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은행 서울본부는 서울 관내 사무소장과 임직원 등 1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9대 조은주 서울본부장 취임식을 가졌다고 6일 밝혔다.조은주 신임본부장은 1968년 충남 태안 태생으로 1987년 농협중앙회 입사, 2018년 태안군 부지부장, 2019년 업무지원센터 단장, 2020년 농업금융부 농업금융컨설팅투자단 단장, 2021년 지역사회공헌부 부장을 역임하였다.특히,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여성정책 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농촌복지 제도개선 추진과 정책제안은 물론, 여성농업인 지위향상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서울농협에
KB금융그룹은 이번 ‘11호 태풍 힌남노’로 인해 피해를 본 국민들의 긴급 구호 및 피해지역의 신속한 복구 지원을 위해 총 10억원의 성금을 전달 할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10억 원의 성금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전달되어, 긴급 구호 및 시설 복구, 이재민 생필품, 취약계층 주거안전, 소상공인 지원 등 피해를 입은 분들을 위해 전액 사용될 예정이다.기부금 외에도 KB국민은행은 이재민들을 위한 긴급구호키트(모포, 위생용품, 의약품 등) 및 급식차와 세탁차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전달되는 성금 외에 KB금융그룹 주
우리금융그룹은 6일 자원순환의 날을 맞아 업사이클링(Up-cycling)으로 재탄생된 화분을 학교 교실 숲 조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전국 35개 초등학교에 기부했다고 밝혔다.앞서, 우리금융그룹은 지난 4월부터 일상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을 수거해 업사이클링 화분을 만드는 자원순환 활동 ‘Act for Nature with Woori- 우리가 GREEN 미래’ 캠페인을 진행했다.이번 캠페인에는 우리금융그룹 임직원들을 비롯해, 2022년 탄소중립 중점학교로 선정된 경기 갈곶초등학교와 충남 탕정초등학교 및 탄소중립
NH농협은행은 지난 5일 공공금융부문 김춘안 부행장과 직원들이 추석 명절을 맞아 서울 중구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남산원’에 후원품을 전달하였다고 6일 밝혔다.이날 공공금융부문 임직원들은 남산원에 필요한 농산물과 생활필수품을 전달하였고, 전달된 후원품은 NH농협은행의 금융상품 판매액에서 일정 비율로 적립한 공익기금으로 준비했다.아울러 NH농협은행의 주거래기관인 한국재정정보원(원장 박용주)도 나눔활동에 동참해 보호 아동들에게 다과 등 후원품을 같이 전달했다.김춘안 부행장은“민족의 명절 추석을 맞이하여 이번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다”며 “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1970년 12월 국제금융공사의 조사단이 작성한 ‘금융 및 자본시장육성을 위한 메모란다’ 제출 후 가칭 한국투자주식회사의 설립이 추진된다.금융기관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재무부, 한국은행, 한국투자개발공사 및 한국개발금융을 대표하는 구성원으로 조직된 ‘단기금융회사 설립준비위원회’는 1970년 12월 24일에 조직돼 1971년 1월과 2월 두차례에 걸쳐 회의가 진행됐다.1991년 한국투자금융 20년사에 따르면, 1971년 3월15일에 구체적인 설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초창기 단기투자금융업은 조기에 시장에 안착한 것으로 평가됐다.한국금융30년사는 단기투자금융업의 초창기 발전과정을 3기로 구분해 설명했다. 먼저 1기(1971년에서 1973년)에는 단기투자금융사의 설립을 들었다. 1971년 한국투자금융주식회사의 출범을 시작으로 1973년 7개사가 영업을 개시하여 비로소 단기금융시장이 형성된 시기이다.1973년 유류파동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후퇴 및 자금난 등의 악화조건에서도 신용에 의한 자금공급방식으로 1973년 말 현재 매입어음잔고 731억 원, 매출어음잔고 672억 원을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단기금융업법은 1972년 8월17일 공포됐다. 법 제정에 앞서 1971년 6월25일 IFC 및 한국개발금융주식회사가 설립주체가 된 한국투자금융주식회사가 상법상의 일반 주식회사로서 설립됐다.