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컨슈머 장은재 기자] 동아시아재단(이사장 공로명)은 '비정규직 문제 :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주제를 담은 정책논쟁 제97호를 25일 발간했다.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은 한국의 주요 대내외 정책 현안의 본질을 중장기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전략적 논쟁을 활성화하여 정책에 대한 지적 소통과 해결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토론의 공간이다. 

정책논쟁 제97호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비정규직의 원인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의 해법과 방향을 제시하면서 비정규직 사용규제 정책과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먼컨슈머는 독자여러분에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정책논쟁 제97호 내용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비정규직 문제 :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박지순 교수.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일자리정책의 핵심공약사항으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비롯하여, 민간부문에서도 기간제 등 비정규직 사용의 억제와 용역ㆍ도급 등기존 아웃소싱 전략의 수정을 통한 직접 고용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비정규직 사용억제는 기업에게 과도한 인건비 발생과 고용경직성을 초래하여 일자리의 감소로 이어지고, 기업의 경쟁력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비정규직 증가의 원인이 정규직의 과도한 보호와 높은 비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정규직 사용규제 정책과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제로, 환희와 우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비정규직 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개시 직후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들에게 제시한 첫 번째 약속이다. 비록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은 아니지만 그퍼포먼스만으로도 대한민국 비정규직근로자들은 눈물 흘리며 환호했다. 아마도 비정규직이라는 지위가 준 고용불안에 대한 걱정과 사실상의 신분 차별로 인한 고통, 거기에 정규직 전환으로 임금인상과 복지혜택에 대한 기대감도 컸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의 퍼포먼스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공공기관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을 고심하고 있으며, 민간기업 중에도 대통령의 의지에 부응하기 위하여 발빠르게 행동에 옮기는 기업도 있었다. 스스로 비정규직이라고 믿는 근로자들은 언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지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멋진 약속은 곧바로 벽에 부딪쳤다. 정규직 전환의 대상이 되는 비정규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했고, 정규직 고용형태의 내용과 방식도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정규직 전환에 소요되는 비용 문제는 가늠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제로로 가는 여정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만큼 비정규직인 근로자들의 실망도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비정규직의 증가 원인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016년 8월 기준으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이 전체 근로자의 32.8%에 달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간제근로자가 18.6%이다. OECD 회원국의 기간제, 시간제, 파견근로자를 합친 비정규직 규모가 평균 11.4%이니 우리 비정규직 규모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비정규직근로자의 임금수준은 정규직에 비하여 30%이상 낮다. 이와 같은 현상은 1990년대 후반 이른바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기업의 리스크관리가 엄격해지고, 2000년대부터 신흥 산업국가 간 경쟁격화와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기업의 유연화전략이 강력하게 추진되면서 전면에 떠올랐다. 유연화 전략의 핵심은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높이되 인건비를 낮추는 것으로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에 대응하는 것이다. 한국 정규직의 특징은 근로기준법의 강력한 해고규제와 호봉제에 기반한 임금체계로 인한 고비용에 있다. 특히 1990년대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결과는 정규직에게 높은 임금인상을 선물로 안겼으며, 한국사회에서 정규직은 고용안정과 높은 임금을 받는 기득권층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정책의 내용과 문제점 
 
문재인 정부는 이와 같이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취약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비정규직 대책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먼저 기간제에 관한 정책이다. 기간제 근로자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우리 노동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여 특정한 사용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개정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생명ㆍ안전에 관련된 업무와 상시ㆍ지속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기간제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는 것이다. 현행 기간제법은 2년 이내의 기간 동안에는 사용사유 제한 없이 자유롭게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부득이 비정규직을 사용하더라도 동일직무에는 동일임금을 지급하도록 의무화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른바 동일노동 동일임금(equal pay for equal work) 원칙의 법제화이다.

