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년 명품시계 수리 장인의 대한민국 시계산업에 대한 항변

대한민국에 세계 최고의 시계 브랜드는 없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시계 수리 장인은 있다.

서울 남대문시장 남대문상가에서 명품시계 수리만 45년째인 미남사(중구 남창동 50-57, 남대문상가 186. ) 대표 김형석 장인이 그 주인공 쯤 된다.

롤렉스, 오메가만 명품시계인 줄 안다면 시계를 아는 사람은 아니다. 파텍필립, 브레게, 오데마 피게, 바쉐론 콘스탄틴같은 스위스 시계 브랜드와 아 랑게 운트 조네, 글라슈테 오리지널 같은 독일 브랜드까지 내리꿰고 있다면 시계에 대해서 좀 안다는 얘길 들을 만한 사람이다. 피아제, 카르티에, 크로노 스위스 같이 국내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도 명품 브랜드 분류에 들어가면 2등급, 3등급 군으로 밀린다.

이른 바 명품시계들의 가격대가 놀랍다. 파텍필립의 최고급 제품은 10억 원 이상을 호가한다. 이쯤 되면 시계는 제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작품차원으로 격상된다고 봐야 한다. 물론 소재부터가 다르긴 하다. 다이아몬드와 플래티늄같은 특수소재가 동원되고 근 200년 가까운 전통과 희소성에 전통과 혁신이라는 찬사가 브랜드가치로 더해진다. 그리고 정밀금속공업분야에 강한 스위스나 독일의 전통과 국가시스템이 이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얘기를 다시 우리나라로 돌린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브랜드가 없다. 하지만 최소한 이러한 명품 브랜드의 시계수리 분야만큼은 이 나라들을 능가할만한 재야의 장인들이 50명 정도 생존해 있다는 것이 미남사 김형석 장인의 설명이다. 이들만 묶어도 명품시계 브랜드 하나 정도는 너끈하게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힘줘 말한다. 어찌 들으면 아이러니하고 좀 아귀가 안 맞는 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세계 최고의 손재주가 있지 않은가.

목포출신의 김형석 장인은 20대 초인 1969, 당시 호남에서 제일이라는 김준환 선생 문하에서 시계기술을 만났다. 평생의 업으로 일찌감치 정한 김형석 장인은 70년대 초 부산의 이종팔 선생에게서 한 단계 더 높은 기술을 접한 뒤 상경, 73년도 서울 소공동 반도조선 아케이드에서 당시 외국인 전용 면세점에서 명품시계 수리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한때는 방황으로 인해 시계업계를 잠시 떠난 적도 있었지만 76년 이후 부터 미남사라는 상호를 가지고 남대문상가에서 명품시계 수리분야에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명품시계 수리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 오히려 명성이 높다.

구매와 수리는 또 다른 영역이다. 살 때는 기분이지만 수리는 신뢰다. 구매는 제품을 파는 곳이면 어디서나 가능하지만 수리는 신뢰와 믿음 없이는 선택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때로는 오히려 진품 여부에 대한 감식을 김형석 장인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있다. 김형석 장인의 실력에 대한 신뢰의 결과이다.

하지만 김형석 장인도 평생 한 우물만 파고 실력만 키웠지 시계산업에 대한 조망은 능력 밖의 문제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시계산업의 특성상 명품브랜드는 양산이 아예 불가능한 분야고 또 양산의 필요성이 오히려 없다고 말한다.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로 시계제작의 연결고리와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국가에서 개입해서 명품시계 산업의 제조 시스템과 브랜드 전략과 관련한 인프라만 구축할 수 있다면 우리도 스위스와 독일을 능가하는 명품브랜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한다.

근거는 아주 단순했다. 한국인의 손기술이 그들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명품시계 수리에 대한 수준은 한국이 한 수 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우리나라 재야에 있는 시계 장인들의 내공을 일본이 먼저 알고 있는 것이다.

명품시계 제조와 명품시계 수리는 동전의 앞 뒷면과 같다. 하지만 남대문상가 미남사 외견은 얼핏 보아 허술해 보인다. 삐까번쩍해도 모자랄 판에 안타까움이 절로 인다. 하지만 그 좁은 수리점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계 최고의 시계수리 마법을 바라보며 장인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경외와 함께 이 또한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우리 사회에 숨은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조금은 복잡해진다.

1947년생인 김형석 장인, 그의 눈빛은 형형하나 곧 칠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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