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조선신탁회사로 출발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우리은행의 전신중 하나인 한일은행은 1932년 12월16일에 창립된 조선신탁주식회사와 1937년 8월14일 창립된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에서 시작된다.

사진은 1970년대 한일은행 광고
사진은 1970년대 한일은행 광고

한일은행은 이 두 은행에서 출발하여 1946년 양사가 은행으로 전환하고 1954년 다시 합병으로 탄생됐다.

1978년 재무부가 발간한 한국금융30년사에 게재된 내용을 중심으로 한일은행 발전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1910년대 신탁업을 시작해 1920년대에는 30여개사가 난립할 정도로 많아졌다. 

1931년에 ‘조선신탁업령’을 비롯한 법령으로 신탁회사는 5개사로 정비됐으나 신탁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자세는 갖추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1932년 12월16일 한일은행의 전신인 조선신탁주식회사가 공칭자본금 1천만원, 불입자본금 250만원으로 창립하게 된다.

그 후 전국 신탁일원화 방침에 따라 기존 5개사를 점차 매수합병하여 1934년에는 한국 유일의 신탁회사로서 8.15해방 때까지 유지한다.
1922년 ‘조선무진업령’ 실시 후 무진업계는 발전을 거듭하며 1932년, 회사는 32개사가 된다. 당국은 무진 통합정책을 실시, 1937년 8월14일 공제, 공립, 흥업의 3사가 공제무진을 중심으로 합병하여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가 신설됐다.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 설립당시 공칭자본금은 500만원이었으나 당국의 무진일원화 정책에 부응해 1942년까지 여타회사를 완전통합한 후 공칭자본금 1,685만원, 불입자본금 594만원이 됐다. 명칭도 조선신탁주식회사로 개칭했다.

조선신탁주식회사는 해방 후 1946년 일반은행업무를 경영하는 ‘조선신탁은행’으로 전환하고 1950년에는 상호를 ‘조선신탁은행’으로 변경했다.

조선무진주식회사도 1946년 일반은행업무를 주업무로 하고 무진업무를 겸영하는 일반은행으로 전환하여 ‘조선상호은행’이 되었고 그 후 ‘상호은행’으로, 1950년 ‘한국상공은행’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들 은행은 6.25사변으로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한국신탁은행과 한국상공은행에 잠재된 내부적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1954년 10월1일 한국신탁은행이 한국상공은행을 흡수합병하고 상호를 ‘한국흥업은행’으로 변경했다.

양행 합병으로 은행업무를 주업무로 하고 신탁업무를 겸영체제로 하는 전환으로 완전한 일반은행의 성격을 갖게됐다. 
은행법 실시이후 금융민주화 방침에 따라 은행 민영화가 실시되자 자산재평가 적립금을 자본전입해 대폭적인 증자에 나섰다.

1960년 1월1일을 기하여 상호를 한국흥업은행에서 한일은행으로 변경하며 새로운 도약을 맞이했다. 

5.16혁명이후 ‘부정축재처리법’ 및 ‘부정축재환수절차법’에 의해 부정축재가가 소유하던 주식이 정부에 환수되고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을 주 내용으로 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됨에 따라 한일은행도 민영화된지 4년만에 정부지배를 받게된다. 

그간 한일은행만이 독점하던 신탁업무는 1962년 11월1일부터 모든 일반은행이 겸영하게 됐으나 그 후 1969년 12월1일 한국신탁은행이 설립됨으로써 신탁업무를 이관하게 된다.

1962년 4월1일 본점 외국부에서 을류외국환업무를 개시하여 1967년 1월30일 갑류외국환은행으로 승격했고 그해 3월1일 부산지점과 대구지점이 을류외국환업무 취급인가를 받았다.

특히 국제화에 심혈을 기울여 1968년 11월11일 일본에 동경지점을 신설하여 예금대출 환 등 일반은행업무와 외국환업무를 취급했다. 

한일은행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국형화 국제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도약기를 맞이했다. 

발전을 거듭하던 한일은행도 IMF 파고를 극복하지 못했다. 외환위기시 재벌들에게 제공한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1999년 1월 한국상업은행과 합병하게 됐다.

합병은행은 한빛은행으로 은행명을 변경했고 2001년 우리금융지주에 편입되면서 2002년 5월 우리은행으로 상호를 변경, 오늘에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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