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2)] 최초의 여성골퍼, 누구일까
[이인세의 골프 인문학(2)] 최초의 여성골퍼, 누구일까
  • 이인세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8.1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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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세 칼럼니스트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니스트] 문헌에 등장하는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여성 골퍼는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서는 지금으로부터 5백 년 전인 중세의 한가운데로 아득하게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542년 11월 24일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5세는 삼촌뻘인 잉글랜드의 헨리 8세로부터 로마 카톨릭을 버리고 신교를 채택하라는 명령에 불복해 2만 병력을 이끌고 출격했다 하지만2주 만에 열사병에 걸려30세의 나이로 전사한다. ‘솔웨이 모스 SOLWAY MOSS’전투 였다. 제임스5세가 죽기 6일 전 스코틀랜드 궁궐에 남아있던 왕비는 유일한 혈육인 공주 메리 를 출산한 터였다. 내심 아들을 바랐던 제임스 5세는 임종의 순간에 스코틀랜드 게일어로 이렇게 말했다.

“ADIEU, FAREWELL, IT CAME WI A LASS AND IT WILL PASS WITH A LASS" 아듀, 안녕, 결국 우리는 공주를 얻었도다, 스튜어트 왕조는 종말을 고할 것이다.”

선왕의 죽음으로 메리는 태어난지  6일 만에 스코틀랜드 최초의 여왕이 된다. 선대 왕들처럼 메리도 거의 매일같이 골프를 즐겼다. 이 여왕이 공식적인 문헌으로 역사상 골프를 친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가문의 아버지와 프랑스 왕족 어머니, 잉글랜드 튜터가의 할머니 등 최고의 진골로 태생부터 남다른 운명을 지닌 메리였다.  5살 때인 1548년 그녀는 권력의 희생양을 모면키 위해 유학을 핑계로 비밀리에 프랑스로 보내졌다.  프랑스에서의 유학 시절인 12년 동안 메리는 당시 사교계에서 유럽을 대표하는 남성들의 로망이자 신데렐라로 불리는 디바였다. 라틴어는 물론 모든 언어에 능통했으며 15세에 이미 178센티미터의 늘씬한 키에 작은 얼굴과 긴 목, 적갈색의 머리와 갈색 눈, 가늘고 짙은 눈썹을 가진 여인이었다. 풍만해야 했던 16세기 미인의 기준과는 달리 21세기 모델 같은 몸을 지녀 누구든지 반할 만 한 지성과 미를 겸비한 여왕이었다.

메리를 눈 여겨 보던 프랑스 국왕 앙리 2세는 메리로 하여금 스코틀랜드와 프랑스 두 나라를 함께 통치하길 원해 아들인 프란시스 왕자와 메리를 정략적으로 결혼시켰다. 당시 잉글랜드와 스페인이 동맹을 맺고 있던 시기여서 프랑스는 스코틀랜드와 손을 잡고 이에 대비를 해야 됐다. 14세의 왕자와 16세의 메리는 골프장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프란시스 왕자는 평균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작은 키였지만 준수한 용모에 학식을 갖추었고 골프 실력도 괜찮았다. 뜨겁게 불타 오르는 사춘기의 두 사람의 골프 치는 모습이 프랑스 국민들은 신기해 보였다.  곧이어 하나 둘씩 따라 하면서 골프는 프랑스인들을 매료시켰고, 벨기에 등 인근 국가로 퍼지게 됐다.

▲ 세인트 앤드루스의 올드코스에서 골프를 치는 메리 여왕

 

 

행복했던 시절도 잠시, 결혼 한 지 불과 1년여 만인 1559년 프란시스가 뇌종양으로 사망 하면서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돌아와야만 했다. 지체하다가는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원성은 물론, 스코틀랜드에서의  입지도 위태하기 때문이었다. 과부가 된 여왕은 모든 것을 잊기 위해 골프 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메리의 남성 편력과 불행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23세를 갓 넘긴 메리는1565년 3살 연하의 사촌 동생이자 왕족 서열에 있는 단리(LORD DARNLEY)경과 두 번째 결혼을 올린다. 하지만 호시탐탐 왕위 자리를 탐내고 있던 남편과는 사이가 나빴고, 이를 견제키 위해 메리는 불륜의 정부를 두고 있었다. 어느 날 단리가  메리의 정부를 죽이자, 복수를 꿈꾸던 여왕은 또 다른 제3의 정부와 짜고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단리가 골프를 치고 오던 날 메리는 남편에게 왕좌를 미끼로 그를 별궁으로 초대한다. 들뜬 기분으로 침대에 앉은 단리는 아내가 샤워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여왕은 뒷문으로 빠져 나갔고 뒤이어 굉음과 함께 별궁이 폭파되는 소리가 들렸다. 정부와 함께 침실에 설치한 폭탄으로  벌거벗은 단리는 무참하게 죽음을 맞이 한 것이었다. 결혼 1년 만에 사고를 가장한 살인극이었다. 그렇게 남편이 죽은 뒤 3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메리는 당당하게 골프장에 나가 골프만 치고 있었다.  수근 대던 국민들의 신망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왕위를 찬탈당한 메리는 잉글랜드로 피신해 엘리자베스1세 여왕에게 몸을 의지한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당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통치하는 동 시대의 두 여왕으로 고모와 조카 지간이었다. 그러나 도와주리라 기대했던 엘리자베스는 정치적으로 정적인 메리를 성안에 감금시켜 버렸다. 복귀만을 노리던 메리는 세력들을 규합해 왕권 탈환을 획책하는 등 여러 차례 거사를 도모했지만 매번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 위치한 홀리루드 궁전에 전시돼 있는 메리 여왕의 초상화.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 위치한 홀리루드 궁전에 전시돼 있는 메리 여왕의 초상화.

 

반란의 죄목으로 메리는 18년 간의 감금 생활을 뒤로하고 1587년 2월7일 길로틴의 이슬 로 사라지게 된다. 죄목은 남편 살해와 남편이 죽은 지 이틀 만에 골프를 쳤다는 괘씸죄 때문 이었지만, 사실은 왕권 다툼에서 엘리자베스1세에게 패한 것이었다. 중세시대의 로망이며 최초의 여왕이자 최초의 공식 여성골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메리는 45세의 나이에 그렇게 쓸쓸히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비록 온갖 추문으로 얼룩진 생을 살았던 여왕이었지만 골프의 대중화에 이바지한 공만큼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런 메리의 열정 때문에 골프가 유럽 대륙으로 전파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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