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관련집단소송의 현황과 소비자소송에의 시사점

[우먼컨슈머] 지난 21일 서울YWCA 4층 강당에서 열린 '소비자 집단소송제도 제정을 위한 토론회' 발제 내용을 요약 게재한다. 날 토론회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이하 소협) 자율분쟁분쟁위원회와 국회의원 이학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동으로 마련했다. /편집자주

21일 서울YWCA 4층 강당에서 열린 '소비자 집단소송제도 제정을 위한 토론회'.
21일 서울YWCA 4층 강당에서 열린 '소비자 집단소송제도 제정을 위한 토론회'.

[발제 요약]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은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우리 민사법정에 최초로 도입한 법률이다. 연방민사소송법 (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제23조에 의하여 규율되는 미국의 집단소송제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법적 장치로 평가된다. 피해자 한 명이 별도의 원고모집절차 없이도 수만 명의 동종 피해자들을 대표하여 거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집단소송제가 대륙법계 국가인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증권관련집단소송법 제1조는 “이 법은 증권의 거래과정에서 발생한 집단적인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고 이를 통하여 기업의 경영투명성을 높이기 위하여 증권관련집단소송에 관하여 민사소송법에 대한 특례를 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 김주영 변호사

 

재계는 증권집단소송제 도입에 대해 집요하게 반대했다. 제도가 도입될 경우 집단소송이 봇물처럼 제기돼 기업이 큰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 때문에 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에는 상당한 세월이 소요됐다.

 

실제로 법이 시행된 이후 이 법에 따른 증권집단소송은 시행 만 4년인 2009년 4월 제기됐다. 그 후 간간히 소송이 제기됐으나 법시행일로부터 12년 남짓 지난 현재까지 제기된 증권관련집단소송의 건수는 9건에 불과하고 그 중 화해로 종결된 사건은 1건에 불과하다.

소송이 제기 되지 않는 여러 이유 중 기업의 불법행위를 입증할 증거가 상대방 기업에 독점되어 있어 승소가 불확실한 반면 소송비용은 많이 들고 허가절차 등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걸리며, 장기간의 소송 끝에 이기더라도 제대로 돈을 받아낼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게 있다. 우리나라의 미분화된 법률서비스시장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소비자, 환경, 독과점, 증권 등 전문적인 영역에서 피해자들을 대리할 수 있는 전문적인 원고로펌(Plaintiffs’Firm)이 미발달되어 있고 각 분야에 전문 변호사도 극히 영세한 규모의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이러한 사건들에서 피고측인 기업들을 대리하는 변호사사무실들이 대형화, 전문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불법행위의 피해자들이 해당 전문분야의 변호사를 구해 대형로펌과 맞서 싸우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경우 원고로펌은 상당한 자본력을 갖추고 스스로 소송에 따른 모든 비용을 부담하면서 성공보수조건으로(Contingency Basis) 소송을 수임하며 강력한 증거개시제도 (Discovery)를 활용해 상대방 기업을 압박해 조기에 화해를 이끌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원고소송을 주로 하는 법률사무소들이 자본력도 취약하고 지식기반이나 인적자원도 취약하다.

한편으로는 12년간 9건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나라에 전혀 생소한 미국식 제도가 도입된 지 불과 12년만에 9건이나 소송이 제기되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다. 증권관련집단소송이 사문화되었다는 시각도 있지만 점차 정착해 나아가는 단계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아래 표는 현재까지 제기된 9건의 집단소송의 내역을 보여준다.

다른 방식의 집단소송제와 비교를 통해 증권관련집단소송제의 장단점을 보자.

증권집단소송제는 미국식 집단소송제도와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제외신고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소송에 참가하는 형태 즉 Opt-Out 방식이므로 피해자 집단의 거의 전부가 참여하게 된다.

제3자가 아닌 피해자인 대표당사자와 그에 대하여 선관주의의무를 부담하는 원고소송변호사가 주도적으로 소송을 주도하므로 당사자의 적격성이 뚜렷하며 유인 체계도 비교적 단순하다. 증권관련집단소송제의 경우 공익적 목적보다는 철저히 사익 적 목적에 충실하므로 인센티브가 분명하고 강력하다.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이기면 그 결과를 활용하여 따로 소송을 제기하려는 유인이 있다. 증권관련집단소송은 적극적으로 집단소송이라는 차에서 내리지 않는 이상 자동으로 태워서 가는 소송에 해당하므로 무임승차 문제가 거의 없다.

당해 사안에 대해서 사실상 한 건으로 소송이 진행되게 된다. 피고의 입장에서는 한 건만 대응하면 확실하게 해결이 되고 제외신고자가 아닌 한 전체 피해자에 대해서 기판력이 미치므로 더 이상 소송을 당하지 않는다는 잇점이 있다.

