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금융 좀비’ 더 이상 안 돼…금융소비자 권리 깨워야

[우먼컨슈머 정재민 기자] 지난 1025일 그동안 제기되던 최순실씨 비선실세 의혹에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사실상 시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날 26일 오전에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규명을 위해 특검 추진을 확정했다. 기자가 인터뷰 차 제윤경(더불어민주당 정무위) 의원실을 방문한 때는 정국이 무기력해진 이날이었다. 재무적 무력증’, 돈 관리에 더는 신경 쓰지 않고 돈에 대해 무기력함과 상실감에 빠진 상태를 말한다. 서민 금융소비자의 재무적 무력증을 시원, 통쾌하게 날려줄 제 의원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총체적 위기 속 소비자 위기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에 대한 주제로 의원실을 방문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핵폭탄이 터진 직후라 자연스럽게 정국에 대한 얘기가 화두가 됐다. 마침 국정감사를 종료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인지라 초선인 제윤경 의원은 더욱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의원이 되기 전)에 있을 때는 사실 야당 욕을 많이 했어요. 너무 무능력, 무기력하다고요. 막상 들어와 보니 그게 아닌 거예요. 무기력한 게 아니라 힘을 쓸 수가 없는 구조인 거예요. 지난 국감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어요. 심하게 얘기하면 이렇게 상부부터 하부까지 크고 작은 도둑들이 널려 있는 줄 몰랐어요. 구조개선 얘기가 먼저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민이 큽니다.”
 
이어 그는 최근 막을 내린 국감에서 다뤘던 상조업체들의 위기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상조업체의 위기는 상조업체에 가입한 금융소비자들의 위기다.
재무건전성 최근 5년간 현황을 보면 상조업체 2개 중 하나가 완전자본잠식 상태예요. 부채가 자산보다 많아 자본금을 완전히 까먹은 상태인 겁니다. 상위 10위권 업체 중 8개 업체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나마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상조업체는 등록업체 중 14.5% 밖에 안 됩니다. 상조공제조합에 가입한 67개 업체 중 59개 업체가 자본금을 다 까먹어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상조공제조합은 소비자 피해보상과 예방을 위해 공정위 인가로 설립된 소비자피해보상기관이고 이곳을 관리·감독하는 곳이 공정위죠. 그런데 공제조합 이사장이 공정위 출신인거예요.(웃음)”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융소비자 피해 문제로 차츰 무게추가 옮겨갔다.
이 정부는 경제를 회복하려는 의지보다는 폭탄 돌리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은행의 가계대출은 계속 늘고 있어요.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돌파할 거라고 하지 않습니까. 상황이 이런 데도 정부는 집을 사라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부동산시장 활황을 통한 경기 부양을 원하는 국토교통부와 가계부채 관리를 원하는 금융위원회가 계속 불협화음을 낸 가운데 지난 825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에서 공공택지 공급물량 조정과 중도금대출 건수 규제 방안이 나왔다. 제 의원은 정책이 주택공급 감소를 통한 주택시장 관리가 아니라 실제로는 분양시장의 투기 과열을 부채질했음을 꼬집은 것이다.
 
주택시장 거품이 빠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은행이 가만히 있겠어요? 지난 4년 간 연체 때문에 경매에 넘어간 아파트 중 절반가량이 연체가 4개월 이하짜리입니다.”
제 의원이 지난 국감에서 배포한 자료에 의하면, 대출 원리금 연체로 은행이 경매에 넘긴 아파트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3517채에 이른다. 이 중에서 대출자가 고작 2~3개월 연체했다는 이유로 압류된 아파트가 8,759, 3~4개월 연체해 압류당한 아파트가 6,135채다. 그는 서민들은 직장을 그만 두거나 사업이 안 되거나 해서 일시적으로 자금 경색이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은행이 채권 관리 편의를 위해 두 달만 연체해도 집을 경매에 넘겨 가족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은 야만적인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가 사전채무조정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유다.
 
악성채권 탕감해주는 주빌리은행설립해
▲ 2014년 금융교육 사회적 기업인 에듀머니 대표 시절, 제윤경 의원이 부채탕감을 주제로 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 제윤경 의원실>

 

사전채무조정제도(프리워크아웃)는 실직, ·폐업, 재난, 소득 감소 등으로 연체가 발생해 장기화가 예상되는 단기연체 채무자를 대상으로 신용회복위원회와 채권금융회사 간 협의해서 금리와 연체이자 감면, 대출자의 능력에 따른 신규대출변경, 원리금 상환유예, 대출기간 연장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가 최장시간 근로를 하는 국가인데 절반의 가구가 200만 원 언저리 돈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그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느냐? 아니죠. 우리나라는 일용직, 계약직 같은 비정규직에서 시간 다 채워서 정규직과 똑같이 일해도 얼마 안 되는 돈을 받는 이 구조, 말도 안 되는 노동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거죠. 대출은 미래의 소득을 당겨쓰는 거예요. 덴마크 같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나라는 대출을 쉽게 해 줘요. 고용이 확실하고 사회보장도 촘촘하게 돼 있으니까 금융기관이 돈 떼일 염려를 안 하는 거죠. 우리나라는 달라요.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빈익빈 부익부예요. 전근대적 금융구조에서 빚내서 집 사라고 하는데 서민들이 그 빚을 갚을 수 있느냐? 못 갚죠. 뻔히 알면서 돈 빌려 쓰래요.”
 