동법 제정시인 1973년에 서울투자금융주식회사를 필두로 부산투자금융주식회사, 한양투자금융주식회사, 동양투자금융주식회사, 중앙투자금융주식회사, 영남투자금융주식회사, 대한투자금융주식회사가 순차적으로 설립됐다.1974년에 광주투자금융주식회사, 동해투자금융주식회사, 1977년에 제일투자금융주식회사가 설립됐고, 1977년말 현재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1960년대 고도경제성장 기간 중 경제개발에 소요되는 내외자의 동원은 당시 대내외적인 경제여건에 비춰볼 때 동원방식, 비용, 기간 및 공급 채널 등 질적 측면보다 양적측면에 큰 역점을 뒀다. 1978년 재무부가 발행한 ‘한국금융30년사’에 따르면, 내자조달과 공급을 매개해 주는 금융제도에 있어서 금융매개기능의 다양화와 중층화 및 효율화를 도모하기 하기 보다는 은행 중심으로 기존 금융기관의 신용창조기능에 의존하는 제한된 법위에서의 간접금융이 주축을 이루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은행 중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신용보증기금은 1976년 6월 1일 설립됐다. 신용보증기금은 담보능력이 취약한 기업의 채무를 보증함으로써 기업의 자금융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법에 의한 특수법인이다.신용보증기금이 신용보증업무를 전담하는 독립기구로서 발족한 역사는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늦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신용보증제도가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의 신용보증제도는 중소기업 금융정책 일환으로 신용보증준비금제도를 도입함으로서 시작됐다.중소기업은 규모의 영세성으로 물적담보력이 부족할 뿐만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우리나라의 제도적인 감정평가업무는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위한 부동산 감정으로부터 시작됐다.금융기관들은 감정평가업무 담당 부서를 기술부, 감정부, 감정과, 기술과 등으로 구성하고 은행업무의 부수적인 업무를 맡도록 했다.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면서 감정수요의 증가, 대상물건의 복잡성, 대형화 추세로 평가기법의 개발, 기준의 통일과 감정평가업무의 전문화 등 시대적인 요청 등에 따른 정부방침으로 1969년 4월25일 한국감정원을 감정평가의 전문기관으로 설립하게 됐다.한국감정원의 성장은 3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는 정지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1967년 발표된 대통령 연두교서를 계기로 10월 이후 각 시도에서는 '1道1行주의' 방침에 따라 지방은행을 설립했으나 충청북도에서는 이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협소한 내륙지로서 지역적인 여건이 불리해 경제적으로 낙후된 충북지방의 산업을 육성하고, 지역사회 개발을 위해서는 도내 은행 설립이 절실한 상황이었다.특히 도내의 저축원을 발굴 동원하여 이를 지역산업에 환원공급할 독자적인 지방은행 설립이 요구됐다. 이에 충북 출신의 재경인사 및 뜻있는 도내 상공인들이 주축이 돼 지방은행 중 제일 늦게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경남과 울산을 기반으로 한 경남은행은 1970년 5월 22일 마산시에서 발족했다. 당시 자본금은 3억 원이다. 설립 7년 간 5차례의 증자를 거쳐 77년, 수권자본금 60억 원에 납입자본금은 30억 원이 됐으며 임직원수는 796명으로 늘었다. 창립해인 70년 5월 본점, 8월 신마산지점, 9월 부산지점과 10월에 오동동지점을 개설하는 등 점포가 확장되며 77년말에는 총 23개 영업점포를 확보하게 됐다.창립 당시 기구는 총무부, 업무부, 본점영업부에 불과했으나 업무확장에 따른 기구 확대로 77년말 6부 16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강원은행은 도내 지하자원의 개발과 특수작물, 특화산업, 관광자원 및 수산자원의 개발 등 지역경제발전에 기여하고자 1970년 4월 8번째의 지방은행으로 설립됐다.강원은행 설립을 위해 당시 강원도내의 일부 실업인과 다수의 재경 실업계 인사들이 충주적인 역할을 맡았다.78년에 재무부가 발간한 한국금융 30년사에 따르면, 1970년 1월21일 서울 대연각호텔에서 강원은행 설립을 위한 제1차 발기인 대회가열렸다. 