관 등을 역임했으며 서울보건대학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사단법인 한국식품안전협회 회장, 보건복지부 식품위생심의위원회 위원장, 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기술자문관, 한국HACCP연구회 회장,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 회장, 한국수의공중보건학회 회장, 사단법인 대한보건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식품의 위생적 관리를 위한 행정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1987), '선진국형 식품의약품관리 전담행정기구(FDA)의 필요성'(1995), '식품관리 업무의 평가와 방향설정을 위한 기초 연구'(1999), '국가 식품안전성 확보와 HACCP의 역할과 전망'(2001) 등의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식품위생 제도와 정책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데 공헌했다.

'식품위생학'(1975), '수의공중보건학'(1981), '미국 FDA의 제도와 기능'(1996), 'HACCP 이론과 실천모델'(1998), '국가 식품안전성 확보와 HACCP의 역할과 전망'(2001), 'HACCP 시스템의 개념'(2003), '이물과 식품안전'(2004), '미생물 관리 Q&A: 식품 생산현장 실무용'(2007), '과거를 보고 미래를 연다: 우리나라 식품위생 정책의 역사'(2011)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논문이 있다.

우리나라 식품위생 제도와 정책을 개발하고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사회부 장관(1969) 및 농수산부 장관(1994) 표창과 대한보건협회 학술대상(1993), 국민훈장 모란장(1997)을 수상했다.

자신의 일생을 기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조그마한 가식도, 미화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담히 써내려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잘한 일은 부풀리고 못한 일은 감추거나 축소하려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회고록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원로학자의 경륜과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424쪽, 1만9500원, 지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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