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컨슈머] 

글/장재진 편집인

▲ 장재진 편집인

 

한국의 행복지수는 세계 158개국 중 58위다. 경제력은 세계 12위로 상위급인데, 행복지수는 왜 중위급으로 떨어질까? 지난 3월 발표된 '2016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의 47위에 비해 11계단이 하락했다. 2013년과 비교해 17계단이나 낮아진 것이다.

행복지수가 갈수록 낮아지는 주요 이유의 하나로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제도적으로, 관습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충분히 배려(配慮)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배려가 부족하니 갈등과 대립이 나타난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 그래서 분열하고 충돌한다. 분열과 충돌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실수로 손 씻는 물을 마셨더니...

배려는 인간이 가져야 할 중요 덕목의 하나다. 배려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여유다. 곧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같은 자세이다.

맹자는 남을 예우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기의 인자함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기의 지혜를 돌아보라라고 했다. 곧 자기 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상대의 시각에서 헤아려 보라는 삶의 지혜를 나타내는 말이다.

오래전, 국제행사 취재 목적으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취재 일정에 따라 행사 유관기관 등을 찾아보고 관련 인사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방문 사흘째 만찬 일정이 잡혀져 있었다. 행사를 후원하는 현지 유력인사의 만찬 초대를 받은 것. 각국에서 온 20여명이 유력인사의 저택에 모였다. 만찬의 메인 요리는 바닷가재였다. 고급스럽게 잘 차려진 요리는 나의 입맛에는 짰다. 물을 마셔야 했다. 테이블 위 내 자리에 놓인 소담한 크리스탈 그릇에는 맑고 깨끗한 물과 레몬 두 쪽이 시원하게 담겨져 있었다. 그릇째로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옆자리의 인사가 마시는 게 아니라는 신호를 보냈다. 알고 보니 핑거 보울(finger bowl)이었다. 핑거 보울은 식전이나 식후에 손가락을 씻는 물이 담긴 그릇을 말한다. 만찬자리에서 실수를 한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를 본 만찬 주빈이 요리사에게 핑거 보울을 다시 가져오라고 시키더니 자신이 그 물을 마셨다. 그러자 다른 참석 인사들도 자기 앞자리에 놓인 핑거 보울의 물을 한 모금씩 마셨다. 나의 실수와 무안함을 덮어 주려는 주빈의 세심한 배려였다. 동서양 식탁 문화의 차이로 생긴 일이었지만, 그 일로 나는 그 유력인사와 더 친해질 수 있었다.
 
배려없는 사회는 덜 성숙한 사회

▲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문용린 전 서울대교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 덕목 6가지를 정약용책배소라고 정리했다. 정직, 약속, 용서, 책임, 배려, 소유의 첫 자를 따서 모은 말이다. 이 여섯 가지는 서로 콜라보레이션이 되어 최고의 덕목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이 여섯 가지 덕목만 서로 지켜나간다면 우리 사회는 갈등과 다툼이 없어지고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세계 12번째 잘사는 부자나라로 발전했다. 경제력만큼은 선진국 수준이라고 자부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아직은 국민을 위한 다양한 배려가 충분히 스며있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공공기관을 보면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조가 이루진 곳이 다반사다. 때문에 신체장애인이 휠체어에 탄 채 공공기관을 편하게 드나드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배려가 없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라고 볼수 없다. 미국이 선진국이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배려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신체장애인이 활동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개개인 일상도 배려실종많아

우리 한국은 매우 비지(busy)한 나라이다. 항상 먹고 살기 바쁜 모습이 역력하다. 수산시장이나 농산물시장을 가도 매우 분주하고 요란하다. 팍팍한 삶 때문에 여유로움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타인에 대한 배려는 기대하기 어렵다.

개개인의 일상에서도 배려실종은 자주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 쩍벌자세로 자리를 차지한 사람, 주위 아랑 곳 없이 휴대폰으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내리기도 전에 먼저 타는 사람 등 때문에 짜증지하철이 되고 만다. 차로에서도 자동차는 서로 먼저 가려고 양보가 없다. 그러다가 왜 내 앞길을 막느냐며 보복운전을 하기 일쑤다.

사업주와 근로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근로자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업주, 사업주 입장을 존중 않는 근로자는 서로 불신을 키우고 끝내는 충돌의 각을 세우게 된다. 최근 갑질논란을 부른 프랜차이즈 CEO들은 배려가 전혀 없는 삶을 살아 온 듯하다. 이기주의 표본이다. 근로자의 손을 잡아 일으킬 수 있는 인품을 갖춰야 진정한 CEO이다.

한 그루 나무도 자신을 위해서는 그늘을 만들지 않듯이,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려면 배려하는 덕목이 일상화 되는 길이다. 그것이 상생의 사회, 행복한 나라가 되는 길이다.

 (극동대학교 미디어홍보학과 겸임교수) 
저작권자 © 우먼컨슈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