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죽 가방

 

 가방, 신발부터 당구 큐대의 손잡이, 자동차시트 등 가죽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얇으면서도 질긴 물성, 쓸수록 부드러워지는 질감 덕분에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죽은 늘 우리들 가까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죽이 탄생한 배경이나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에 '뉴시스'는 동물의 껍질에서 재탄생한 가죽에 대해 들여다봤다.

◇ 인류와 가죽

인류는 수렵 생활을 하면서 가죽을 얻게 됐다. 사냥으로 얻은 가죽을 자신의 몸에 두르거나 신발을 만들어 발에 감고 다니면서 외부의 상처로부터 보호했다.

가죽 가공은 농경을 위주로 한 동양보다 목축과 사냥, 육식이 성행한 서양에서 더 발달했다. 가공된 가죽은 옷과 신발, 술통, 갑옷, 말안장 등 생활용품에서 전쟁용품까지 다양한 분야에 쓰였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 유물에 말안장, 신발, 칼집 등의 가죽제품이 발견돼 이전부터 가죽으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껍질에서 가죽으로

가죽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피를 물로 씻고, 지방이나 살조각을 제거한 뒤 화학적으로 처리하는 무두질과정(탄닌 혹은 유성공정, Tannining Process)을 거친다.

우선 가죽을 물로 씻는데 15~20일 가량 걸리는데 이때 막대한 물이 필요하다. '재미있는 가죽 이야기' 저자 김원주씨는 "물이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 제혁 작업의 효율성이 달라지고, 물속에 담겨 있는 가죽을 어떻게 제혁했느냐에 따라 가죽의 품질 차이가 난다"는 의견을 책을 통해 내놨다.

다음으로 동물의 콜라겐 구조를 화학적 반응을 통해 3차원 망상구조로 바꿔주는 무두질 과정을 진행한다. 가죽은 그대로 두면 부패하기 쉽고, 물에 담그면 팽창하며 건조하면 단단한 널판과 같은 상태가 돼 반드시 무두질이 필요하다. 이 무두질 과정에 의해 가죽의 촉감과 유연성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두질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방식은 식물성 무두질과 크롬화합물을 주성분으로 하는 용액을 사용하는 크롬 무두질이 있다.

식물의 과실이나 줄기 잎에서 추출된 탄닌액을 사용하는 식물성 무두질은 가장 오래된 제혁 방법으로 오늘날 고급 가죽의 공정에도 많이 이용된다. 식물성 무두질 가죽은 충격에 강하고 잘 늘어나지 않는 반면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가격이 비싸며 아주 부드러운 가죽을 만들 수 없다.

오늘날 제혁 방법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크롬 무두질은 다른 방법에 비해 공정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걸려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보존성, 내열성, 염색성, 유연성이 우수하며 가볍고 탄성이 크다. 하지만 외부 충격이나 마찰에 약해 쉽게 긁히고 마모가 잘 된다.

◇ 상품가치 있는 가죽이 되기까지

가죽을 만드는 전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한 '가죽공업화학'의 저자 김명웅 전 오산대 교수는 무두질까지는 가죽을 만드는 공정이며 무두질 이후부터는 제품을 만드는 공정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두질을 한 가죽은 용도에 따라 등급을 나눠 선별한 다음 두께를 조절하는 쉐이빙(Shaving), 산을 제거하는 중화, 소비자가 원하는 색상을 만들기 위한 염색 과정을 거친다.

염색까지 했으니 가죽이 다 만들어졌나 싶었지만 아직도 몇 개의 공정이 더 남아 있다. 무두질 공정으로 단백질이 변성된 가죽을 그대로 건조하면 나무막대기처럼 딱딱하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죽을 건조시키기 전에 가죽의 섬유, 섬유 속 사이에 다시 기름을 넣어주는 '가지(fatliquoring)' 작업을 한다.

염색과 가지작업이 끝나 젖어 있는 상태의 가죽을 자연건조나 열풍 등의 방법으로 건조시킨 후에는 무늬를 만들거나 균일한 표면을 얻기 위해 도장(塗裝) 작업으로 마무리한다.

◇ 닳아질수록 매력은 더해진다

복잡하고 섬세한 공정 과정을 거친 가죽은 그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상품으로 만들어진다. 가죽은 손을 탈수록 부드러워지고, 기름때가 묻을수록 산화가 더디기 때문에 잘 관리하면 10년 이상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30대 직장인 문희연씨(여·가명)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죽으로 된 지갑, 다이어리 등을 쭉 사용해왔다. 그는 "사용할수록 내 손에 익어가고, 손때가 탈수록 길들여지는 느낌이 들어 가죽제품을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죽공예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학순씨(52·여)는 "가죽 특유의 질감, 마모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디자인하고 만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가죽제품을 갖고 싶어 해 수강생이 꾸준히 있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가죽도 닳고 닳으면 코팅이 벗겨진 후 갈라지고 찢어지게 된다. 생활소품의 경우 가죽이 수명을 다하면 교체가 불가피하지만 소파 같은 경우 가죽이 갈라지기 전에 재코팅해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 가죽生의 마감

자신의 본분을 다한 가죽은 어디로 갈까. 수년에서 10년 이상 사용된 가죽을 다시 활용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1970~1980년대까지는 버려진 가죽은 동물의 힘줄, 뼈 따위를 진하게 고아 굳혀 끈끈하게 만든 아교풀(갖풀)의 원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교풀 대신 본드를 사용하기에 버려진 가죽의 재활용은 더욱 쉽지 않다. 가죽 관련 종사자들은 버려진 가죽은 땅에 묻거나 소각한다고 했다.

소파 리폼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김철주씨(남·가명)는 "가죽은 잘 썩지 않기 때문에 땅에 묻기보다 소각을 더 많이 하는 편"이라고 알려줬다.

가죽제품 판매업을 했던 전호선씨(남·가명)는 "가죽 소각으로 인한 매연으로 환경 오염이 되는 문제점이 있어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가죽을 처리하는 방법이 연구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아직까지 특별한 대안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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