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컨슈머= 김은영 기자] 한국의 월가로 불려지는 여의도, 이 곳에는 자녀들에게 자본시장의 역사를 소개할 수 있는 한국거래소(KRX) 홍보관이 있다.  

한국거래소 1층 홍보관 벽면에는 과거에 사용하던 수작업 매매 최종일 시세판이 1997년 8월 30일로 멈추어 있다.

시세판에는 익숙한 상장법인 이름도 있지만 장기신용은행, 상업은행, 조흥은행과 같이 낯선 이름도 보인다. 

지금은 증권 투자자들이 모바일트레이딩과 홈트레이딩을 통해 대부분 증권 매매거래를 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증권사 객장이나 전화를 통해서 매매 주문을 해야만 했다.  

1997년 9월부터 증권 매매거래가 전면 전산화 되면서 수작업 매매 체결 장소인 여의도 한국거래소(옛 증권거래소) 1층 Floor는 증권시장 역사의 장으로 남아있다.  이 곳에는 증권시장의 상징과 같던 육각형 포스트와 일부 시설물들이 보존되어 전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어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방문하면 좋다.  

증권시장이 처음 문을 연것은 1956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한국전쟁 이후, 증권회사의 영업점에서 장외거래 형태로 채권거래가 이루어 지면서 증권시장 개설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에 1956년 2월 증권단, 금융, 보험단이 공동출자한 비영리조직 형태의 대한증권거래소가 설립되었다.

같은해 3월 3일 서울 명동에 증권시장의 문을 열었는데, 개장일에 상장된 종목은 총 12개 종목 뿐이었다. 

조흥, 저축, 상업, 흥업 등 4개 은행과 경성방직,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등 8개 회사가 발행한 주식과 건국국채 3종도 함께 상장되었다고 한다. 

증권시장 개설 이후 초창기는 집단경쟁매매의 시기로 격탁매매(Call Trading)를 통해 매매가격을 결정했다. 

매매 체결을 알리던 격탁 모형
매매 체결을 알리던 격탁 모형

매도자와 매수자가 상호 경쟁하는 가운데 가격과 수량이 합치되는 순간 거래소 직원이 격탁을 두드려 매매가격을 결정했고, 시세를 게시하는 요원이 목판으로 된 시세판에 주가를 기재해 시세를 공지하는 형태였다. 

개별경쟁매매의 시기로 넘어가면서 G자형 포스트, 말굽형 포스트, 육각형 포스트로 변화해 나갔다. 

현재 홍보관으로 사용중인 이곳에는 10개의 육각형 포스트가 설치되어 증권거래가 이루졌으며, 각 포스트에는 매매결과를 입력하는 단말기와 호가정보 단말기가 있었다.  1997년 증권거래의 완전 전산화가 시작된 후 현재까지도 육각형 포스트는 증권시장의 상징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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