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2011년 5월 1일 일요일 오후 2시04분. CIA국장으로부터 급보를 받은 오바마 대통령이 매릴랜드의 앤드루 공군기지의 영내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말고 대기중인 리무진을 타고 22킬로미터 떨어진 백악관으로 황급히 귀환한. 9홀 페어웨이에서 세컨 샷을 하려던 차에 급보를 전해들은 오바마였다. 귀환하기 전 그는 페어웨이에서 7번 아이언을 손에 든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후 1시 39분이었다. 2시간 전 파키스탄으로 급파된 네이버씰 특수요원들이 911월드타워 테러 사건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있는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한 세기를 풍미하며 살다간 수많은 골프 영웅들의 스윙은 어땠을까. 골프스윙은 클럽과 볼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왔다. 스윙의 변천사는 클럽의 변천사와 함께한 것이다.골프의 신이라 불리웠던 스코틀랜드의 알렌 로버트슨응 19세기 스윙의 정석이었다. 1859년 올드코스에서 인류 최초로 80대를 깬 골퍼였으며 당시의 클럽은 히코리클럽이었고 볼은 역사 속으로 사려져가는 거위깃털볼을 사용했다. 162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키에 왜소했던 알렌은 어드레서에서 뒷발에 무게 중심을 두고 클럽을 어께에 맬 정도로 플랫하게 백스윙을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세계에는 총 몇 군데의 골프장이 있을까.2011년 영국왕실골프협회인 R&A는 골프에 관한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아주 특별한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72억 4천 7백 24만 1천8백 50명의 세계인구 중 몇 명이 골프를 치는지, 239개국에는 몇군데의 골프장이 있는지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R&A는 미국의 골프 산업 리서치 기관인 미국골프재단 NATIONAL GOLF FOUNDATION과 연계해서 15개 유수 기업으로부터 협조를 받아 비밀리에 전세계 골프장을 4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세계 최고의 선수였으면서도 메이저에서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호주의 그렉 노먼이 1986년에 치렀던 마스터즈경기를 훗날 세인들은 ‘노먼의 토요슬램’이라고 불렀다. 세계랭킹1위였으며 비지니스제국이라 불릴 만큼 막대한 부를 쌓은 세계 최고의 사업가인 노먼이지만 마스터즈에서의 쓰라린 상처는 평생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청년시절 서핑을 하다 상어를 때려잡고 금발의 냉철한 킬러 같다고 붙여진 별명이 백상어이다. 프로 골퍼 이상의 실력가인 어머니에 의해 16세라는 늦은 나이로 처음 골프채를 잡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1979년 스페인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한 선수의 등장은 수십년간 미국이 지배하던 세계 골프의 흐름을 통채로 바꾸어 놓는다. 6,70년대 미국은 국민스타 아놀드 파머와 잭 니컬라우스 2명의 걸출한 전설을 배출하면서 골프 전성기를 구가하던 중이었다. 난공불락이던 미국골프를 침공해 이방인 골프의 시대를 연 주인공은 세비 바예스테로스였다.1979년 7월 18일 108회 디 오픈이 열리는 스코틀랜드의 유서 깊은’ 로얄 리덤 앤 샌 앤스’ 골프장. 1926년 보비 존스이래 이 골프장에서 만큼은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지구에서 벌이는 골프의 향연을 뒤로하고 잠시 우주로 떠나면 어떨까. 계수나무 아래에서 떡방아를 찢는 토끼가 아니라 떡자루 대신 골프채를 들고 달에서 골프를 친다면? 상상만 해도 멋진 일이다. 그런데 달에서 골프를 친 지구인이 있다. 주인공은 알랜 세퍼드ALAN SHEPARD, 아폴로14호의 선장이다.1971년 1월31일. 스튜어트 루사, 에드가 미셀, 그리고 선장 알랜 세퍼드를 태운 아폴로 14호가 달을 향하고 있었다. 1969년 7월20일 인류 최초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이래 2년이 채 안된 시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반세기 이상을 함께 한 영원한 두 전설. 킹으로 불린 아놀드 파머와 황금곰 잭 니컬라우스의 숙명같은 첫 대결은 언제였을까. 1962년 US오픈이 열리고 있는 필라델피아의 오크몬드골프장. 아놀드가 독주하리란 예상과 달리 처음부터 물고 늘어진 선수는 오하이오 출신의 신참내기 잭 니컬라우스였다. 이제 갓 22살의 프로 데뷰1년차로 이미 17차례의 PGA대회를 치르면서도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던 무명의 선수였다. 반면 아놀드는 이미 5번의 메이저를 포함해 33 차례나 우승을 한 천하무적이었다. 