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위한 음악 감수성 전도사

[우먼컨슈머 정재민 기자] 지난 10월 코엑스 컨퍼런스홀에서 기백명의 임산부를 위한 맘스쿨 행사가 열렸다. ‘오디와 함께하는 태교 음악교실코너가 1시간 남짓 진행됐다. 강사의 꾀꼬리 같은 노랫소리에 눈을 감고 불룩 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음악적 감수성에 젖어들던 예비맘들에게 1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을 듯했다. 예비맘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도 남았을 태교음악교실이 끝난 후 태교음악교실을 3년째 운영해 오고 있는 한국오디에이션교육연구소 노주희 소장을 만났다 

노 소장이 한국에 뿌리 내린 오디에이션교육은 20년이 다 돼 간다. 소리 소문 없이 유치원 등 교육기관에서 인정하는 음악 감수성 전문교육 프로그램이다.

음악적 감수성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나요?”
 
행사장 옆 룸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오디에이션이 무엇인가?”하는 기본적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말은 세계적인 음악교육자이며 연구가인 에드윈 고든(Edwin E. Gordon) 박사가 만든 말로 관련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면 생소한 말이다. 오디는 소리나 청각과 관계있음을 나타내는 영어 어근인 ‘audi-’이다.
오디에이션(Audiation)은 음악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노 소장은 이어서 비유를 들었다. 어떤 이는 교향곡을 들으면서 다양한 악기가 내는 소리의 어우러짐을 듣고, 다음 악장을 기대하게 되며, 마음을 울리는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어떤 이는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은 상태로 단순히 높고 낮은 소리들의 결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때 전자는 오디에이션을 갖췄다고 하고 후자는 그렇지 않다고 노 소장은 전했다.
 
오디에이션 교육이론의 창시자인 고든 박사는 음악교육 분야에서 영유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방법의 세계적 권위자다. 그는 음악 적성과 영유아용 음악능력 개발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오디에이션이 음악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이는 감수성과 맥이 닿아 있을 듯했다. 감수성은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는 성질이다. 이는 분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감수성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오디에이션연구소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감수성을 길러주어 개개인의 행복추구를 목적으로 합니다.”
노 소장은 이 한 마디 말로 한국오디에이션교육연구소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기자는 음악적 감수성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나요? 저는 음악적 감수성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만...”라는 질문과 함께 맥락 없는 고백을 동시에 했다. 살짝 높다 싶을 정도로 낭랑한 목소리로 노 소장이 아무렇지 않은 듯 고백을 잠재웠다.  
감수성이 전혀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은 어불성설이에요. 감수성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어요. 단지 감수성이 적다’, ‘많다라는 말이 있겠죠. 누구나 다양한 감각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만 1~2살까지 일정 부분의 자극을 받지 못하면 그 영역의 감수성이 약해지고 대신에 다른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라도 영어에 노출돼 있는 곳에서 자란다면 영어를 하게 됩니다. 아이가 처음엔 한 단어, 두 단어를 시작으로 인식이 일어나지만 점차 인식하는 단어 수가 늘어납니다. 그것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서 가르쳐 주지도 않은 문장을 말하게 됩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 노래와 악기 소리에 노출되다 보면 이 또한 아이에게 차곡차곡 쌓이게 되고 감수성이 길러지게 됩니다. 그러면 관심이 생기게 되고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영역으로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선순환이 돼서 감수성이 더욱 정교해지고 음악적 소양이 닦여나가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고 봅니다. 음악적 감수성이 있다고 모두 행복하다고 할 순 없지만 최소한 행복해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음악을 통해 고통을 줄일 수 있고, 음악을 누리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자기조절 능력을 키우기도 있습니다. 또 연습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취모델을 만드는데, 이 성취감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죠.”
 
이어 노 소장에게 그러면 만 1~2세 아이에게 음악적 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해 부모가 무엇을 할까요?”라고 질문했다.
노래를 불러주는 겁니다.”
단박에 날아온 그의 단순한 이 대답은 음치 부모에겐 귀가 번쩍 띄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고든 박사 이론에 의하면 아이에게 노래를 많이 불러줘야 해요. 아이는 특히 가공된 소리가 아니라 사람 목소리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노래를 잘 하든 못 하든 중요하지 않아요. 특히 엄마, 아빠 같은 친밀한 사람의 목소리를 좋아합니다. 사랑을 바탕으로 한 부모의 육성 말이죠.”
 
기존과 다른 음악수업
 
노래는 오디에이션교육에서 아이들의 감수성을 키워내는 핵심이다. 노 소장의 오디에이션교육은 주로 영유아를 위주로 하는 교육이지만 5~6세에는 음악과 기악을 충분히 경험하게 하는 음악경험수업으로 이어진다. 또한 초등학생에 맞는 기악전문교육으로 이어져 피아노와 밴드, 오케스트라까지 계속 공부할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음악교육은 계이름을 익히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우고 악보에 따라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디에이션은 아이로 하여금 음악에 귀 기울이게 하고 음악을 상상하며 느끼게 만들어 준다.
나이가 어린 아이에게는 오디에이션 음악수업이 가사가 없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곡조의 챈트(chant)를 많이 사용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조·단조 이외에 다양한 음조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아이들이 장조와 단조가 아닌 다른 익숙하지 않은 조도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표출하게끔 한다. 아이의 특성에 맞게 구성된 경험수업에서는 많은 생활스토리와 생활노래를 듣고 부르며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표현하게 하는데, 다양한 생활소품과 흥미를 유발하는 악기는 아이들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집중력을 높이게 된다.
 
