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31)] 20세기초, 샌드웨지가 발명되다
  • 이인세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0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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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샌드, 피칭 등 웨지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 됐을까?

17세기 말에 가서야 나타나기 시작한 초창기 아이언세트는 고작 3,4자루에서 그쳤고, 그나마 세분되지 않았다. 8,9번 같은 짧은 아이언은 매시MASSIE,니블릭NIBLICK 등으로 불리면서 웨지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19세기말까지만 해도 제일 짧은 클럽이 9번 니블릭이었고, 골퍼들은 각자가 짧은 클럽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시카고에 소재한 윌슨사의 클럽 제조 관계자들이 사라센과 샌드 웨지 제작 과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선수들은 벙커에서 쓸만한 클럽이 없어 여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20년대 스타였던 월터 하겐도 당시에는 컨케이브 CONCAVE 라고 불리는 웨지 대용의 각도높은 클럽을 쓰고 있었다. 컨케이브는 오늘날의 샌드웨지와 모양은 같지만 헤드면은 반들반들했다. 가로로 줄이 그어진 오늘날의 아이언 헤드 모양의 그루브는 없었다. 이미 영국에서 다양하게 만들어진 이 대머리 아이언으로 프로들은 샌드웨지를 대신했던 것이다.

영국과 미국 골프협회는 이 클럽의 사용을 중단시켰다. ‘볼이 클럽 헤드면에 두번 닿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어프로치에 사용하는 숏 아이언 때문에 고생을 하기에는 골프의 전설 보비 존스 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여느 선수들 처럼 9번 니블릭을 각도를 더 눕혀 어프로치용으로 사용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니블릭은 샌드로 사용할 경우 클럽 헤드의 맨 아래 부분인 리딩 에지가 너무 날카로워 모래를 가파르게 파고들면서 볼을 먼저 치게 돼, 때로는 홈런성 타구도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골프선수들이 그렇게 벙커에서 고생을 하면서 1930년대는 시작됐다. 그 해에는 보비 존스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역사적인 해였다. 이듬해인 1931년의 어느 봄날, 당대의 전설인 월터 하겐과 보비 존스 못지않았던 실력파 골퍼 진 사라센은 지인이었던 당시의 거물 하워드 휴즈를방문했다. 스크래치 골퍼에다 항공기 조종사였던 하워드는 영화 제작 등 다방면에 걸친 비즈 니스계의 거장이었다. 두 사람은 그 날 비행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워드의  비행 이론은 ‘이륙할 때 꼬리 날개의 지느러미같은 핀(Fin)이 펄럭이는 역할을 하면서 비행기가 가뿐히 떠오르는 것을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텍사스 집으로 돌아온 사라센은 이 이론을 골프 클럽 에다 적용시켜 보기로 마음먹었다. 

진 사라센. 자신이 만든 샌드웨지를 정성껏 다듬고 있다.

차고에서 며칠밤을 새면서 그는 9번 니블릭 헤드 뒷면의 뭉툭 튀어나온 아래 부분에 납용접 을 해서 더욱 두껍게 만들어 보았다. 이렇게 하면 헤드 앞면의 가장 아랫부분, 즉 지면과 닫는 부분인 리딩에지보다 뒷면이 땅에 먼저 닫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헤드 뒤쪽 부분이 먼저 모래 속으로 얇게 들어가면서 앞의 리딩에지는 볼 뒷면의 모래를 퍼 올리게되고, 모래와 함께 볼은 자연스럽게 공중으로 뜨는 것이었다. 사라센은 클럽의 헤드 각도를 56도 정도까지 뉘어서 만들었고, 클럽은 볼의 뒷부분을 미끄러지듯이 들어가면서 신기하게도 볼을 공중으로 떠올렸다. 그는 쾌재를 부르며 클럽을 써먹을 때만 기다렸다.

1932년 그는 전통의 브리티시오픈에 출전하기위해 영국으로 날아갔고, 대회장에서도 이 클럽을 숨기고 있었다. 까다로운 영국협회가 행여 사용 금지를 내릴까 두려워서였다. 다행히 아무도그의 클럽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대회 기간 어려운 벙커샷이 있을 때마다 그는 이 비밀병기를 사용했고 클럽은 백발백중 도움을 주었다. 사라센은 결국 대회 최저타 기록을 세우며 2위와 5타 차나 벌이면서 덜커덕 우승을 했다. 2주 후 US오픈에서도 그는 이 클럽을 사용해 우승을 하게 됐고 골프계는 발칵 되집혔다. 이 발명품은 ‘샌드 웨지’라는 명칭과 함께 당시 클럽 대량 생산을 주도하고 있던 윌슨WILSON사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32년 샌드웨지라는 새로운 클럽 이 공식적으로 탄생을 한 것이었다.

벙커샷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 구세주였던 진 사라젠과 윌슨사는 무려 75년 동안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샌드웨지를 만들었다. 166센티미터의 단신이었던 진 사라센은  이탈리아 이민자 혈통의 프로골퍼였다. 단신임에도 보기 드문 장타자에다 주니어 시절 골프 대회를 휩쓸었던 천재 유망주였다. 약관 20세에 프로가 된 그는 당시 월터 하겐과 보비 존스 등 유명한  골퍼들과 어깨를 견주는데 손색이 없는 골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총 7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진 사라젠은 보비 존스와 바이런 넬슨, 잭 니컬라스와 타이거 우즈 등 역사상 5명 밖에 없는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우승한 이른바 커리어 그랜드 슬래머 중 한명이다.

1973년 진 사라센은 7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브리티시오픈에 참가해 홀인원을 기록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1902년에 태어나 미국 골프를 개척한 초창기 파이어니어 중 한 명인 그는 20세기 말에 등장한 타이거 우즈가 활약하는 모습까지 보아온 미국 골프역사의 증인이었다. 1931년 샌드웨지의 발명으로 인해 진 사라젠은 바로 전 해인 1930년 보비 존스가 역사상 최초의 그랜드슬램을 이루며 골프에 관한한 미국이 영국보다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는데 엄청난 일조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21세기 현재에도 샌드웨지는 골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클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99년 9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그는 골프 다이제스트에 의해  6백 여년 골프 역사상 11번 째의 위대한 골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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