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을 보면 이제는 가정도, 학교도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정부에서는 아동성폭력 예방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학교를 비롯한 관련 기관에서는 앞 다투어 아동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책은 가해자 처벌 강화, 화학적 거세, 격리, 신상공개 확대 등 대부분 가해자 관련 ‘사후대책’ 중심이며, 성폭력 예방교육 역시 예방교육이 아닌 ‘대처교육’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이러한 가해자 중심의 대책과 대처교육이 성폭력을 근절하고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아동성폭력은 힘(power)의 차이에 의해 발생되는 범죄행위이다. 예방이란 범죄가 발생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므로 사후대책은 근본적인 예방책이 아니다. 그리고 성폭력 같은 위험상황에서 힘이 약한 피해아동이 자신보다 훨씬 힘이 센 가해자를 상대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지금 유치원, 학교 등에서 실시되고 있는 아동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을 한번 보자. 성폭력 위기에서 남성의 급소를 발로 차라, 큰소리로 소리를 질러라, 호신술을 배워라 등의 내용으로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가해자를 상대로 “싫어요, 안돼요” 라고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성폭력 예방교육은 부모·교사 등 어른이 함께 할 때 가능
 
이렇게 하면 어린 유치원생, 초등학생이 자신보다 2배 이상 힘이 강한 가해자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인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 성폭력상황에서 소리를 지르지 못한, 발로 차지 못한, 싫다고 이야기를 못한 피해아동은 모두, 피해 아동의 잘못이란 말인가?
 
“NO”라는 표현은 성폭력상황에서 저항의 표현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건강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때 하는 것이다. 물론 아동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아동성폭력 예방을 위해 중요하지만 이보다 우선되어야 할 일은 아동이 자기표현을 잘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먼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화 분위기 형성이다. 아동성폭력 가해자가 두려워하는 아동은 부모 등 가족과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가족과의 친밀도가 높은 아동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예방교육은 일상생활에서 부모 등 보호자와 교사를 비롯한 어른이 함께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아동성폭력 예방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피해자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저항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던 ‘능력중심 예방전략’에서, 어른과 지역사회가 아동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아동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역사회 기반의 통합적 예방전략’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즉 성폭력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위기상황에서 아동에게 대처하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우리 어른들이, 사회가 아동보호를 위한 예방과 지지체계를 제대로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아동보호를 위한 예방과 지지체계를 제대로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예방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안전망 구축을 위한 올바른 경계(boundary) 교육에 초점을 둔 1차 예방, 성폭력을 유발하는 가정폭력, 빈곤, 방임 등의 위험요인 제거와 아동보호요인 강화를 위한 2차 예방, 재발방지에 초점을 둔 3차 예방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 3가지 예방 시스템이 적절하게 구성되고 작동이 잘 되는 사회가 바로 건강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 성폭력 대처가 아닌 예방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교육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적 경계(private boundary)를 존중하는 교육. 1차 예방에 초점을 둔 성폭력 예방교육이 필요하다.
 
아동성폭력 예방교육은 아동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아동이 스스로 대처해야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이 사회의 어른이 아동의 안전한 보호와 권리가 존중될 수 있도록 예방교육의 방향이 정립되어야 한다.
 
성폭력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친절을 베푸는 어른을 거부하지 않아도 되는, 스스로 가해자에 대항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만들어주는 것이 이 사회 우리 어른들의 역할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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