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니스트] 골프를 누가 먼저 시작했을까. 6백 년  골프 역사의 원조를 놓고 스코틀랜드와 네덜런드의 수 백년 논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네덜런드 골프
네덜런드 골프

 

스코틀랜드의 주장을 먼저 들어보자. 세인트 앤드루스의 초원에서 양치기 목동이 소일거리 삼아 바닷가에 널부러진 관목을 하나 부러뜨린 다음 자갈을 놓고 후려쳤다. 목동은 양들이 풀을 뜯어먹어 반듯해진 초원을 따라 계속 자갈을 쳤고, 이내 토끼가 다져 놓은 풀밭에 도달한 뒤 역시 토끼가 파놓은 굴 속에 자갈을 집어 넣었다. 6백 년 전 당시 스코틀랜드의 게일어에 이 놀이를 치다라는 뜻의 GOUFT라 불렀으며 그후  GOEFF, GOFFE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양들이 풀을 뜯은 곳은 FAIRWAY, 토끼가 다져 놓은 곳은 GREEN, 그리고 토끼굴은 RABBIT HOLE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한다.
    
반면, 네덜런드는 13,4 세기 경부터 자국 무역상들이 북해를 건너 세인트 앤드루스 항구에 정박하면서 골프놀이를 했다고 주장한다. 네덜런드어로 클럽CLUB이라는 의미의 COLF, 혹은  실내에서는 KOLF, 얼음위에서는 KOLVEN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또한 ‘무역상들이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주문한 가죽으로 만든 골프볼을 세인트 앤드루스로 가져와 팔았다’는 문헌도 있다며 단연 원조는 네덜런드라고 못박는다. 실지로 네덜런드인들은 세인트 앤드루스 항구에 모여 네모 반듯하게 금을 긋고 막대기를 세운 후, 그 안에서 목표물을 맞추는 놀이를 했다. 또한 겨울철 빙상위에서 30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막대기를 세워 그 것을 맞추기도 했다. 이를 보고 스코틀랜드 의 어부들과 목동들이 초원으로 가져간 것 뿐이라고 그들은 말하는 것이다.
   
원조라는 증거에 대해 스코틀랜드는 아이러니한 대목이지만 골프를 친 증거가 아닌 골프를 금지하는 의회의 문건을 증거로 들고 나온다. 15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의 백성들이 골프와 럭비를 너무 좋아하고 즐겨 큰 골치거리였다. 당시 정세는 남쪽 잉글랜드와 수 백년간 전쟁 중이었지만, 활을 쏘는 궁사들이 활을 제조하고 훈련에 임하기 보다는 전쟁터에서까지 숨어서 골프를 치는데만 소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다 못한 제임스2세 국왕은 1457년 ‘전 국민은 퓨트볼(FUTTBALL)과 고페(GOUFE)를 금지한다’라는 칙령을 공표해 버렸다. 골프에 관한 정확한 일시와 년도가 의회문서 에 기록돼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 골프
영국 골프

이에 맞서 골프 역사학자인 미셀과 스펜서가 공동 저술한 THE HISTORY OF GOLF를 인용하면 16세기 네덜런드의 겨울 풍경화에는 어김없이 빙판에서 골프를 치는 광경이 목격된다. 16세기 당시의 네덜런드에서는 목표물을 누가 적은 타수로 맞추거나 혹은 근접거리를 계산해서 승패를 가르는 놀이를 했다. 빙상이나 실내, 풀밭, 작게는 부엌에서도 했으며 넓게는 성채, 법원 등지의 정문을 목표물로 하는 장거리 경기를 했고,  진 팀이 맥주통을 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덜런드의 역사학자 스티븐 반 헹겔STEVEN JH. HEIGEL은 1972년 출판된 그의 저서 고대의 골프 EARLY GOLF에서 ‘1297년 12월26일 북부 지방의 LEONEN AAN DE VECHT라는 마을에 4홀짜리 골프코스가 만들어 졌으며 총 연장길이가 4천5백야드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목표물은 비석이나 현관이었으며 이 코스는 네덜런드가 크로넨버그 성을 해방시킨 기념으로 만든 것이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골프 역사의 정설에 관한 의견에 대해 학자들은 네덜런드의 모든 증거는 16세기 이후에 만들어 진 것인데 반해 스코틀랜드의 의회문서는 15세기로 한 발 앞서간다고 주장한다. 학계의 정설은 비록 네덜런드가 골프를 먼저 시작했을지는 몰라도 그들은 그 놀이를 발전 시키지 못한 반면, 스코틀랜드는 수 백 년 동안 초원에서 계승, 발전시켰기 때문에골프에 들인 공로를 더 높이 쳐주고 있는 것이다.
    

 

▲ 중국골프'golf the early days page11

 

골프 원조에 관한 논쟁에 끼어든 제3국가는 중국이다. 서기 950년 당나라 말 궁궐에서 남자나 여자들이 공을 쳐서 작은 구멍에 집어넣는 추환이라는 놀이가 있었다. 아라비아 무역상들이 차마 고도와 히말라야 등을 넘어 이 놀이를 유럽으로 가져갔다는 주장이다.   몽고 시대인  12세기 부터 는 이 놀이가 ‘추이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성행했다고 한다. 이 놀이에 대한 규칙이 ‘환경’ 이라 는 책자로 만들어 전해져 왔다는 근거있는 주장이다. 증거 자료로 그들은 도자기나 족자에 그려진 여러 그림들을 제시하고 있다.
    
환경에 따르면 공이 놓여져 있는 페에웨이에 해당하는 평지는 ‘평’이라고 불렸으며 슬로프가 있는 비탈 중 내리막은 ‘요’, 오르막은 ‘철’이라고 불렀다. 해저드나 OB 지역도 구분해 놓아 이를 ‘외’ 라고 했다. 장비에 관한 명칭으로는 나무로 만든 클럽을 ‘구봉’, 역시 나무로 만든 공은 ‘권’이라고 불렀다. 티 샷은 모래 등에 볼을 올려놓고 했는데 첫번째 티 샷은 ‘초봉’이라고 불렀으며 ‘이봉, 삼봉’ 등으로 불렀다. 한 홀은 파 3 정도의 짧은 길이였으며 버디를 했을 경우를 ‘일주’, 홀인원을 했을 경우를 ‘이주’라고 불렀다. 두 사람이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서던데스처럼 다음날에 재경기를 했다고 한다.

골프 학계는 이같은 논리를 중국이 경제 대국이 된 최근에 만들어진  주장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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