단점의 경우 증권관련집단소송은 승소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소송허가절차에만 3심을 거쳐야 하고, 설령 허가결정이 났다고 하더라도 이는 허가요건을 갖추었는지의 문제이지 청구원인이 인정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은 아니므로, 다시 장구한 본안소송을 거쳐야 한다. 최악의 경우 소송허가결정을 3심까지 거쳐서 확정 받았고, 본안소송에서 청구원인사실은 물론 손해액에 관해서도 깊이 있는 심리가 이루어졌지만 결국 청구원인사실이 인정되지 않아 패소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피해자 범위를 대표당사자(원고)의 대리인이 사실상 주도적으로 정하게 된다. 피해자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승소가능성, 특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할 수밖에 없으로 실제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범위보다 좁은 범위의 피해자집단이 특정될 수 있다.

미국식 집단소송제는 Opt-Out이므로 소송단계에서는 개별 피해자의 협조를 받기가 어렵다. 그러나 피해액을 주장하고 산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협조가 필요할 수 있다. Opt-Out에서는 이것이 어려울 수 있다. 증권관련집단소송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협조가 없이도 사실조회를 통해서 피해액을 주장 입증하는 것이 가능하고 순수한 재산상 손해배상이므로 굳이 피해자들의 호소나 참여가 필요한 것도 아니므로 단점이 별로 현실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소송허가가 되었다고 해서 별소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본안소송에서 패소한 경우 패소한 판결의 기판력이 피해자 집단 전체에 미치기 때문에 별 소를 제기할 수 없다. Opt-In이라면 이러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증권관련집단소송제도 하에서는 승소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고액의 인지대와 고지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구금액에 비례한 인지대를 부담해야 하므로 원고측이 승패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고액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증권소송의 경우에는 피해자들의 협조 없이도 한국거래소와 증권사들에 대한 금융 거래정보제출명령 등을 통해 피해자들의 수와 인적사항 및 피해내역을 특정할 수 있다. 소비자소송의 경우 피해자 자신들의 협조 없이는 피해자의 수와 인적사항을 특정하기도 쉽지 않고 피해자들의 피해내역을 확정하기도 어렵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의 대상이 되는 증권소송의 경우에는 피해자들이 비교적 균질화돼 있다. 주가조작이나 분식회계 등의 경우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쟁점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비교적 공통적이므로 피해자가 상당히 다수이기만 하면 집단소송이 피해자집단의 권리 실현이나 이익보호에 적합하고 효율적 수단이라는 요건을 충족하기 쉽다.

하지만 소비자소송의 경우에는 피해자들별로 다른 쟁점이 상당히 있을 수 있어 집단소송의 허가여부에 관한 불확실성이 훨씬 클 수 있다.

대표당사자가 되려는 자가 서로 경합될 경우 증권관련집단소송의 경우에는 구성원 중 해당 증권관련집단소송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가장 큰 자를 선정하면 되므로 비교적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다. 반면 소비자소송의 경우에는 피해금액에 있어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므로 여러 사람이 동시 다발적으로 집단소송의 소제기를 하거나 하는 경우 대표당사자 선정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일본식 2단계 소송, Opt-In 방식, 제3자 소송담당에 대해서는 , 소송의 제1단계 절차에서 사업자의 공통의무(위법성 또는 책임)의 존재를 확인한 후 제2단계 절차에서 대상채권의 존부와 금액을 개별적으로 확정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절차를 마련하는 2단계 소송제도는 증권관련집단소송의 소송허가 절차에 해당하는 절차를 1단계 소송절차로 대체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송허가절차의 경우에는 비록 허가가 되더라도 본안에서 패소가 될 우려가 있는 반면, 2단계소송의 1단계 소송절차에서는 원고가 승소할 경우 2단계에서 패소할 위험은 거의 없다고 보여 훨씬 원고의 입장에서 안전한 방식이 될 것이다. 또 1단계에서 승소하기 전에는 인지대나 공고비용을 부담할 필요도 없을 것이므로 비용부담면에서도 위험이 적다.

다만 비용부담이 없고 위험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남소가 우려될 수 있다.

Opt-Out의 경우가 더 많은 피해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면도 있지만 대표당사자가 소송비용부담이나 패소위험을 우려하여 총원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설정할 경우 오히려 피해자들의 구제범위가 좁아질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소송에서는 피해자특정 및 피해액 확정을 위해 피해자의 협조가 필요한 점을 고려하여 Opt-In을 도입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1단계 소송이후 2단계 돌입시점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권리신고절차를 간이하게 하고 사전에 예비신고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단체 등 기관에만 부여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다만 소비자단체 등에 부여하더라도 여러 단체가 경합하는 문제는 여전히 발생할 수 있다. 경합될 경우 피해자들에 대한 대표성을 고려하여 법원이 대표당사자를 정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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