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직종 명장 6인 중 1인

"나만을 위한 패션을 고집하는 게 요즘의 추세지 않나요. 사람들의 일상복이 양복에서 비즈니스캐주얼복으로 바뀐 것이 결정적이라 생각합니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은 거를 수 없지만 맞춤양복은 꼭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1998년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명장' 강남맞춤정장 월드레스드 박종오 명장의 말이다.

1970~80년 호황기를 누리던 양복업계는 대기업이 기성복 시장에 진출하고 해외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위기를 맞았다. 양복 사양화 우려에도 지난 65년간 양복업계 중심에 서 있는 박종오 명장. 그는 1950년대 중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기술직을 택했다. 

박종오 명장의 명장(名匠) 칭호는 고용노동부에서 인증하는 24개 분야 167개 직종의 '대한민국 명장' 제도를 통해 선발된다. 양복 직종에는 박 명장을 포함해 총 6명이 '대한민국 명장'으로 불린다. 서울에 3명, 부산, 대구, 광주에 각 1명이 있다. 양복업체 침체로 인해 2010년 이후로는 양복직종에서 새로운 명장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강남맞춤정장 월드레스드 박종오 명장
강남맞춤정장 월드레스드 박종오 명장

5일 만난 박종오 명장은 화려했던 양복업계가 사양산업으로 불리게 된 데 대해 "우리 소득 수준 향상과 더불어 맞춤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던 양복시장에 '가성비 좋고, 기다리지 않고 빨리 입을 수 있는' 기성복시장이 커지면서 고객을 뺏기게 된 것 같다.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외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대기업들의 복장 자율화가 진행되며 사람들이 양복을 찾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박 명장은 "많은 외국인 유명 브랜드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일상복이 양복에서 비즈니스캐주얼복으로 바뀐 것이 결정적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맞춤양복 시장에 전망을 묻자 "국내 맞춤양복의 문제는 '중간층'이 사라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비싼 영국, 이탈리아 명품 양복점만 해도 수십군데고 비교적 싸다고 할 수 있는 30~50만원 대 소비자층이 찾는 편집 매장은 늘고 있는데 중간에 해당하는 100~200만원 사이의 품질이 좋은 옷을 하는 곳이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나만의 옷을 찾는 소비 트렌드가 늘어나고 있다"며 젊은이들로 하여금 양복시장의 활성화를 기대했다.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최광수 외무부 장관, 현대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을 언급했다. 박 명장은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에 간 적이 있는데 제게 허리를 굽여 인사를 하셨다. 일종의 명장에 대한 예우라고 할까. 김 대통령은 그런 분이셨다. 최광수 외무무 장관은 전형적인 멋장이 신사 스타일이셨다. 제가 디자인한 옷을 좋아하셨고 해외 출장을 가실 때 제가 만든 양복을 입으셨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은 제가 롯데일번가에 있을 때 단골이셨다. 우직하시고 일등을 고집하시는게 그분 스타일이셨다"고 말했다. 

강남맞춤정장 월드레스드 박종오 명장
강남맞춤정장 월드레스드 박종오 명장

박종오 명장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맞춤 양복같은 기성복'을 만드는 것이다. 기성복은 여러 대중을 상대로 몇 가지 사이즈에 한정해서 제작하기 때문에 맞춤복 만큼 꼭 맞는 핏이나 디자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만을 위한 패션' 고집하는 게 요즘의 시대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맞춤양복은 꼭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맞춤양복 활성화를 위해 업계가 노력할 부분을 묻자 박종오 명장은 "마케팅 능력이다. 맞춤양복은 단골이 있어야한다. 저만해도 그동안 '편한 옷, 몸에 잘 맞는 옷' 만드는 일에만 주력했지 마케팅은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세계 기능올림픽에서 12연패를 했으니 기술자가 얼마나 많았겠나. 그러나 성공한 이들은 드물다. '옷 만드는 기술'은 있었지만 디자인, 패턴 기술이 부족했고 마케팅에는 문외한"이라며 잘 만드는 기술은 물론 소비자를 끌어 당기는 마케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아울러 박 명장은 "해외 명품 양복을 자신의 체형에 맞추려 저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다. 명품양복은 정확히 표현하면 '브랜드는 입는 것'이다. 명품은 설계할 당시부터 표준규격이라는 것이 있다. 손을 대면 황금비율이 깨진다. 한국인과 유럽인의 신체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은 팔길이다. 저를 찾아 수선을 맡겼다가 맞춤양복을 하시는 분들이 대다수다. 처음부터 본인의 치수를 재서 온전히 맞춤 옷과 명품이라는 브랜드를 입기위해 수선하는 것은 출발부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박종오 명장은 "코로나 상황이 언제 끝날 지 예측할 수 없다. 양복업계에도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쳤다. 과거 세계기능올림픽 12연패에 빛나던 우리의 양복 기술로 만든 맞춤양복이 세계 우수의 명품 브랜드 이상의 품질과 멋스러움을 줄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소비자에 맞춤양복 관심을 당부했다. 

 

 

우먼컨슈머=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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