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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대] 미군정 보험행정 개시는 맥아더사령부 공고 1호로 출발
  • 박문 기자
  • 승인 2020.03.31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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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우리나라 보험업에 대한 미군정의 보험행정 개시는 1945년 9월7일 맥아더 사령부가 공고 제1호로서 남한 전 지역에 군정을 실시한다는 내용으로 출발했다. 

지금의 메리치화재의 전신은 1922년 조선화재해상보험으로 창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손해보험사이다. 이후 조선화재는 1950년 동양화재를 거쳐 2005년 메리츠화재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 사진은 메리츠화재가 2012년 창립90주년을 맞이하여 만든 동영상으로 당시 설립을 조선식산은행에서 준비했다. 
지금의 메리치화재의 전신은 1922년 조선화재해상보험으로 창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손해보험사이다. 이후 조선화재는 1950년 동양화재를 거쳐 2005년 메리츠화재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 사진은 메리츠화재가 2012년 창립90주년을 맞이하여 만든 동영상으로 당시 설립을 조선식산은행에서 준비했다. 

그해 12월6일 법령 제33호로 ‘조선 내 소재 일본재산의 군정청 귀속에 관한 건’을 공포함에 따라 조선화재를 비롯한 15개의 일본 손해보험사의 국내지점이 군정청에 귀속됨과 동시에 관리를 받게됐다. 

미군정하의 보험행정은 조선미군청 재무국 보험과에서 주관했다. 미군정의 보험행정은 손해보험 특히 화재보험이 그 중심이었다.

1978년에 발간한 재정금융30년사에 따르면, 행정조치 중 특기할 만한 것은 신설회사의 자본금을 1천만 원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책임준비금의 산출방법도 일부 수정됐다. 1941년 일본대장성령 제71호에 의해 개정된 보험업법시행규칙 제33조를 일부 수정한 것이다. 미수보험료의 회수를 위해 대리점미수계정(당시는 대리점대)을 본점에서 집중 관리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당시 보험행정은 일관성 및 체계화가 결여되어 난맥상을 면치 못한 무원칙한 정책에 불과했다.

주요 원인에 대해 재정금융30년사에서는 먼저 보험행정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이 보험전문인이 아닌 직업군인었다는 점을 꼽았다.

또 군정청내에 보험행정부서의 주요 설치목적이 일본보험회사 잔여재산의 관리 및 회사신설과 그 감독에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보험업계에서 능동적으로 정책을 건의할 수 있는 능력과 자세를 갖추지 못하였다는 점과 함께 군정당국이 보험정책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자료 및 감독법규 등이 없었다는 점이 지적됐다. 

한편, 당시 군정당국의 보험행정내용을 보면, 먼저 신규회사에 대한 면허를 대폭 허용했다.

군정당국은 기존 조선화재와 조선생명 이외에 손보사 7개사, 생보사 3개사, 총10개사의 신설을 허용했다.

이 같은 군정당국의 신규보험회사 허가방침은 해방전의 북한지역, 만주, 중국의 영업지역에 비하여 시장이 협소하고 원보사의 신설보다 오히려 기존회사의 증자가 바람직하며 과당경쟁을 자초한다는 등의 이유로 기존회사의 반대에 직면했다. 당시는 영업범위가 화재보험의 단일종목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에 대하여 군정당국은 영업의 자유라는 원칙에 비추어 소수회사에 의한 보험업의 독점을 용인키 곤란하며 동업사 증설은 위험부담을 경감시킬 것이므로 당국의 방침에 따르도록 지시했다.

미수보험 처리 문제의 경우 신규회사의 신설로 인하여 화재보험시장을 놓고 원보사 사이의 경쟁은 더욱 가열되었고 이로 인한 미수보험료의 누적은 불가피한 현상이 됐다. 미수보험료 누적에 대하여 군정당국은 1947년 4월1일자로 각사에게 그해 4월 말일까지 전액 회수조치할 것을 촉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아니할 때는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지시에 대해 조선화재는 “실행이 곤란하고 대리점의 협조를 얻기가 어렵다”고 했고, 서울화재의 경우는 “미수액은 600만원으로 회수를 적극 독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협소한 시장을 대상으로 한 원보사의 과당경쟁을 요인으로 한 미수보험료는 회수가 매우 곤란한 형편에 처해 있어서 군정당국의 지시는 실효를 거둘 수가 없었다.

보유제한도 철폐했다. 1947년부터 귀속재산 및 금융기관 담보물에 대한 거액계약의 속출로 군정당국은 각사에 1947년 5월13일자로 보유계약과 현행보유방법 등에 관한 자료를 제출토록 명령하고 그해 12월10일부터 1위험에 대한 게약액은 납입자본금(1천만원~2천만원)의 1할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다만 ECA ‘풀’과 관재 ‘풀’에 대하여는 정책상 예외로 인정하고 그후 1951년에 이르러서 두차례에 걸친 증자조치 이후에야 비로소 보유제한규제를 철폐했다.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에 관해서는 1946년 6월23일자 지시통첩에 의거하여 그해 7월1일부터 시행토록 했다. 책임준비금의 종류는 미경과보험료준비금, 법정준비금, 보상준비금으로 구분하고 적립방법 및 그 산출방법은 1941년도에 개정된 일보 보험업법 시행규칙을 일부 수정하여 적용토록 했다.

손해보험회사의 투자에 대하여는 1947년 3월부터 4월까지의 투자 및 자산운용제한 시달이있었다. 주요 내용은 손보사는 당국의 서면 승인없이 어더한 자금차입도 금지하며 자금차입을 하고자 하는 회사는 신청서에 투입자금의 금액, 용도, 차입의 원천, 지급이자, 상환방법, 차입기간 등을 기재하여 당국에 제출토록 했다. 이 지시는 1948년 3월29일까지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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