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센 이장석 대표 "프로스포츠 산업화의 개척자가 되고 싶다"<사진=뉴시스>

 

2013년은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가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2008년 창단 후 하위권을 맴돌았던 넥센은 올 시즌 정규리그 3위를 차지, 창단 6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지난 8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이겨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승리를 맛보았다.

넥센은 10개 구단(KT 위즈 포함) 중 유일하게 모기업 없이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야구 전문기업이다. 원래 이름은 '서울 히어로즈'이지만 넥센 타이어와 네이밍 스폰서십을 맺었기 때문에 '넥센 히어로즈'로 불린다.

올 시즌 넥센의 선전을 이야기할 때 이장석(47) 대표이사를 빼놓기는 어렵다.

2008년 창단 당시 숱한 의구심과 비난에 직면했던 이 대표는 넥센의 재정을 정상화시키는 한편 박병호·송신영 등 굵직한 트레이드를 통해 팀 전력을 강화했다.

지난 7일 목동구장에서 만난 이 대표는 "창단 후 6년이 지나서야 '재정'이나 '돈'이 아닌 '성적'이 주요이슈가 됐다"고 활짝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한국 프로스포츠가 대기업 없이 혼자 자립화, 산업화를 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개척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장석 대표와의 일문일답

- 넥센이 창단 후 처음으로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2008년 창단부터 지난해까지 5년은 '시행착오', '좌충우돌', '위기극복' 등 3가지 사자성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2008년 현대 야구단을 처음 인수했을 때는 무지함과 무인맥에서 시작했고 그 결과 커다란 시행착오를 겪었다. 첫해부터 초대 감독과 단장이 모두 나가고 메인스폰서였던 우리담배는 돈을 지급할 여력이 없었다. 좌충우돌은 장원삼·이현승·이택근을 현금을 받고 판 것이다. 요새 젊은 친구들이 많이 하는 말로 '흑역사'이자 치욕의 역사다. 당시 많은 야구팬들이 내게 '사기꾼' '장사꾼' '냉혈한'이라고 했지만 나 역시 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돈 때문에 선수를 팔아야 했기 때문에 구단 대표로서 모멸감과 슬픔이 정말 컸다. 2010년부터는 넥센이 메인스폰서로 들어오면서 점차 안정을 찾았고 2012년부터는 전력강화 등 장기적인 문제를 고민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넥센 하면 '현금', '돈', '재정'이 항상 주요이슈였는데 창단 후 6번째 시즌인 올해는 성적이 주요 이슈가 됐다. 가을야구 진출은 우리를 아껴주신 여러분을 위한 기본 사명이다. 올해 첫 발을 잘 디뎠다고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얻은 가을야구여서 정말로 감회가 깊다."

- 올 시즌 넥센의 선전 비결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4·5월 성적이 좋았던 것은 스프링캠프 때 준비가 잘 됐기 때문이다. 다른 팀들은 4월에도 계속 시험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스프링캠프에서 준비한 대로 했기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6월 부진은 음주파동과 심판오심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다른 팀들이 6월쯤에는 우리 팀에 대한 분석을 끝내 더 이상 4·5월처럼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9월 상승세는 모멘텀 관리가 바탕이 됐다. 지난해에는 선수들의 부상과 함께 혹사가 많았는데 올해는 관리가 잘 됐고 그게 9월 반등으로 이어졌다. 오재영과 문성현의 선발 보직은 염경엽 감독의 훌륭한 결정이었다. 특히 오재영은 불펜 투수로 나가면 첫 타자 피출루율이 매우 높다. 중간계투로 뛸 때보다 얼굴도 훨씬 밝아진 것 같아 보기 좋다."

- '빌리 장석'이라는 별명에 대해 알고 있는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은 저비용 고효율 선수를 효율적으로 운용해 오클랜드를 강팀으로 만들었다. 영화 '머니볼'의 실제 인물이다.)