기간제 뿐만 아니라 상시ㆍ지속업무라면 청소ㆍ경비와 같이 아웃소싱된 업무를 인소싱하여 직접 관리하고, 협력업체의 근로자에 의하여 수행되는 사업장내 업무도 직접 고용한 근로자에게 맡기라는 정책도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여기서 더 나아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비정규직 대책에 포함된다. 서울시는 투자 및 출연기관에 근무하는 무기계약직 근로자 244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라는 점에서 같지만, 정규직은 호봉제가 적용되어 근속기간에 따라 자동적으로 급여가 인상되고, 승진기회가 부여되며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라는 점에서, 특정 직무에 고정되고 전근 가능성이 없으며 연봉제방식의 계약을 체결하는 무기계약직과 구별된다. 노동계에서는 무기계약직도 근로자간 차별을 야기하고 승진기회를 박탈하는 비정규직이라고 주장해왔다. 서울시의 정책은 결국 무기계약직도 비정규직이라는 점을 확인해 준 셈이다.
 
하지만 정규직 채용의 대상인 상시ㆍ지속업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하다. 공공부문에서는 과거 2 년 이상 유지된 업무를 상시ㆍ지속업무로 정의하고 있으나, 이를 법률로 정의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미래의 업무지속 문제를 과거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상시ㆍ지속업무라 하더라도 핵심업무가 아닌 청소나 경비와 같은 주변업무에 대해서까지 정규직 채용을 의무화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는 글로벌트랜드에도 벗어난다. 아웃소싱을 통해 주변업무를 정리하고 핵심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현대 기업의 경영방식이다. 그럼에도 상시ㆍ지속성을 근거로, 그리고 근로자의 소속감 고취라는 이유로 아웃소싱을 중단하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규직화의 의미도 명확하지 않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방안으로 정규직 직접고용방식 외에도 자회사설립방안, 무기계약직 채용방안 등 다양한 방식이 제안되었지만 근로자들은 정규직 직접고용방식만을 고집한다. 자회사를 통한 고용도, 무기계약직도 정규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정규직의 경직성, 고비용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아웃소싱과 무기계약직이라는 직군이 개발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규직화정책은 기업의 경영합리화수단을 다시 과거의 경직적 구조로 회귀하라는 정책이 될 뿐이다. 
 
비정규직문제의 전망과 제언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에 대한 기본철학은 모든 근로자가 안정된 일자리에서 처우를 개선하면 노동생산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상시ㆍ지속적인 업무에 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하는 원칙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인식은 타당하고, 그렇게 된다면 사회정책적으로도 가장 바람직하다는데 이견이 없다. 문제는 그 해법으로 정규직 문제를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에게만 한정된 급격한 노동정책의 전환을 추진하는데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노동시장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제시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선진국의 노동시장정책과도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최근 기간제 근로자 사용을 완화하고 파견규제를 유연화하였다. 이른바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목표로 정규직의 고용 보호 수준을 낮추고 실업보험 확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강화를 통해 노동시장 양극화를 완화하고자 시도해왔다.

독일의 하르쯔개혁을 비롯하여 최근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모두 이러한 방향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였다. 일본도 기간제근로자를 5년까지 사용사유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파견규제를 대폭 완화하였다. 오히려 이러한 유연화를 통해 정규직화가 확대될 수 있다는 철학이 전제되어 있다.

오래 사용한 근로자에 대한 고용관계 단절은 그만큼 기업으로서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비정규직 사용규제를 강화하고 정규직 보호를 확대해온 프랑스의 노동시장 상황은 유연한 노동개혁을 단행한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상당히 불안한 실정이다. 새로 취임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의 우선정책과제도 노동개혁이라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결국 비정규직 정책의 핵심은 기업이 근로자를 좀더 쉽게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 비정규직법이 실패한 것은 이러한 유도장치가 약해서이다. 그렇다고 특정 고용형태를 강제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근로자의 개인적 요구가 다양해지고 기업의 글로벌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다양한 고용형태의 출현은 필연적이다. 4차 산업혁명의 파도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정규직-비정규직의 이분법으로 노동시장을 분단해서 일자리정책을 추진해 갈 것인가? 과거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도 정규직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 없이는 비정규직의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었다.

정규직 문제의 해법과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하는 것이 정부가 추진해야 할 우선적 과제이다. 

필자소개

박지순은 고려대학교에서 법학사와 법학석사학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사회보장법학회 부회장, 한국노동법학회 상임이사, 여러 정부위원회에서 공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동법강의'(공저), '사회보장법'(공저) 등의 저서와 다수의 정책연구보고서, 그리고 여러 노동법관련 전문저널에 다수의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동아시아 재단은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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