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동대문구 한 아파트 11층에 사는 회사원 이민호(36)씨는 위층 소음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몇달 전 비슷한 또래 부부가 이사 온 후로부터 숙면을 취해본 적이 없다.

윗집 5살과 3살 아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지은 지 10년 된 이 아파트는 윗층 소음이 고스란히 아랫층에 전달된다. '내 집에서 내가 소리 내는데 왜 간섭이냐'란 반응에 항의도 포기한지 오래다. 이씨는 참는 것도 싸우는 것도 지쳐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2. 6살 된 아들을 키우는 주부 곽희영(35)씨는 요즘 1층 아파트를 구하러 다닌다. 쉴새 없이 뛰어다니는 아들 때문에 쫓아온 아랫집 이웃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에 지쳤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층간소음을 줄여준다는 방음매트를 집 구석구석에 까는 등 자구책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층간소음을 의식하다보니 아이 행동을 제약하고 본인도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게 됐다. 곽씨는 계모집에 얹혀 사는 것처럼 눈치 보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최근 아파트 층간소음을 둘러싼 이웃 간 갈등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아파트 층간 소음은 단순한 이웃간 다툼을 넘어 살인사건까지 번지고 있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층간소음 때문에 분쟁조정 과정이라는 절차가 생겼고, 그 피해보상 금액도 한층 커졌다. 그러나 여전히 관련법규도 없는 실정이라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은 전무한 상태다.

환경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가 지난해 3~12월 접수한 층간소음 민원은 총 7021건이다. 더욱이 센터 개소 전인 2005~2011년 전국 지자체에 접수된 민원이 1871건에 불과하며, 이 중 층간 소음으로 인정돼 소음 발생자에게 배상 책임을 지운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특히 모두가 즐거워야 할 민족 최대 명절 설 연휴에 발생한 살인사건은 층간소음이 유발하는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정부 및 행정당국은 층간소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층간 두께를 늘리는 것 외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그나마 최근에는 층간소음 문제가 대두되면서 건설사에서 아파트 시공단계부터 바닥재와 천장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상황이지만 이미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처럼 층간소음 분쟁이 도를 넘어선 사회적 문제로 야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층간소음 분쟁을 조정할 법 규정과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센터 등에서 민원을 접수하기는 하지만 화해를 권고하거나 조정하는데 그칠 뿐 강제적인 구속력은 없다. 경범죄특별법상 '인근 소란'이 있지만 규정이 모호하고 범칙금 처분이 전부다. 아파트 시공사나 위층 주민을 상대로 하자보수 또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려고 해도 승소 가능성은 전무하다.

2004년 이전 완공된 아파트는 피해 인정기준 신설 전이라 근거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패소했고 신설 후에도 기준(55이상, 45이상)이 너무 높아 인정된 사례가 없다. 때문에 환경부는 올해부터 층간소음 피해 인정 기준을 낮 40이상, 35이상으로 낮췄다.

 이와 함께 층간소음 피해에 대한 법적 기준을 세우는 '주택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개정안에는 층간소음에 대한 책임이 입주자에게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정부가 공동주택 주거생활 소음 기준을 정하도록 명시했다.

아울러 국토해양부도 신규 아파트에 대해 주택건설기준을 개정, 내년 3월부터 바닥구조 기준을 강화키로 했다.

현재는 바닥두께(벽식 210, 무량판 180,기둥식 150) 또는 바닥충격음(경량충격음 58, 중량층격음 50) 중 하나를 만족시키면 되나 이를 동시 충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업계 및 관련 전문가들은 기준 강화 등의 대책만으로는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층간소음은 각자 성향과 처한 상황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달라 명확히 하기가 힘들며, 완전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강화된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개정 기준 적용시 비용이 평균 7~10% 더 들 것으로 추정된다.

윤대현 서울대 정신과 교수는 "층간소음은 대개 이웃간 사소한 다툼으로 치부되지만 언제든지 강력사건의 도화선이 될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문제는 각자 성향과 처한 상황에 따라 층간소음이라고 느끼는 정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라면서 "층간소음은 각박한 현대사회가 불러온 하나의 병리적 현상으로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0은 불가능하고 낮출 수는 있다. 단 비용이 그만큼 높아진다""층간소음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새 규정에 맞춘다고 해도 모두가 만족하긴 힘들다. 따져볼 것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바닥두께 기준 등 관련 규정을 강화·신설하는 것이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소음 문제가 발생해도 기준에 맞춰 시공한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 할 수 없었다"면서 "현실에 맞춰 소음 규정을 더욱 강화하는 등 규정 강화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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