"과찬이다. 또한 내게는 잘 맞지 않는 별명 같다. 빈 단장은 나와 야구 철학이 다르다. 빈 단장은 세이버 메트릭스(sabermetrics· 다년간 쌓인 통계 자료를 이용해 선수의 재능을 평가하는 분야)를 잘 알고 관련 경험과 지식도 뛰어나다. 우리도 OPS(장타율+출루율)정도는 사용하지만 세이버 메트릭스만으로 선수단을 경영하지 않는다. 세이버 메트릭스로 측정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의 심성과 팀워크 등은 수치로 나타나지 않지만 중요하다. 빈 단장이 20년 동안 미국프로야구의 한 페이지를 썼듯 내게도 10~15년을 더 주면 더욱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

- 스카우트를 총책임지고 있다. 야구인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2010년 드래프트 이후 외국인 선수를 포함한 스카우트를 직접 맡고 있다. 조언을 듣고 참고하지만 최종 결정은 나와 남궁종환 부사장이 한다. 결국은 내 선수를 고르는 일이니 구단의 주인인 내가 해야 한다. 우리가 자동차를 만들 줄은 몰라도 좋은 자동차를 고를 수 있는 것처럼 야구도 마찬가지다. 식당 사장님이 모두 주방장 출신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는가. 2008년의 이장석은 선수 보는 눈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목숨을 걸고 6시즌을 치렀고 프로경기도 700경기 이상을 봤다. 목동구장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경기까지 하면 1500~1700경기가 훌쩍 넘는다. 눈을 감으면 우리 선수가 어떻게 던지고 어떻게 치고 있는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절대로 야구 내공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가장 기억에 남는 트레이드는?

"박병호 트레이드가 아니겠는가. (박병호는 심수창과 함께 2011년 LG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됐다) 다른 팀이지만, LG에서 KIA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후 2009년 MVP를 탄 김상현(현 SK)도 훌륭한 트레이드이다. 그러나 박병호는 2년 연속 MVP가 확정적인 선수다. 2년이 아니라 3~4년이 될 수도 있다. 2009년 김상현 트레이드보다 훨씬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지 않을까. 더 즐거운 것은 그때 박병호를 데려오면서 떠났던 송신영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올해 초 서동욱의 트레이드를 하지 안했으면 6월 음주 파동으로 생긴 내야수 공백을 어떻게 메웠을지 끔찍하다. 특별한 비결이 있다기보다는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 좋은 타자와 좋은 투수는?

"1·2번 타자는 출루율이 좋은 선수를 선호하고 나머지 타순은 장타율이 높은 타자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콘택트 능력만큼 자신만의 스윙을 하는 선수가 참 매력적이다. 파울라인 안쪽으로 공을 모을 수 있는 정교함도 중요하다. 박병호가 파울라인 왼쪽으로 나갈 것 같은 타구를 한손을 놓으면서 안쪽으로 잘 유도한다. 좋은 투수는 제구력이 좋은 선수다. 스피드는 140㎞ 초반이라고 해도 프로에 와서 웨이트하고 유연성이 늘어나면 구속은 늘릴 수 있다. 제구만 잘 되어도 성공할 수 있다. 두산의 유희관이 좋은 예가 아닌가. (넥센은 볼넷이 많다고 묻자 크게 웃으며) 사실 우리도 예전에는 구위 특히, 구속을 많이 봤다. 과거에는 빠른 구속을 앞세운 삼진왕을 많이 뽑았는데 지금은 K / BB(Strikeout-to-walk ratio·삼진 대 볼넷 비율)이 좋은 선수가 우선이다. 삼진 능력뿐만 아니라 제구력이 뒷받침돼 볼넷을 얼마나 적게 주는지도 고려하겠다는 말이다. 이젠 단순히 구위만 좋은 선수를 뽑지는 않을 것이다."

- 지난해 김시진 감독 해임 때는 잡음이 컸다.

