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개인적으로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애매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었다는 차원에서 최근에 발생하는 흉기난동 사건들은 일부 공통점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범행 당시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도 없이 혼자 생활을 했었기에 넓게는 일본의 도리마사건의 주인공들처럼 은둔형 외톨이들의 돌발행위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범행동기적 차원에서 보자면 결코 동일한 이유로 인해 발생한 사건들은 아니라 판단된다. 범행 당시 흉기를 사용하였다는 점 이외에 사건들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 발생하였다.
 
지난 18일 의정부 전철역, 21일 수원 정자동 가정집, 22일 서울 여의도 번화가 등 일주일 동안 수도권 곳곳에서 3차례나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우선 18일 발생하였던 의정부역 흉기난동 사건의 주인공은 오랜 실직으로 인한 좌절 상태에서 지하철 승객과 말다툼이 벌어지자 지니고 있던 흉기를 꺼내 여러 사람들에게 난동을 부렸던 것으로 보인다. 사흘 후 8월 21일 수원에서 일어났던 묻지마 범죄는 전과 11범이 저지른 성폭행 미수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인명피해였다. 피의자는 성폭행의 의도로 일차범행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자 가정집에 침입하여 흉기를 휘둘렀던 것이다. 그 다음날 저녁 즈음 국회 앞에서 벌어졌던 흉기난동 사건은 자신을 실직으로 몰아넣은 책임을 물어 전 직장동료를 살해하려고 시도했던 신용불량자의 복수극이었다.
 
이렇듯 세 사건은 범행동기 차원에서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 피의자의 전과력을 고려하더라도 차이는 분명하다. 
 
수원 정자동 사건의 주인공은 성범죄 전력이 포함된 상습전과자였지만 나머지 두 사건의 주인공은 초범자였다. 만일 이와 같은 차이를 무시한 채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아마도 치안력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공언,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다. 이들 사건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각을 위한 대안에는 무엇이 있을 지 살펴보자.
 
우선 수원 정자동 사건을 살펴보자. 이 사건은 상습 성범죄자가 출소 이후 한 달 만에 다시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건의 피의자 강씨는 10대 후반부터 각종 범죄를 저질러 전과 11범이 되었다. 그는 16세 때부터 부모를 폭행하여 두 번이나 존속폭행의 전과가 있었으며 그 가운데 한 번은 징역을 살았다. 이후 20대를 거치면서 폭력, 음주운전, 성범죄를 반복하였는데, 그중 성범죄는 3번이나 저질렀다. 특히 7년을 복역하였던 2005년도의 특수강간사건에서는 피해자에게 도착적인 가학행위를 했던 것이 확인되었다. 문제는 이 같이 재범위험성이 담보된 강씨에게 성폭력사범에게 적용되는 그 어떤 보안조치도 주어지지 않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검찰은 애초 출소를 5개월 앞두고 전자발찌 부착을 법원에 청구하였으나 당시 전자감시법은 소급적용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었기에 전자발찌를 채울 수 없었다. 또한 피해자가 모두 성인이었기에 신상공개도 되지 않아, 바로 앞 지구대의 경찰들도 강씨의 존재를 인지할 수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호관찰도 없이 강씨와 같은 전력자가 출소를 하게 된다면 사실 재범을 방지할 그 어떤 방법도 존재한다고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전자발찌의 효용론에 대한 의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8월 20일 전자발찌를 차고도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광진구에서 발생하여 현재 전자발찌만으로는 재범억제가 충분치 않다는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보다 강력한 형사사법적 제제가 이 같은 사건의 재발 억제에는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수원사건 사흘 전 일어났던 의정부사건의 피의자 유씨는 목수 일 등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활했었다고 한다. 유씨는 경찰 조사에서 “전동차에 탑승한 뒤 바닥에 침을 뱉는 과정에서 승객과 시비가 일었고 그로 인해 순간적으로 격분해 범행했다”고 진술하였다. 그는 십여 년을 고시원 등에서 생활하며 가족과도 왕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를 중퇴한 뒤 줄곧 불안정한 생활을 해오던 유씨는 최근 경기가 나빠지면서 더욱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사건 당일 날도 일을 구하지 못한 채 지친 몸으로 귀가 하던 중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막상 자신이 침을 뱉기는 하였으나 자신보다 훨씬 어린 청년으로부터 훈계를 듣게 되자 갑자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힘들게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스트레스와 오랜기간 외톨이 생활이 유씨의 인내력에 한계를 가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유씨가 사전에 누구를 죽이거나 다치게 하려는 의도를 딱히 가지고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즉, 일본의 도리마사건들처럼 사회를 향한 반감으로 해서 일반 시민들을 다치게 하려던 사전 계획은 없었던 것 같다. 대안 모색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최근 경기 둔화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인 스트레스가 일용직 구직자들에게는 특히 더 심각한 수준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겠다. 따라서 형사처벌의 수위를 무작정 높이기보다는 이들에 대한 생활지원에 필요하며 실업수당 지급이나 생활보호 대상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여의도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 김모씨는 실적저하와 직장동료와의 불화로 직장을 그만둔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며 4000만원의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신용불량자인 것이 걸림돌이 돼 취업에도 실패하고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자 전 직장 직원 중 자신을 험담하였던 사람들이 애초 자신의 불행에 대한 원인 제공자라 판단하여 이들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는 의정부역 사건의 유씨보다 학력도 높고 사무직에도 근무하였던 것으로 확인이 되었으나 결국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져 하루하루 생활하기가 힘들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살도 염두에 두었으나 혼자 불행을 맞이하는 대신 스스로를 그 같은 어려움에 빠뜨린 옛 동료들에게 복수할 것을 계획하였다. 결국 대로변에서 복수극을 벌이게 되었고 그 와중에 격투가 벌어져 시민들을 크게 다치게 하였다.
 
때마침 미국에서도 비슷한 동기로 인한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하였다. 해외 언론사의 보도내용을 보면 우리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파악하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의 경우 사회경제적 이유에서 여의도사건의 원인을 찾으려 하는 대신 외국의 언론보도는 개인적인 부적응 문제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문제를 대하는 방향도 달라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사회적 안전망만을 대안이라고 하는데 비하여 외국의 경우 조직 구성원들의 심신건강을 살피는 일을 예방책으로 제안한다. 업무와 관련하여 혹은 대인관계에서 부적응자는 없는지를 살피고 미리 심리상담이나 정신과치료 등을 제공하여 범죄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세 사건은 모두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
 
만일 ‘묻지마 범죄’라고 하여 모두를 묶어놓기만 한다면 대안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가지 사건씩 떼어놓고 생각하면 개인단위에서, 조직단위에서, 국가단위에서 마련해야 하는 여러 가지 대안이 있다.
 
무작정 ‘묻지마 범죄’라고 지칭하여 불안감만 조성할 것이 아니라 개별 사안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그마다의 대응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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