이날 대표로 정주영을 선임하고 발기인 10명을 선출했다.1월30일에 제2차 발기인회가 열렸고 수권자본금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경기은행은 인천시만을 영업구역으로 하는 (주)인천은행으로 1969년 11월28일 설립됐다가 1972년 6월1일 경기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경기은행은 1969년 12월8일 납입자본금 1억5천만원으로 개업했으며 그해 서울연락사무소를 설치했다. 1972년 3월30일, 발행주식 15만주를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10월1일 을류외국환업무취급을 개시했다. 1974년 10월25일에는 최우수저축기관으로 재무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1975년에 최우수저축기관으로 선정, 2연속 재무장관상을 수상했다. 1976년 7월1일,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제주은행은 1968년 7월 초, 제주출신 상공인 및 재일동포와의 간담회 개최를 통해 지방은행 설립이 합의됐다.1968년 11월 16일 발기인 16명이 제1회 발기인회를 열고 사업계획서 및 정관을 제정, 1969년 3월20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신설허가를 얻어 1969년 9월19일 발족됐다.78년에 발간된 금융금융30년사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에서 제주상공인들의 경제력 부족으로 제주은행의 설립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발기인회 의장으로 선출된 재일동포 김봉학의 주선으로 재일동포자금을 유치하기에 이르렀다.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광주은행은 1967년 11월, 전남 상공인들의 발기로 그해 12월 29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내인가를 획득했다. 이듬해인 1968년 9월 17일 창립총회를 거쳐 11월 20일 발족했다.1962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공적인 수행으로 한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으나 지역 간 경제적 불균형상태는 심화됐다. 1966년 전남에 소재하는 기업체는 중소기업 538개, 대기업 5개에 불과했고 1967년 전남의 취업인구 중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82%에 달했다.당시 전남에는 한국은행 2개 지점, 특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지역산업 발전을 위해 1967년 4월 29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부터 설립내인가를 얻어 9명으로 구성된 발기인단은 충청은행 설립을 추진했다.그러나 지방은행에 대한 지역민의 인식부족, 경제기반의 취약으로 인한 주식공모의 어려움, 설립 후 경영에 대한 의구심으로 인한 지역민의 참여도 취약 등으로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설립내인가를 받은지 10개월 후인 1968년 2월 20일 창립총회가 열렸으며 4월 22일 충청은행이 설립됐다. 설립 당시 충청은행의 자본금은 1억5천만원. 총 95명의 주주가 15만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부산지역은 우리나라 근대적 금융기관의 효시였다. 일본인 소유의 제일은행이 부산에 가장 먼저 지점을 설립했지만.1978년 재무부가 발행한 한국금융30년사에 따르면 부산은행 설립 움직임이 태동한 것은 1959년 서울은행이 지방은행으로 발족하면서 부터다. 당시 부산지역의 유력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은행 설립이 추진됐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1967년 1월 17일 대통령 연두교서 발표 후 부산상공인들은 은행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즉 1967년 1월 23일 부산상공회의소는 가칭 ‘부산지방은행’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대구은행은 지방은행 중 가장 먼저 설립됐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의 연두교서가 발표된 뒤 일주일 후인 1월23일 대구상공회의소 주축으로 지역경제인대표 43명이 만났다. 이들은 가칭 ‘대구은행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날로 대구상공회의소회장인 여상원씨와 메리야스업대표인 김준성, 기계업대표 오일룡 등 대구지역의 각 업종을 대표하는 15인의 발기인을 선출했다.78년에 발행된 한국금융30년사에 따르면, 1967년 2월18일 제2차 발기인 총회에서는 정관을 확정하고 같은 날 대구은행설립
[우먼컨슈머= 박문 기자] ‘1도1행주의’에 따른 지방은행 설립은 대구은행을 시작하여 1971년 충북은행을 끝으로 마무리됐다.1969년 2월 지방은행과 공동 입장을 대변할 기구로서 전국지방은행협의회가 설립됐다. 1년 뒤에는 전국지방은행단으로 개정됐다.1972년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개시된 해로 10개 지방은행이 모두 출범하여 지역의 중추금융기관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 8.3조치 이후 제2금융권의 생성발전, 정부의 자본시장육성책에 힘입은 자본시장이 급신장하고 금리의 지방은행에 대해 적용하던 차등