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기념 인터뷰] '3대가 망한다'는 독립운동...3대 후손이 말하는 현실은
  • 김아름내 기자
  • 승인 2019.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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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만세운동 주도한 차희식 선생, 손자 차창규 광복회 전 사무총장 인터뷰

[우먼컨슈머 김아름내, 신문고뉴스 추광규 공동취재]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았다. 100년 전 오늘, 우리 선조들은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일어나 독립의 기초를 닦았다.

3.1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이에 대한 보복행위가 자행됐다. 제암리학살사건으로 불리는 사건 또한 만세운동에 대한 일제 보복행위 가운데 하나다.

화성 수원에서 진행된 만세운동 중심에는 차희식(1870.11.10~1939.10.18) 선생이 있었다. 그는 2천 명이 넘는 주민들을 조직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에 일제는 4월 1일 제암리에서 23명, 고주리에서 6명을 학살하며 계획적인 보복만행을 자행했다.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5년형을 언도 받은 차 선생은 9년 2개월 만에 출옥했으나 오랜 옥고의 후유증으로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69세 일기로 눈을 감았고 정부는 1968년, 차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차희식 선생의 손자 차창규 전 광복회 사무총장을 만나 3.1운동의 의미 등을 물었다. (사진= 인터넷언론인연대 제공)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차희식 선생의 손자 차창규 전 광복회 사무총장을 만나 3.1운동의 의미 등을 물었다. (사진= 인터넷언론인연대 제공)

지난 2월 19일, 차희식 선생의 손자 차창규 광복회 전 사무총장을 만나 독립운동 100주년 의미와 독립운동가 3대로서의 입장을 물었다. 인터뷰는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이뤄졌다.

손자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어떤 분일까. 안타깝게도 차창규 전 광복회 사무총장은 조부인 차희식 선생을 뵙지 못했다. “아버지께 들은 바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힘이 장사시고 사교에 능해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당시 화성시 우정면 서포리란 곳에 차씨 마을이 있었고 할아버지는 조카와 함께 만세 운동을 주도하셨다”고 말했다.

당시 민족대표 34인 중 한 명인 스코필드 박사는 화성시에서 격렬히 이루어진 만세운동을 촬영해 전 세계에 알렸다. 격렬한 독립운동에는 보복이 뒤따랐다. 당시 동아일보는 ‘살이 타는 냄새가 난다’는 내용으로 일본 헌병들이 수원으로 와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고 보도했다. 제암리학살사건도 그 중 하나다. 일본군이 주민들을 교회에 집합시켜 문을 잠근 뒤 불을 질렀다. 몇 명이 교회 밖으로 도망쳤지만 일본군의 칼을 피할 수는 없었다.

차창규 전 사무총장은 “할아버지는 2,500여명을 지휘해 당시 장안면사무소 문서를 불태우고 화수리 초등학교 쪽에 있는 파출소로가 소장을 타살했다. 이로 인해 보안법 위반, 건축물 파괴, 방화, 살인으로 10여년을 서대문 형무소에서 지내셨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만세운동으로 아버지도 고초를 당했다고 덧붙였다.

독립유공자 후손인 차창규 전 사무총장은 28세에 군대 제대 후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 모인 단체인 ‘광복회’에 몸담게 됐다. 여기서 활동하면서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학비 면제가 되도록 했고 취업 등을 도왔다. ‘독립운동한 집안은 3대가 망한다’는 말을 우려해서였다.

차창규 전 사무총장은 “세월이 지나니 훈격이 1~3등급에서 1~7등급으로 늘어났고 대우도 향상됐다”면서도 “제가 50년간 광복회에 있으면서 후손들을, 국가를 위해 혁혁한 일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소회했다.

그는 “일제의 핍박을 받던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대개 배울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았고 생활도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자존심이 강하다”면서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국가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자립해서 살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 전 사무총장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정부에서 진행하는 수의계약을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계약할 수 있도록 했다.

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가 몇 명이냐는 질문에 “공적을 찾아 제출해야하기 때문에 1만 5천명 미만”이라고 말했다.

차 전 사무총장은 “독립운동가들은 자식이나 손자들이 보복당할 근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보훈처는 ‘근거를 제출하라’고 한다. 최근, 당시 징역을 살았던 게 확인돼 서훈을 받은 분이 있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했어도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어 문서에 의존하지 말고 주변 상황을 살펴 한 명이라도 찾아내서 보호, 지원해야한다고 했다

차 전 사무총장은 북한의 독립유공자와 남한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 공산주의를 떠나서 이북은 친일파 청산을 잘했다. 김일성이 독립운동 후 집권하면서 독립운동가와 혁명열사를 찾아 교육시키고 후손들은 정부기관에 요직시켜 현재는 금수저로 살고 있다. 그러나 남한의 후손들은 친일파들이 집권한 세상에 살고 있어 흙수저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차희식 선생의 손자 차창규 전 광복회 사무총장을 만나 3.1운동의 의미 등을 물었다. (사진= 인터넷언론인연대 제공)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차희식 선생의 손자 차창규 전 광복회 사무총장을 만나 3.1운동의 의미 등을 물었다. (사진= 인터넷언론인연대 제공)

극우 인사들이 백범 김구 선생이나 유관순 열사를 비하하는데 대해서는 “그런 정신, 생각을 가진 것은 국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차창규 전 광복회 사무총장은 3.1 운동 100주년에 대한 소감을 묻자 “100년 전 민족대표 33인은 국민이 뽑은 게 아니라 기독교, 천도교, 불교에서 뽑았다. 현재 각계각층에서 10배수인 333명을 민족대표로 뽑아 통일 운동도 하고 3.1운동의 정신을 계승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지난 1세기는 한민족의 치욕의 백년이었다. 한민족이 단합해 후세에 통일을 남겨줘야 한다. 3.1 독립운동 정신으로 통일운동을 진행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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