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니스트]  중세 후반기인 1400년대부터  1700년대에 프랑스에서 크게 유행했던 골프와 유사한 놀이가 있었다. 프랑스말로 ‘주 데 마일 JEU  DE  MAIL’로 이름 붙여진 이 경기는 왕들도 좋아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1550년대 앙리 2세 같은 왕은 현대적 의미의 싱글골퍼에 해당할 만큼 열광적이었다.

주 데 마일을 치는 모습
주 데 마일을 치는 모습

치는 방식은 골프와 마찬가지였으나 임팩에서 나무채의 헤드면이 달랐다. 골프는 헤드 앞면 으로 가격하지만, 주 데 마일은 망치를 사용하는 방식처럼 둥글고 좁은 옆면으로 나무볼을 가격 했다. 마치 절구통을 내려치는데 단지 옆으로 스윙을 하는 식이었다. 단단한 박달나무등으로 만든 채에 맞은 볼은 수 백 야드도 족히 나갔다.
 
경기 방식은 지역마다, 치는 사람들마다 제각각이었다. 티박스에서 거리가 많이 나간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 있었는가 하면  홀 속에 집어넣기도 했고, 크로스컨트리처럼 수 킬로미터 너머에 성당의 정문등을 최종 목표로 설정하기도 했다. 당시 벨기에와 이탈리아 등으로도 이 방식이 퍼졌고 르네상스 시대의 인근 국가들이 주데 마일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당시 파리는 사교계의 중심도시여서 귀족들 사이에서는 남녀 할 것없이 크로켓, 테니스, 주 데 마일 등 여러 종류의  볼게임에 열중해 있었다. 프랑스인들이 골프의 기원에 대해서 그다지 열을 내고 있진 않지만 프랑스 문헌은 12세기 경부터 파리에서는 4,5 종류의 이른바 ‘고대볼 게임’ 이 행해지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골프골동품 동우회에서는 주 데 마일의 나무채와 볼이 유사 하지만 골프와는 동일하지 않다고 해서 골동품의 가치로 크게 평가하지는 않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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