"지난 시즌에 우리는 20승에 선착하고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프로야구 역사에서 20승에 먼저 오른 팀이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경우는 우리와 LG뿐이다. 현금 트레이드 만큼이나 불미스러운 역사다. 전반기를 3위로 마치고 후반기를 6위로 마감했다. 2012시즌 초반에는 김시진 전 감독님께 성적에 대한 압박을 전혀 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박병호가 MVP를 했고 서건창이 신인왕을 탔고 브랜든 나이트가 16승을 했으면 성적이 더 나와야 했다. 이같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쉽게 용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어려웠을 때 함께한 감독을 쫓아냈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2011년 최하위를 했을 때도 가장 먼저 재계약을 해드렸다. 지난해 후반기에는 정말 속이 썩어 들어갔다. 김 감독님께 섭섭하게 해 드린 부분은 없다."

- 현 염경엽 감독의 선임 역시 의외라는 평가다.

"염 감독님은 젊고 소통이 잘 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선수관리를 철저히 잘 할 것 같은 참모형 감독이다. 넥센의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 출신이라는 점도 많이 작용했다. 인터뷰할 때 우리 구단의 과제와 약점, 구단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이 더욱 기대된다."

- 넥센은 언제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겠는가? (넥센은 매년 약 250억원 정도를 쓰고 220억원 가량을 번다. 약 30억원씩 적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3년 내에 맞출 수 있을 것이다. 2016년에는 가능하리라고 본다. 손익분기점을 찍는 순간 본격적인 자립화와 산업화가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지금도 모기업이 지원을 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자생할 수 있는 구단도 있다. 광고나 스폰서십 등은 어느 정도 인프라를 갖춰나가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네이밍 스폰서 없는)서울 히어로즈로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

- 야구단 운영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한국 스포츠는 대기업의 지원 속에 곱게 자란 화초다. 나는 한국 프로스포츠 산업화의 개척자로 남고 싶다. 야구에 뛰어든 이유도 산업화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입장수입과 중계권료, 스폰서료로 충분히 자생구조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중계권료가 턱없이 낮다. 고쳐야 할 부분이다. 현재 우리 구단의 자립화는 60% 정도라고 생각한다. 500억원 정도를 벌고 그만큼을 써야 100% 자립화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 넥센 히어로즈의 대표는 계속 이장석인가?

"매각에 대한 질문인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다. (한숨을 쉬며)나도 이제 곧 50세다. 앞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30년 정도 남았다. 그것도 힘없는 30년일 것이다. 나는 '이장석'이라는 이름이 중요한 사람이다. '2008년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한 뒤 몇 백 억을 받고 매각한 사람'이라고 남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많은 의심과 욕을 먹으면서 고작 남는 것이 돈뿐이었다면 시작도 안했다. 야구단은 내가 즐기면서 잘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거기다가 미래도 보인다. 야구단을 매각하면 나는 바로 실직자가 되는데 내 직장을 스스로 어떻게 걷어차겠는가. 우리 야구단은 직원이 170명 밖에 안 되지만 연간매출이 10조원이 넘는 회사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들어오기 힘든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일원이자 이제는 팀 전력도 괜찮은 넥센의 대표다. 매출 10조원이 넘는 총수가 전혀 부럽지 않다. 지난 5년간 2군에서 내공을 쌓았다고 하면 이제 막 1군 무대에 데뷔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1군 생활을 어떻게 할지 잘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이장석 대표이사 프로필]
▲1966년 서울 생 ▲연세대 금속공학과 ▲인시아드(INSEAD) MBA 이수 ▲보잉 인터내셔널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1989~1990년) ▲아시아 비즈니스 월드 CEO(1990~1995년) ▲메릴 린치 M&A부 런던 어소시에이트(1995~1996년) ▲ADL(아서디리틀) 코리아 부사장(1998~2001년)·글로벌 파트너(2004~2006년) ▲MaxEV 대표이사(2001~2002년) ▲매버릭웨이브 싱가포르 CFO(2002~2004년)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대표이사(2008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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