아놀드는 잘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죽기 전에 한 번 쯤은 가봐야 할 미국 골프의 성지는 어디일까? 영국 올드 코스에 버금가는 미국 골프의 메카이자 순례지로 불리는 곳. 바로 조지아주의 어거스타 내셔널이다. 이 곳에서 열리는 마스터즈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프로들은 선수 생애 최고의 훈장으로 생각한다. 팬들 역시 어거스타 내셔널의 잔디를 한번이라도 밟아보는 것을 일생일대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한다.조지아주의 아틀란타 시에서 동쪽으로 1백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어거스타는 4월 2째주 월요일 만 되면 홍역을 치른다. 인근20번 메인 하이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메이저 대회의 트로피는 명성 만큼이나 수난의 역사를 지녔다. 깨트려지는가 하면 불에 타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한 트로피들. 대체 어떤 일들이 생겼을까.1926년 PGA챔피언쉽 시상식장. 주인공은 1920년대 풍운아인 월터 하겐으로 전년도에 이어 우승을 하면서 트로피를 수상할 차례를 기다렸다. 지난해 트로피의 반납자이자 올해의 수상자가 동일인물이 된 것. 그러나 정작 트로피는 현장에 없었다. 주최 측이 물었다. "하겐씨. 트로피를 가져와서 우선 반납 절차를 밟으셔야죠." 월터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안 가져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니스트] 미국의 전설적인 골프 영웅이면서 정작 US오픈에서만 우승을 하지 못한 선수가 있다. 1895년 이래 1백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US오픈은 미국인들에게 자랑스런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영웅에게도 뼈아픈 상처는 있는 법. 미국이 낳은 전설적인 골퍼 중 한명인 샘 스니드는 US오픈이 외면한 불운한 선수이다. PGA통산 82승으로 최다 우승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무려 37번의 US오픈 출전에다 우승 찬스도 4차례나 있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1939년 필라델피아의 스프링 밀골프장.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벤 호건은 현대 골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전설적인 골퍼이다.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스윙은 여전히 역사상 가장 완벽한 스윙으로 인식돼 있다. 수많은 21세기 선수들이 그의 스윙을 따라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호건은 볼을 가장 잘 때려내는 최고의 볼 트라이커였다. 타고난 재능이 아닌,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인내심의 극치를 몸으로 보여준 동경의 대상이었다. 호건의 교습서인 ‘5가지 레슨’은 골프 서적의 바이블이지만, 그의 스윙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벤 호건의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1930년대 미국의 어두웠던 공황의 시기에서 국민들에게 위안을 준 골퍼들은 바이런 넬슨, 샘 스니드 그리고 벤 호건이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미국의 삼두마차로 불렀다. 1912년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였던 이들 3명은 보비 존스 등 전 세대의 계보를 이어 미국골프를 전성기로 몰고 가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당시의 여느 프로처럼 바이런 역시 캐디를 하면서 골프장에서 밤늦은 시각에 몰래 연습을 하곤했다. 약관 20세인 1932년 프로 데뷰를 선언한 그는 3년 뒤인 1935년 첫 승을 하면서 우승 행진에 시동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알바트로스를 공식적으로 기록한 골퍼는 20명도 채 안된다. 그 중 가장 극적이고 역사에 회자 되는 알바트로스는 1935년 진 사라센이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떤 알바트로스였을까.1935년 4월 8일 조지아주의 어거스타 에서 ‘어거스타 내셔널 인비테 이셔널’의 마지막 4 라운드가 열리는 날이었다. 2회째인 이 대회는 아직까지 마스터즈라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채 초청대회로 치러지고 있었다. 앞 조에서 치고 있는 크레이그 우드가 2백 9타로 선두였고, 2백 12타로 4위에 올라있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니스트] 메이저는 왜 메이저인가. 