제 의원이 국회에 들어서자마자 금융소비자의 권익에 천착한 이유는 그가 주빌리은행의 설립자였다는 것을 알면 자연스레 의문이 풀린다. 그는 기존에 재무관리 회사에서 근무하던 경력을 기반으로 금융교육 관련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금융교육을 하던 중 악성 채권, 즉 빚을 청산해 줘야 서민들이 바로 설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제 의원은 빚의 굴레에 빠져 제대로 된 사회활동을 할 수 없고 빚에 빚을 더해 악성 채무자로 떨어지는 서민들에게는 금융교육도 중요하지만 우선 빚을 털어줘야 새 출발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을 했다. 이게 주빌리은행 설립의 시발점이었다.
 
주빌리은행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부실채권을 매입하거나 기부 받아 소각해 채무자들을 구제하는 단체다. 그리고 빚으로 고통 받는 채무자들이 자유로워지도록 상담하고 교육하고 캠페인을 진행한다. 지난 530, 20대 국회 첫 의원총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세비를 모아 부실채권 123억 원을 소각해 2,525명을 구제하는 빚소각 퍼포먼스를 한 것도 제 의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죽은 채권이 뭐야?
 
제 의원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하려는 분야는 악성 채권자로 인한 불법 추심행위다. 20대 국회 원내에 진입하자마자 제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가계부채 TF ‘생계형부채소위간사를 맡아 활동했다. 그리고 지난 6, 19대 국회에서부터 박병석 의원 등과 함께 준비해 온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일명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을 발의했다.
 
소위 죽은 채권이라는 게 뭔가? 이는 소멸시효 완성 채권이다. 채무자는 소액을 빌려도 제때 갚지 못하면, 원금보다 이자가 빨리 쌓이는 구조 때문에 장기 연체자가 된다. 추심은 연체가 길어질 경우 금융권에서 채권을 상각 처리해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 채권을 넘김으로써 본격화된다. 돈을 빌린 곳은 은행이나 카드사인데 대부업체 같은 엉뚱한 곳에서 돈 갚으라는 전화가 온다면 바로 이 경우다. 제도권 금융사들은 돈을 회수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장기 연체 채권을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 원금의 1~3%에 불과한 헐값으로 판다.
 
금융사의 대출 채권은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때부터 5년이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다시 말해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부실채권을 대부업체나 추심업체들이 헐값에 사들이는 이유가 있다. 소멸시효를 부활시키려는 것이다. 법원의 지급명령이 있거나 채무자 스스로 변제하는 경우 소멸시효가 부활한다. 채무자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즉 갚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소액이라도 갚는다면 죽었던 채권이 갚아야 하는 돈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금융 좀비. 추심업체들은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원금의 절반 이상을 탕감해 주겠다는 등의 말로 채무자로부터 채권의 소멸시효를 다시 살려낸 후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추심업체들은 채무자에게 온갖 방법을 동원해 추심에 들어간다.
 
제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이후 5년간 162개 금융회사가 4,122억 원의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120억 원(2.9%)에 대부업체 등에 매각했으며, 특히 삼성카드가 전체의 절반 이상인 2,1065,400만 원에 달하는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구 솔로몬 저축은행에 원금의 4%841,400만원에 넘긴 바 있다 
▲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 우먼컨슈머>

 

제 의원은 채권 추심 권리는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어쨌든 사망을 해야 하는데, 사망하지 않고 죽은 채권을 다시 살려서 지속적인 추심이 진행되고 있어요. 제도 금융권으로부터 1~2%에 채권을 사서 100%의 권리로 빚 독촉하는 추심업체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인권 침해 요소가 너무 많아요라고 말했다.
 
금감원 대상 국감이 한창이던 지난 1013일 제 의원은 SBI저축은행 사장을 상대로 한 증인 신문에서 “SBI저축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2조 원 상당의 죽은 채권을 어떻게 정리하려고 하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사장은 사회단체 등 관련 기관에 양도할 계획을 세우겠다는 답을 했다. 이후 소각 계획을 발표한 SBI저축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 대상 채권은 9,698억 원으로, 채권 소각 시 총 119,000여 명이 혜택을 받게 된다. 또한 제윤경 의원실에 따르면 러시앤캐시460~470억 원을 시민 단체에 무상으로 양도하는 방식으로 탕감하기로 했고, '산와'대부도 현재 자회사인 '와이케이'대부에서 보유 중인 약 12,000건 총 167억 원을 소각하기로 했다. 이 두 곳은 추가로 개인 신용 대출 중 금리 35% 이상을 적용받는 고객 중 연체 없는 고객에 대하여 올해 10월 말까지 27.9%(법정최고이자)로 인하하기로 제 의원과 합의했다.
 
제 의원은 의원실을 통한 민원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들어 온 금융소비자 민원을 위해서 직접 관련 금융사에 전화하기도 한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권력을 제대로 쓰라고 의원 만들어준 거 아닙니까?”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렇다고 제 의원이 돈을 갚지 않는 채무자의 의무를 도외시하는 건 아니다. ‘빚진 죄인인 채무자를 과도하게 취급하는 사회와 금융권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가 쓴 저서인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에서 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금융소비자들이 불법추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인 동시에 불건전한 채권시장의 투명성을 제고시킬 법안이라는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은 올해 연말 국회를 통과할 예정이다.
 
제 의원에게 금융소비자들을 위한 제언을 부탁했다.
잠자는 권리를 깨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은행 등 금융기관 앞에서 이 되지 말고 금융소비자로서 당당해 지세요. 권리의식을 많이 가지셨으면 해요. 특히 채무자들은 그런 걸 잘 못하시는데요...금리인하권도 요구하세요. 금융소비자로서 우린 이 아니고 고객이고 이예요. 만약 금융권에서 갑질한다, 그러면 금감원에 신고하세요.”
재무적 무력증에 빠진 금융소비자에게 당당히 소비자 권리를 찾으라는 제 의원과의 인터뷰는 사이다 같이 톡 쏘는 청량함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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