오디에이션 전문교육센터에서는 만1, 2, 3, 4, 5세 반이 개설돼 있는데 부모가 함께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이다. 가정에서 교사 역할을 해야 하는 부모들 대상 교육이 자연스레 이뤄지기 때문이다.
 
고든 박사와의 조우로 미국행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노 소장의 운명은 연구소 개소식 세미나 참석 차 한국에 들렀던 고든 박사와의 조우로 바뀐다. 노 소장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강숙 초대 총장을 자신의 사부라고 칭했다.
고든 박사는 제 사부인 이강숙 총장의 지도교수의 지도교수에요. 그때 고든 박사가 난 요즘 갓난아이 가르치는 데 관심이 있다는 말씀을 했어요. 마침 저도 18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이 분야(영유아 지도)의 학문이 부족함을 느끼던 때였어요. 고든 박사로부터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를 배워보고 싶다는 열정이 생겼죠. 그래서 미국으로 갔어요.”
 
노 소장은 미국에서 고든 박사로부터 오디에이션교육을 전수 받고 부푼 꿈을 안고 귀국했다. 그리고 한국오디에이션교육연구소를 1997년 설립했다. 미국에 있을 때 고든 박사의 오디에이션 수업을 하는 유치원에서 본인은 좋은 선생님이었다고 말했다. ‘좋은이라는 말에는 교육을 잘 시키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고 한다. 한국오디에이션연구소를 설립해 센터에서 유아들을 지도했는데 미국 상황과 다르더라는 것. 예를 들면 수업 시간에 필요한 악기를 가져왔더니 한창 수업 중에 엄마와 아이가 그 악기를 만지며 노느라 수업에 집중을 안 하더라는 것 등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에는 노 소장의 오디에이션 같은 교육이 없었으니 아이나 엄마들이 익숙지 않았을 게다. 그래서 노 소장이 한동안 공을 들였던 부분은 교육 내용이 아니라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2014년에는 ()오디뮤직을 설립했다. 오디에이션교육을 접해봤거나 소문을 들은 각 유치원으로부터 교육 신청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강사 파견 업무를 맡을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껏 직접 오디음악 강사를 선발해 연수 후 파견을 보내는 직영 형태였다면 올해부터는 가맹 형식으로 전환했다. 지사들이 강사 파견 업무 등 관리를 맡고, 한국오디에이션연구소는 음악 연구, 강사 교습, 교안 및 프로그램 연구와 같은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기로 했다.
 
국책사업 ‘KCP음악-오디감수성선정
 
노 소장은 올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국책사업으로 ‘KCP음악-오디감수성’(브랜드 명)이 선정됐다고 귀띔했다. ‘KCP음악-오디감수성은 문화예술교육이 양적으로 성장한 만큼 이젠 질적 제고를 추구할 때가 됐다는 인식 하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민간의 우수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 사업은 음악 감수성 교육으로 50명의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80시간 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노 소장은 이들이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 올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국책사업으로 ‘KCP음악-오디감수성’(브랜드 명)이 선정됐다. ‘KCP음악-오디감수성’은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민간의 우수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지난 10월 1일 50명의 교육 수료생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수료식을 가졌다.<사진 한국오디에이션교육연구소>

 

 음악 감수성 전문교육기관인 한국오디에이션교육연구소. 노 소장에게 연구소의 목표에 대해 질문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음악 감수성을 통해 음악의 에센스(본질)를 알아듣고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어요. 반면, 오디 선생님들에게는 연구소가 샘물 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있어요. 연구소가 음악에 목마른 선생님들이 갈증 날 때 갈증을 해갈시켜 주는 곳이 되겠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한 마디 말 또는 한 소절 음으로 아이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교수(학습)법의 노하우를 개발하고 알려주고 싶어요.”
 
얼핏 아이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오디 교사가 쉬워보이지는 않았다. 노 소장에게 유능한 교사의 자질을 문의했다. 아니나 다를까 녹록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꼭 필요한 조건이지 싶었다.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선 인간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대상인 아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공자는 아니어도 되지만 음악을 좋아해야 하구요. 오디에이션교육을 잘 전달할 사명감과 의식을 가졌으면 합니다.”

 노주희 박사 약력

템플대학교 음악대학원 철학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음악학 석사
서울대학교 음악이론 학사
한국오디에이션교육연구소 소장
()오디뮤직 대표이사
한국영유아교원교육학회 이사
한국음악치료교육학회 이사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학과 겸임교수 역임
서울대학교, 서울교대 평생교육원 유아음악교육 강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유아교육학과 강사
이화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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