왜 특별할 수 밖에 없는가. 프로골퍼가 PGA의 일반 대회에서 아무리 우승을 많이 기록해도 메이저 대회에서의 우승이 없으면 사람들은 ‘미완의 골퍼’라고 부른다. 하지만 단 한차례 우승이라도 메이저라면 큰 대접을 받는다. 일반 대회의 우승이 아무리 많아도 메이저의 우승이 없으면 명예의 전당에도 헌납되지 못한다. 그만큼 메이저의 우승은 선수들에게는 생애 최고의 영광이다.4대 메이저 중에서 매년 첫번째로 치르는 대회가 마스터즈이다. 4월 2째 주부터 일주일 간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샌드, 피칭 등 웨지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 됐을까?17세기 말에 가서야 나타나기 시작한 초창기 아이언세트는 고작 3,4자루에서 그쳤고, 그나마 세분되지 않았다. 8,9번 같은 짧은 아이언은 매시MASSIE,니블릭NIBLICK 등으로 불리면서 웨지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19세기말까지만 해도 제일 짧은 클럽이 9번 니블릭이었고, 골퍼들은 각자가 짧은 클럽을 만들던 시절이었다.20세기 초반까지도 선수들은 벙커에서 쓸만한 클럽이 없어 여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20년대 스타였던 월터 하겐도 당시에는 컨케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골프에서의 그랜드슬램은 그 해에 열리는 4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을 뜻한다. 골프에서 메이저 대회가 생긴 이래 1백58년이 흐르는 동안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골퍼가 있을까. 타이거 우즈도 아니고, 잭 니컬라우스, 아놀드 팔머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유일하게 이룬 단 한 명, ‘골프의 전설’LEGEND OF GOLF로 불리는 보비 존스이다.1930년 6월20일. 영국의 로얄 리버풀에서 디 오픈 마지막 날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3일 간 70-72-74타로 썩 좋지는 않은 스코어였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니스트] 미국의 전통있는 잡지 중 하나인 포춘지가 1931년 한 장의 사진을 실었다. 1894년에 열린 1회 미국 아마추어 골프대회였다. 에버레트 헨리라는 화가가 1894년에 그린 것이었는데 37 년이 지난 1931년에야 E.커리어라는 일러스트에 의해 판화로 색상이 칠해진 후 잡지에 실린 것이었다. 이 대회는 1895년에 열린 제1회 US 프로 오픈보다도 1년 앞서 열린, 미국 최초의 공식 골프대회라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음에도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더군다나 37년이라는 뒤늦은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오래된 앤틱을 대할 때 가장 일반적인 궁금증은 ‘얼마나 할까’라는 가격에 대한 생각이다. 현존하는 수 백 년 전의 나무로 된 골프클럽은 얼마나 할까? 골프채 가격을 보러 소더비 경매장으로 한번 들어가보자.2007년 9월, 소더비 골프채 경매사상 최대에 달하는 6백52자루의 나무골프채가 한꺼번에 매물로 쏟아졌다. 총 경매가는 자그마치 4백만 달러, 한화로 50여 억원에 달했다. 소더비 측이 챙긴 커미션만 해도 25퍼센트에 달하는 10여 억원이 넘었다. 그많은 골프채를 내놓은 주인공은 단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니스트] 골프에서 사용되는 버디, 파 등 스코어의 명칭들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파PAR는 1870년 영국에서 처음 사용됐다. 골프 소설가인 A.H.돌먼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묘사하기 위해 프로골퍼인 데이빗 스타라와 제임스 앤더슨에게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을 하려면 몇타를 쳐야 하냐”라고 물었다.두 프로는 “완벽한 플레이는 12홀이 한라운드인 프레스트윅골프장에서 49타를 치면 된다”라고 했다. 당시 디 오픈은 1960년 부터 12년 간 프레스트윅골프장에서만
[우먼컨슈머 이인세 칼럼] 특유의 반짝거림으로 인해 스틸샤프트는 골퍼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스틸이라는 재질로 샤프트가 만들어지면서 골프가 시작된 이래 5백 년간 사용됐던 나무샤프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골프계에 혁명을 몰고 온 스틸샤프트는 누가 언제 발명했을까?스틸샤프트의 사용은 1백20여 년 전 부터이다. 센터샤프트퍼터를 처음 고안했던 아더 프랭클린 나이트가 스틸샤프트도 발명한 장본인이다. 나무를 대체할 여러 형태의 과도기적 샤프트를 만드는 시도는 19세기 말 영국에서부터 비롯된다. 알루미늄이나 쇠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