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부산지역은 우리나라 근대적 금융기관의 효시였다. 일본인 소유의 제일은행이 부산에 가장 먼저 지점을 설립했지만.

부산은행 본점 전경 (사진= 한국금융30년사(78년))
부산은행 본점 전경 (사진= 한국금융30년사(78년))

1978년 재무부가 발행한 한국금융30년사에 따르면 부산은행 설립 움직임이 태동한 것은 1959년 서울은행이 지방은행으로 발족하면서 부터다. 당시 부산지역의 유력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은행 설립이 추진됐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1967년 1월 17일 대통령 연두교서 발표 후 부산상공인들은 은행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즉 1967년 1월 23일 부산상공회의소는 가칭 ‘부산지방은행’ 설립추진위원회 회칙을 통과시켰고 1월 30일 추진위원회 고문, 추진위원, 상임위원, 전문위원을 위촉했다. 2월 4일에는 부산은행 설립추진위원회 위원총회를 열고 발기인단을 공개모집하기로 결의했다. 

1967년 3월3일 제1차 발기인회를 개최해 정관초안을 통과시켰고 3월 20일 제2차 발기인회에서 자본규모를 수권자본금 6억원, 납입자본금 3억원으로 결의한 뒤 4월 6일자로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설립내인가를 얻어 10월 10일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관이 원안대로 통과됐고 이사 및 감사 선임이 있었다.

이사회에서 초대임원으로 은행장 이상덕, 전무이사 장형식, 상무이사 박장길, 이사 강석진, 장상준, 상임감사 진근수, 감사 이동설 등이 선임됐다.

부산은행은 10월 16일자로 설립내인가를 얻어 본점을 부산시 중국 신창동 1가 8번지에 두고 10월 25일 개점한다. 당시 총무부와 업무부의 2개 본부 부서 및 본점영업부의 1개 영업점포에 총83명의 직원으로 출발했다. 

이후 10여년이 흐른 1978년 총자산규모 3천910억원, 54개 영업점에 2천2백여 직원을 거느린 대형은행으로 성장했다.

초창기 10여년 성장과정을 보면 1968년 1월27일 을류외국환업무의 취급인가를 얻어 2월 1일부터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했고 11월 1일부터는 신탁업무도 겸영하기 시작했다.

그해 10월, 12월에는 각각 3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하여 납입자본금이 9억원으로 늘어났다.

1968년 12월 28일에는 울산공업단지소재 기업체에 대한 금융지원을 위해 울산에 출장소를 설치했다.

1970년 9월 25일 제7회 저축의 날에는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으며 1971년 1월 25일에는 소형 컴퓨터를 도입해 업무의 효율화를 기했다. 

1973년 1월 31일과 5월 1일에는 정부당국의 지방은행 영업구역 조정방침에 따라 진주, 울산지점을 폐점하고 양지점을 경남은행에 이관했다. 그해 4월 11일에는 일본국에 하관사무소를 설치하여 해외 첫걸음을 내딛었다. 

1975년 9월 25일, 일본 하관사무소를 대판으로 이전하고 9월 29일에는 총예수금이 지방은행으로서는 최초로 1천억원을 돌파하게 됐다.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1977년 11월 1일, 재무부로부터 ‘뉴욕사무소’의 설치인가를 얻어 일본에 이어 미주지역에도 거점을 마련했다.

부산은행 기구는 최고의사결정기관인 주주총회와 경영정책을 수립하고 중요업무사항을 결정하는 이사회 및 회계감사기관으로서 상임감사를 뒀다. 그 밑에 자문기관으로서 인사위원회, 업무운영위원회, 사무개선위원회의 3개 위원회와 부장회를 뒀다.

부산은행의 인적구성은 직원을 직능별로 일반직원, 고용원, 별정직으로 구분했으며 창립 이후 계속되는 업무량의 증가와 기구확장으로 직원 수는 매년 증가해 1977년 말 책임자 403명, 남행원 787명, 여행원 706명, 고용원 269명, 별정직원 53명 등 총 2218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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