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지 얼마 안돼서 잘 모르겠어요. 사장님이 오셔야…."

▲ 15일부터 편의점서 해열제-소화제 구매 가능

 

15일 오전 7시께 서울 상도동의 한 편의점. 감기약 판매 여부를 묻자 아르바이트생은 계산대 왼쪽 뒤편으로 걸어가더니 의약외품 진열장 뒤에 있던 커다란 흰 봉투를 부시럭대며 꺼냈다. 아직 포장도 채 뜯지 않은 약들이 계산대 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생은 2분여 동안 약상자와 씨름하더니 드디어 감기약을 찾아낸 듯 알약과 물약을 하나씩 건넸다.
 
복용법을 묻자 "여기에 들어온지 얼마 안돼서 몰라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알약으로 주라"는 말에 바코드를 찍는 순간 '삐-삐-' 경고음이 울렸다. 아르바이트생은 포스에 '판매불가 상품'이라고 뜬다며 오히려 당황해했다. 돌아오는 건 "전날 밤 들여오긴 했는데…"라는 말 뿐이었다.
 
편의점 상비약 판매가 첫 날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장승배기와 여의도, 강남 일대 CU와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등 편의점 10곳을 둘러본 결과 상비약을 살 수 있는 곳은 단 1곳도 없었다. 휴일과 야간에 상비약을 구입 못하는 불편을 해소코자 도입된 제도의 초기 정착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실제로 상비약을 판매한다는 문구만 휘황찬란하게 걸어놨을뿐, 정작 약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해열제만 판다"는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편의점 2만2천826곳 가운데 67%에 해당하는 1만5천208곳이 의약품 판매를 신청, 4시간 과정의 교육을 마쳤다.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는 지하철 편의점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편의점이 신청한 셈이다.
 
문제는 이 교육이 일회성에 그친데다, 주요 판매자가 될 것으로 추정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교육대상에서 빠져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수시로 아르바이트생이 바뀌는 편의점의 특성상 제대로 교육 내용이 전달될지도 미지수다.
 
여의도의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오전에만 근무해 아직 상비약 판매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며 "상비약 구비여부도 오후에 점주가 와야 확인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동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강소라(가명·25·여)씨는 "상비약 매대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며 "오전에 2~3명이 감기약 구입을 위해 방문했지만 빈 손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이같은 수수방관적 태도에 소비자들의 볼멘 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주부 윤가영(가명·29·여)씨는 "수일 전부터 감기약, 해열제 등을 판다고 광고하더니 정작 점포에서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뿐이었다"며 "약국 문 닫는 시간에 판매하라고 제도를 만든건데 이런 식이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직장인 최인환(가명·34)씨는 "점주로부터 돈도 안되는 장사까지 해야 하느냐는 불평까지 들었다"며 "기존에 판매하던 의약외품도 안팔린다고 토로했다.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편의점 업계는 정착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장사도 잘하는 점포가 있고 못하는 점포가 있다"며 "아직 첫 날이다. 3~4일 정도 여유를 갖고 지켜봐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상비약 판매와 관련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은 온전히 점주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본사가 점주에게 상비약 판매를 권장하고 있음에도 불구, 판매권자는 점주이기 때문에 본사의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편의점 사업의 특성상 아르바이트생의 근무 주기가 짧은 만큼 소비자들의 업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속단을 하진 말아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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