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권때 반도체 사업 빼앗긴 지 20여년...‘한풀이’ 아니다

[우먼컨슈머 노영조 기자] LG가 DJ정권 시절 반도체 사업을 빼앗긴 한을 풀 수 있을까.

1998년 당시 DJ정부가 전경련을 앞세워 추진한 반도체 빅딜로 LG반도체를 현대전자(SK하이닉스 전신)에 넘긴지 20년이 지났다. 이젠 삼성전자가 세계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점유율 36.7%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고 세계 4위인 SK하이닉스도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하기 위한 한미일 연합의 한 축을 맡아 21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세계 2위로 올라서기위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LG가 불씨 정도로 살아남은 그룹내 반도체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계 5대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의 기반을 다지기가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다.

그러나 LG는 반도체 사업의 엑셀레이터에 발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LG반도체를 정부 강요로 넘겼지만 반도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진 못했다. 단순한 한풀이가 아닌 것 같다.

그룹의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OLED구동 칩은 물론 자동차용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그림도 그려놓았다.

LG전자는 2011년부터 2000억원을 투입해 자체 모바일AP인 '뉴클런'을 개발해왔다. 2014년에는 1세대 뉴클런 개발에 성공해 보급형 스마트폰인 'G3 스크린'에 탑재했다. 생산은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에 맡겼다.

지난해 LG전자가 인텔과 맺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이 해지되기 전까지 6년동안 LG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연구 개발을 해왔다. 반도체에서 손을 완전히 떼지는 않았던 것이다.

 

LG는 계열사인 실리콘웍스에 반도체 사업을 맡겨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연 매출 1조원 대로 키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방침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할 것이란 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리콘웍스는 반도체 설계가 주력인 독일법인으로 2년전 LG가 지분을 매입했다. 그룹의 대표 반도체 회사로 육성한다는 복안에서다.

반도체사업의 부활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인위적인 반도체 빅딜의 강제는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통합법인 출범 이후 모습에서 나타났듯이 한계사업 정리, 핵심 역량 집중이라는 당초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DJ정부의 반도체 빅딜에 대해 ‘LG 60년사’는 이렇게 비판했다. 이 빅딜안은 전경련이 정부를 대신한 얼굴 마담으로서 마련한 것이다.

얼마나 억울했던지 빅딜 후 10년만에 펴낸 'LG 60년사'는 반도체 빅딜이 현대전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불공정하고 편파 시비를 야기했다고 지적하면서 LG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정부의 강요로 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기존 LG, 삼성, 현대 3사 체제의 반도체사업은 LG반도체와 현대전자를 통합해 삼성과 2사 경쟁체제로 재편한다는 게 빅딜의 내용이다.

LG는 이 빅딜이 기업간 자율조정이라는 원칙과 시장경제 원리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정부의 강력한 권유로 추진되는데 대해 불만이 많았다.

정부 강요로 하는 수 없이 LG는 현대와의 단일화에 동의했지만 재무구조, 기술력, 전문성면에서 LG반도체가 앞선다는 점을 들어 경영권 확보를 강력히 주장했다. 구본무 LG회장도 그해 8월에 열린 정·재계 간담회에서 이런 뜻을 강하게 내세웠다.

그러나 전경련이 추천한 컨설팅업체 ADL사가 현대전자 손을 들어줬다. ADL이 작성한 평가보고서는 편파 시비를 낳았지만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밀어붙였다. 정부의 결단 촉구로 LG의 고민을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60년사는 “그해 연말은 LG에게 혹독한 아픔의 시간이었다”식으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결국 구본무 회장이 이듬해 1월6일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 포기의사를 밝혔다.

▲ 구자경 명예회장.

 

정주영 전경련 회장 시절 구자경 LG 회장은 전경련 모임에 빠지지 않았으며 두 회장은 가끔 술자리에서도 어울렸다.

그러나 빅딜후 LG는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도 발을 끊었다.

LG는 지난해말 대기업 중 처음으로 전경련 탈퇴를 공식 통보했다. 앞으로 회비도 납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경련 회원사들이 내는 회비는 연 400여억원으로 이중 절반을 4대 그룹이 부담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은 장기간 대규모 설비투자를 해야하는 사업이고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 누가 앞선 기술을 선점하느냐가 생존의 관건이다.

LG가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에 재도전한다 하더라도 앞날은 험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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